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은 많았지만 약을 먹고 과거로 돌아가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단순 수면제인 줄 알았는데, 용법을 지키지 않은 부작용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꽤 특이합니다. 아침에 먹지 않고 저녁에 먹었다는 이유로 과거로 갔다면 이 약이 도대체 무슨 약인지, 아니면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 조금은 납득가능한 이야기를 해주려나 생각했지만 결국 작가가 그러기로 한 것 같다는 느낌만 받았습니다.
어쨌든 주인공인 인한이라는 남자는 다니던 공장의 고압프레스에 팔을 잃기 전으로, 자신을 길러 준 수녀에게 배신당하기 전으로 돌아왔습니다. 갑작스레 과거의 시간에 떨어진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오면서 팔도 회복되었고 수녀도 여전히 따스하게 대해줍니다. 그건 좋습니다. 그런데, 태성이란 인물이 등장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여고생 살인 사건에 대해 언급을 하지요.
독자가 처음부터 인한이란 주인공에게 가진 정보라고는 고아로 수녀님이 키웠다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전의 상세한 배경에 대해서는 과거로 돌아간 시점부터 하나씩 독자에게 던져지는 셈입니다. 인한과 태성은 살인 사건의 범인을 잡고자 합니다. 근데 뭣하러 잡는지 모르겠어요. 여고생 살인사건이 주인공에게 중요한 사건인가요? 태성은 주변 동향을 꿰고 있는 인물이겠지만 주인공이 참여할 명분이 부족해보였거든요. 과거로 돌아온 김에 기억대로 상황이 벌어지는지 확인한다고 하기에는 좀 스케일이 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자기 인생에서 큰 영향을 준 사건을 돌이키거나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이 집착하게 되어 있는데, 이건 그냥 태성이 말하는 사건이 진짜 그렇게 흘러가나 간보려고 한 게 일이 커지잖아요. 예를 들자면, 기억상실한 주인공이 머리에 남은 실마리만 가지고 사건에 무작정 뛰어드는 것과 흡사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한은 기억을 온전히 다 갖고 있는데도 그러네요.
어쨌든 인한과 태성은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으려고 수 차례 시도하지요. 그 과정에서 인한은 태성을 잃습니다. 인한은 다시 약을 먹지만 이미 바뀐 미래는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태성이란 캐릭터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죽는군요. 과거로 돌아가는 약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서요. 주인공은 아직 과거로 돌아온 상황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상태인데 같이 상황을 파악하고 설명할 조연도 없다니. 그렇다고 인한의 캐릭터가 굉장히 논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자는 캐릭터에 가깝지요.
인한은 여전히 공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 공장에는 혜란이라는 여성이 근무하고 있지요. 인한은 같은 또래의 혜란에게 웬지 모를 친근감을 느끼는 듯 싶습니다. 좋아한다기엔 묘사가 부족하니까 자기도 모르게 눈이 가고 챙겨주고픈 이미지에 가까운 것 같아요. 할머니와 동생을 보살피는 소녀가장인 그녀를 괴롭히는 고우진을 비롯한 영태, 최병호 등의 인물을 인한은 응징합니다. 도대체 혜란을 왜 구해주는지 모르겠어요. 의협심 말고 충분한 동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400매가 조금 넘는 분량을 읽으면서 수많은 우연과 즉흥성과 의협심으로 내용이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물의 행동에 대한 동기와 사건의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과거로 강렬히 돌아가고자 소망하던 것이 의도치 않은 형태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현실에 분노하던 중 얼떨결에 수면제를 잘못 먹고 과거로 돌아왔죠. 왜 하필 돌아간 시점이 그 시점인지도 명백하지 않습니다. 캐릭터는 즉흥적인 캐릭터일지 몰라도 소설이 전개되는 내용은 즉흥적이란 느낌이 들면 안될 것 같습니다. 인한의 가장 큰 욕망은 무엇인가요? 인한이 돌아가고 싶었던 시점은 언제인가요? 인한에게서 어떤 사람이 가장 중요하죠? 인한은 어떻게 살기를 바라나요? 앞으로 진행될 쓰리타임즈어고의 내용은 부디 이러한 질문들에 충분히 답이 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