어둠에서 더 큰 어둠으로의 이행. 그러나 그 선택이 빛이라는 가능성에 대하여 감상

대상작품: 깊은 물 아래에서 그들이 본 것 (작가: 최윤현, 작품정보)
리뷰어: 권총, 3월 28일, 조회 13

※본 리뷰는 영화 <레이디 맥베스>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7년 전쯤 타향살이 중 주말에 극장에서 맥베스 부인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나이 든 시골 지주에게 시집 온 어린 여주인공이 젊은 하인을 만나며 욕망에 눈 뜨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이런 류의 영화가 그렇듯이 욕망에 의해 주인공이 파국으로 치닫는 플롯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속 맥베스가 세 마녀에게서 예언을 듣고 부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처럼 양심의 굳건한 벽이 욕망에 굴복되면 인간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꽤 고전적 어조로 묘사하는 영화다.

 

이야기 말미에서 아이까지 살해한 후 그녀는 사회적으로 죽은 자가 된다. 인간관계와 사람으로서의 신뢰가 전부 파탄나 곁에 아무도 남지 않는다. 모두가 떠난 저택 안에 홀로 앉은 여주인공을 카메라가 정면으로 응시하며 영화는 끝을 낸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며 영화적 쾌감을 느낌과 동시에 윤리적으로 넘지 말아야 할 한계선은 존재함을 일깨운 수작이라고 나는 평했다. 평판을 송두리째 잃으면서까지 욕망에 충실했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좋은 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함께 본 누군가는 사회적 억압에서 자유로워져 진정한 자기 자신을 되찾은 인물의 이야기라고 해석했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전부 어둠뿐이라면 그 사람은 어둠을 벗어나기 어렵다. 스스로 고고한 빛이 되는 게 가장 고결하며 숭고한 방법이겠으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정도의 정신적 강인함을 추구하는 자가 몇 명이나 될까. 마음을 함께할 사람 한 명 없이 혼자 남았다면 이성적으로는 옳다고 해도 심리적 부담을 견디기 힘든 선택이 된다. 생존을 위해 소속감과 유대를 중시하는 인간 본능에 반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는 어둠에 물드는 선택을 내린다. 근묵자흑. 내면의 빛을 꺼뜨리고 어둠에 몸을 맡긴다. 적어도 마음은 편해지니까. 지금 당장 느끼는 괴리감과 불행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부조리와 불운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최선의 선택이 아님을 알지만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대부분 그 길에 발을 올린다.

 

이 소설은 그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사람은 환경을 이길 수 없다는 염세적이고 회의적인, 어쩌면 현실적인 관점을 작가 지난날의 경험에 담아 써낸 듯하다. 이 소설을 읽은 나는 적어도 그렇게 느꼈다. 현실이 아닌 세계를 배경으로 현실 같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인간 본연의 심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짚어내는 소설이다.

 

당신이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깊은 물 아래에 갇혔다면 인간으로서 어떤 선택을 내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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