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이 리뷰는 소설의 전체 내용과 결말을 포함합니다.
작품을 감상하신 후, 리뷰를 보시길 권합니다.
대화로 이루어진 이야기의 힘
제법 긴 분량임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어째서 그랬을지 생각해 봤는데요. 가장 주된 이유는 우선 이 소설의 대부분이 잘 짜인 ‘대화’로 채워져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글의 초반부를 읽으며, 이제 막 서로 알아가기 시작한 남녀의 알콩달콩한 대화를 엿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점차 이야기가 힘을 더해가고 분위기가 고조되어 마침내 결정적인 사건에 이르렀을 때, 저는 마치 ‘둘이 사귄다더라’는 소문을 직접 들은 증인이 되어 이 이야기에 동참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둘이 쉴 새 없이 주고받는 대화에서는 소위 티키타카가 잘 이뤄졌다고 생각됩니다. 작중 화자인 남자가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경험을 들려줄 때 여자가 쳐주는 맞장구는 적절한 추임새가 되어 대화에 활력을 더합니다. 그 속에서 독자는 ‘더 해봐, 더 해봐’라고 신이 나서 이야기를 부추기게 되지요.
훌륭한 설계
이 소설이 내기의 형식을 취한 것, 그 중에서도 여자보다 ‘작중 화자’인 남자가 괴담을 먼저 풀어놓도록 한 것은 이야기 전개상 매우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에 하나 서술트릭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는 중이었다.’ 따위의 언급이 없다면, 작중에서의 1인칭인 ‘나의 경험담’은 아무래도 독자에게는 일단 믿을만한 정보일 테니까요.
그렇게 풀어놓은 남자 주인공의 경험담은, 그다음에 여자가 들려주는 ‘조금 더 센 이야기’가 딛고 올라설 단단한 토대가 됩니다. 그러니까 ‘기이하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은 첫 번째 괴담’에 1인칭 화자의 경험담이라는 신뢰성을 부여함으로써, 다음에 여자가 들려주는 경험담인 ‘보다 더 황당하고 스케일이 큰 두 번째 괴담’이 치고 나올 만한 판을 깔아주는 셈이지요. 이렇게 해두면 독자는 여자의 경험담을 단순히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기이한 이야기’로 인식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이런 구성은, 한번에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독자에게 설득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잘 쌓아 올린 설계로 보입니다.
그리고, 창포꽃. 저는 중반부까지도 그 문제의 창포꽃은 도대체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지루했기 때문이 아니고요. 저는 보통 작품을 읽다가 제목은 잊어버리기 일쑤인데 이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이란 제목은 뭔가 강한 인상과 기대감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읽는 와중에도 까먹지 않고 ‘그래서 창포꽃은 언제 나오는 건데? 접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와… 지금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메인 요리가 아직 안 나왔단 말이야?’ 이런 감탄 섞인 궁금증이 제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제목으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데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 궁금증을 쉽사리 풀어놓지 않고 잘 이끌고 나갔다는 데에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있을 법한, 낯선 것이 익숙해지는
이 작품에서는 ‘코코 포리고리’라는 주문이 여러 번 나옵니다. 한번에 기억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이 주문은, 첨엔 낯설지만 묘하게도 작품을 읽어 가는 사이에 익숙해지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낯선 것이 익숙해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핵심이 되는 ‘코코 포리고리’ 의식은 익숙해지는 과정 없이 단번에 성사되는 인스턴스식 연애에 대한 부작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친구와 겪은 일, 본 것 같은 하지만 낯선 것 같은 회사 직원, 상대에게 주문을 거는 방식. 이런 모든 것에는 많은 괴담의 분위기가 그러하듯 ‘어디선가 접해 본 듯하면서도 또 낯선 느낌’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 두 주인공의 이름은 매우 흔합니다. ‘김지훈’, ‘김윤정’ 이런 이름은 어느 사무실이든 한두 명 있을 법하죠. 이렇게 흔한 이름은 소설 속의 주인공을 보편화, 익명화합니다. 그리고 이런 설정은 이야기를 우리 주변에 일어날 법한 일로 만들어버려, 작품과 독자 간의 거리를 좁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보편성은 괴담의 형식과도 매우 잘 어울리지요.
선명히 드러나는 서술의 아쉬움
다 좋았는데, 저는 결말이 좀 아쉬웠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의 주관적인 견해에 불과합니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 부분에서 작중 화자가 ‘김지훈, 그건 내 이름이었다.’ 이렇게 직접 서술하며 끝납니다. 아마도 어떤 충격적인 효과를 주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저는 여기서 지금까지의 분위기가 확 뒤집어지는, 말하자면 조금 ‘깨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의도된 연출이겠지만요.
이 부분이 어떤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면, 주인공이 김지훈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앞부분에서는 더 은밀하게 감추어둬야 했다고 봅니다. 읽는 동안 독자가 ‘설마 주인공이 김지훈은 아니겠지? 혹시 그것 때문에 술을 마셔 알딸딸한 상태가 된 걸로 밑밥을 깐 걸까.’라고 예상하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작중 화자가 김지훈이란 사실을 밝히는 게 그다지 깜짝 놀랄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 주관적 관점에서 본다면, 분위기 전환에 대한 부작용을 무릅쓰고 해당 정보를 명시적으로 노출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결말에서 주인공이 김지훈임을 나타내고 싶었다면 화자의 진술로 직접 드러내는 대신, ‘내 지갑에서 나온 주민등록증에는 ‘김지훈’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라는 정도로만 묘사했다면 조금은 분위기가 유지되지 않았을까요.
만일 누군가가 저에게 이 이야기의 지배적인 정서가 무엇인 것 같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익숙함과 낯섦, 그리고 그 사이의 모호함’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알 듯 말 듯한, 이 말을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하는 아리송함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힘. 이 이야기에는 그런 모호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모호함의 미학을 끝까지 밀고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마치 팽이가 쓰러질 듯 말 듯한 모호함의 절정, 궁금해 미칠 것 같은 그 순간에 끝내버려 이 이야기를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속에 묻어두었다면 어땠을까 하고요.
그리고 비슷한 맥락에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카테고리가 ‘판타지/호러’ 라고 분류되어 있는데 저는 ‘판타지’가 선택되어 있지 않으면 어떨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이유는, 거의 대화로 이뤄진 이 소설에서는 실제로 어떤 귀신이나 괴물 같은 게 등장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져보면 모든 비현실적인 사건은 오로지 ‘대화 속에서만’ 이뤄졌죠. 진짜 심하게 의심을 해본다면, 두 사람 다 거짓으로 경험담을 지어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장르를 ‘판타지’라고 규정해버리면, 비현실적인 얘기일지언정 ‘있었던 사실’로 이야기의 범위가 축소되어 버리죠. 저는 이 이야기의 매력은 보다 많은 상상의 여지를 남겨둘 때, 더 잘 살아난다고 생각됩니다.
깊은 여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데요. 끝에 화자가 자신의 이름을 명시적으로 알려주긴 했지만, 상대 여성(김윤정)이 ‘어떤 것은 거짓말이었고 어떤 것은 진실이었다’는 식의 발언을 함으로써 독자에게 수많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거짓이었을까’, ‘여자의 경험담에서 김지훈이라는 이름은 상대방인 남자의 이름을 그냥 갖다붙인 것이고, 여자는 정말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한 게 아닐까’, ‘어쩌면 창포꽃을 접었음에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닐까’, ‘저주는 다 풀린 걸까’, ‘이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자꾸하게 만들며,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독자를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은 단순한 장르적 재미를 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생각할 거리도 던져줍니다. ‘아, 손뼉 한 번에 갑자기 이뤄진 손쉬운 사랑이 이렇게 비참할 수 있구나.’, ‘익숙해지는 과정이 없는 간편한 주술은, 역설적으로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저주를 남기는구나.’ 그래서 정성스럽게 창포꽃을 접는 의식은 이런 손쉽게 얻어진 것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고결하고 아름다운 행위로 비칩니다.
정리하자면, 이 소설은 좋은 이야기의 조건을 두루 갖춘 것 같습니다. 매끄러운 전개로 독자들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독특한 주제 의식이 살아있으며, 이야기가 끝나고 깊은 여운까지 남기니까요.
소설을 읽다 보면 영상화가 어렵다고 생각되는 작품도 여럿 있는데, 이 작품은 이대로 영상화를 해도 좋을 만큼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림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한 장의 그림을 연상하게 되었습니다. 말로 표현하자면, 그 그림은 ‘서늘한 새벽안개 속에 핀, 한 송이의 창포꽃’ 같은 게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고요한 그림 속에서는 어쩐지 처연한 창포꽃 향기가 그윽하게 풍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