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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리뷰 공모 코멘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을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 외 어떤 리뷰든 감사합니다.
리뷰를 쓸 때 작가에게 고마운 순간 중 하나는 이런 식으로 리뷰의 방향성을 정해줄 때다.
여러 이점이 있지만, 지금 크게 느끼고 있는 이점은 ‘내가 생각해본 적 없는 관점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단언하긴 어렵지만, 작가의 코멘트가 없었다면 나는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을 공감하거나 이해‘ 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꺼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작가의 코멘트는 ‘이런 관점에서도 소설을 볼 수 있구나’ 라는, 일종의 깨달음을 주는 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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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을 공감하거나 이해‘ 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꺼내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한 것처럼 사실 이 작품은 공감이나 이해와는 좀 거리가 멀었던 작품이었다.
독서를 하다 보면 소설이란 건 아이러니한 지점이 있구나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만약 내가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었으면 아마 ‘학생 K’나 ‘0학년 0반 000’ 정도지 않았을까 싶다. 혹은 더 멀어져서, 이 학교 학생조차 아니라 입학 전이거나 졸업 후일 수도 있다. 동급생이었어도 나은이처럼 생각하진 않고 장례식에서 ‘가증스럽게 우는’ 친구 중 한 명이었을 거다. 은수는, 은수 엄마는, 화자는, 나은이는 아닐 것이다.
나 뿐 아니라 대부분의 독자가 그럴 것이다. 확률적으로만 봐도 주연 인물 외의 대중이 더 많으니까.
그리고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을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있으신지 궁금합니다.’에서 ‘인물들’이란 ‘학생K’같은 엑스트라를 가리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결국 내가 공감, 이해해야 할 인물들은 주연인물들인데, 작품에선 경향성에 지배당하는 대중들과 다르게 주연인물들은 ‘의식이 깨어있는’, 최소한 사태에 대해 대중들과는 ‘다른 식으로 생각을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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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지점은 이곳이다. 이미 작가가 주연인물과 엑스트라 사이에 선을 그었는데, 엑스트라에 속할 가능성이 높은 독자가 주연인물들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엑스트라들의 행동에는 쉽게 공감이 된다. ‘꼬장꼬장한 경비원 어르신’의 행동은 직업윤리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고, 장례식에서 학생과 교사가 우는 것도 이해가 되고, 은수 어머니를 대하는 교사들의 대처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주연인물들에 대해선 그다지 공감이 안 된다. 욕심 부리지 말고 나은에게 한정지어서 생각해보자. 그럼에도 내가 나은이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건 ‘쟤는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구나’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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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래로는 다소 논리가 비약하는 글을 쓰게 될 듯…
소설을 읽을 때 꼭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에게 공감,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의문은 품어볼 수 있다. 왜 내가 공감을 못하는 걸까?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에게 공감하는 일도 있다. 한 번도 그런 세계에서 살아본 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물에게는 공감을 못 하고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몇 가지 이유가 떠오르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이 작품의 배경이 현실이라는 점이 핸디캡이 된 것 같다’는 가설이었다.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몇몇 작품들이 저지르는 문제점 중 하나는, 설명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현실 배경의 작품이, 새로운 세계관을 설명해야 하는 판타지 소설보다는 설명이 적어도 되는 건 확실하다. 이를테면 신족과 마족이 있고 100년 전 신마대전이 있었다는 식으로 한국 전쟁을 서두에 적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부가설명을 빼먹는 경우가 없잖아 있다.
예를 들어 부모를 죽이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가 죽이고 싶어하는 부모가 실은 아이의 진짜 부모를 죽이고 아이를 훔쳐온 후 계속 키워온 사람이라는, 그런 사연이 있다는 걸 알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아이의 사고조차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것도 의견은 나뉠 수 있다. 그래도 키워준 정이 있는데 죽이고 싶다는 게 말이 되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고,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전자처럼 생각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만약 전자의 의견을 낸 사람이 입양되어 살아왔고 지금 삶에 만족한다는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되면 저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후자의 의견도, 알게 모르게 육친이 아님을 느껴오는 삶을 살았고 그로 인해 인생이 파탄났다면 저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 작품에는 그런 면이 좀 부족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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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도 아이러니한 지점이 있는데, 이 리뷰에서 작가가 내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편이 최고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등장인물에게 공감하지 못한 것처럼, 작가도 어떤 인물에게 공감하지 못했을 때 내 기분이 가장 잘 전달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