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약자들의 운명공동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나와 밍들의 세계 – 下 (작가: 김유정,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레이, 19년 4월, 조회 51

‘죽다’라는 말은 ‘세상을 떠나다’로 표현되기도 한다. 인간, 또는 인간과 비슷하게 사회적인 존재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곧 자신이 속해 있던 사회를 영원히 떠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회에 속해 있던 생명이 죽어서 가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세상일까. 천국 또는 지옥일까.

과연 그럴까?

천국과 지옥은 실재할까. 길고양이 ‘나’는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다. 인간 여자 ‘밍’도 천국과 지옥을 확신하지 않는다. 둘에게 천국과 지옥은 막연한 다른 세상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 착함과 나쁨은 사회의 주류(主流)가 규정하고 믿는 관념이니까. ‘나’와 ‘밍’은 각각 언제 어떤 위험과 폭력에 노출되어 죽을지 모르는 길고양이, 그리고 아버지의 빚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힘들고 가난하게 연명하는 인간 여성이라는, 인간 사회의 주류에서 소외된 비주류이자 약자들이니까.

대신 ‘밍’은 천국과 지옥 사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평화롭고 소박한 어떤 곳을 소망해 본다. 그리고 ‘나’는 ‘밍’이 자신에게 했듯이 ‘밍’을 살리고서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느낀 순간에 ‘밍’이 소망한 그곳의 가능성을 믿어 본다.

그러나 ‘나’가, ‘나’와 ‘밍’이 최종적으로 택한 곳은 그곳이 아니다. 둘은 자신들이 소외당해 죽어 가는 ‘여기’에서 ‘우리’로서 ‘어떻게든 살아갈’ 것을 택한다.

‘나’와 ‘밍’은 둘의 운명공동체를 자신들이 있을 곳으로 택한 것이다.

‘밍’이 말한 그곳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나’와 ‘밍’은 그곳에서 평화롭고 함께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죽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밍’이 ‘나’가 살기를 간절히 바랐듯이 ‘나’ 또한 ‘밍’이 죽지 않고 살아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나’가 그 소망을 행동으로 옮긴 때, 둘은 ‘나’이기도 ‘밍’이기도 한 두 육체 속에서 서로가 함께임에 행복을 느낀다.

죽지 않아도, 살아 있는 한, ‘나’와 ‘밍’은 둘의 운명공동체 안에서 행복하다. 설령 둘이 함께 계속 살아간다는 미래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와 같은 연대의 운명공동체가 가져다 주는 행복은 둘로 하여금 둘이 하나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만든다.

사회의 약자들은 너무나도 쉽게 소외되어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기 일쑤이며, 따라서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 어디에도 속할 곳이 없다. 속해 있어도 속해 있지 못하며, 조금만 운이 나빠도 아예 속해 있지 않음만도 못한 처지에 놓이고 만다. 이런 약자들이 함께 연대할 때, 이들이 진정으로 깃들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속할 곳’이 탄생한다. 그리고 연대한 약자들은 그 안에서 삶의 희망을 얻는다. ‘나’와 ‘밍’이 죽음에도 꺾이지 않는 마지막 희망을 향하여 현관문을 열었듯이.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