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녹차빙수님의 작품을 소개해드린 적이 있어서 이 작품 이야기를 해야 하나 아주 잠시 고민했지만, 워낙 재미있는 작품이라 브릿G의 독자분들께 추천드리려고 합니다.
[소리와 시선]은 선명한 제목 만큼이나 뚜렷한 공포를 느끼게 해 주는 공포 단편입니다. 기자의 르포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이야기의 분위기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데, 일본 소설가 미쓰다 신조의 느낌이 나는, 픽션과 논픽션의 사이 어디 쯤을 보는 것 같은 스산함이 일품입니다.
제목처럼 이 이야기는 화자의 시선과 듣게 되는 소리들을 따라가면서 전개됩니다. 우리는 어떤 시각적 혹은 청각적인 정보를 접할 때 머리 속에서 지금까지 살면서 접했던 정보들을 통해 어느 정도 예상을 하게 됩니다.
나무가 울창한 숲을 보면 아직 듣지 않아도 새소리나 벌레 우는 소리 같은 걸 미리 예상하게 되지요.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그런 예상이 어긋났을 때 사람들은 혼란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공포물에서는 그런 감각 비틀기를 많이 이용하게 되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던가 여러 가지 생활 소음이 들려야 할 곳에서 깊은 땅 속에라도 있는 것처럼 적막만이 흐르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제가 무슨 얘기를 하는 지 아실 겁니다.
이 작품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출처가 불분명한 녹화 영상에 담긴 시선은 그 자리에서 들릴 리 없는 소리와 현재가 아닌 시간에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만드는데, 작가님이 만든 세트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아주 모호하게 표현이 되어 있음에도 너무나 분명하게 머리 속에서 만들어지고 살을 붙여서 마치 제가 이야기를 만드는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더욱 재미있는 건 글을 읽는 독자분들마다 다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영상 속에서 아이가 보고 들었던 게 대체 무엇이었는지, 모두를 떨게 한 그것은 어떤 장면인지 아니면 존재인지는 독자분들마다 다르게 그리셨을 것 같네요. 저도 어떤 끔찍한 장면을 떠올렸는데 다시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런 작품에서는 항상 의도치 않게 이런 재수없는 물건들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의 주인공 또한 사다코의 비디오를 본 사람들 수준으로 원치 않는 저주에 휘말리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독자가 스스로 자신이 가진 공포의 대상 중 최고를 끄집어낼 수 있게 해주는 ‘공포 DIY세트’ 같은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읽어보는데 느낌이 또 다르네요. 일 년 후에 다시 읽는다면 또 새로운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말이 분명하지 않은 것 또한 독자들에게 찝찝한 상상력을 자극시켜주는 역할을 하네요. 공포가 고플 때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가장 좋아하는 간식을 찬장에 숨겨둔 기분입니다.
괴담 스타일의 작품 답게 분량도 길지 않은데 읽고 나면 머리에 남는 존재감은 묵직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무서운 운 느낌 자체에 집중하시는 독자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