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인적인 일로 바빠 브릿G에 잘 드나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바쁜 와중에 황금가지 포스트에 이 작품 ‘이계리 판타지아’의 서평단 모집글이 올라와 주저 않고 바로 신청했다. 개인적으로 이시우 작가님이 쓰신 수많은 작품들을 좋아한다. 이계리 판타지아에서도 그 면모를 보여주지만, 작가님의 주 장르 중 하나인 호러는 늘 뒷목을 서늘하게 한다. 공포가 한순간 짓쳐드는 것이 아닌, 이야기의 기승전결 구조처럼 천천히 감정의 밑바닥을 다져가면서 독자의 머릿속을 조여 온다. 작가님 특유의 기이한 이야기들은 보는 독자에게 조금씩 불안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본인만의 확고한 색깔을 갖고 계신 작가님은 평소 호러뿐만 아니라 이계리 판타지아처럼 판타지 장르도 잘 다루신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작품들 중 제일 처음 본 ‘괴물의 아내와 28층의 기사’의 경우, 판타지적인 장르 재미는 물론 작가님 특유의 기이한 호러 감성이 묻어나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런 좋은 작품들을 많이 써오신 분이다 보니 작가님의 대표작인 이계리 판타지아도 기대를 안 할 수 없었다.
이계리 판타지아는 큰 장르 틀로 보면 판타지 계열로 구분되지만, 세세하게 들어가면 어반 판타지(도시 판타지) 소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이계리 판타지아의 주 배경은 시골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계리 판타지아 홍보글에도 나오지만, 이 작품은 신 장르 ‘루럴 판타지(시골 판타지)’를 개척했다고 한다. 왠지 모르게 시골이라 하니 푸근하고 정겨울 것 같지만, 역시 작가님답게 이 작품의 배경인 이계리에는 불안함과 음습함이 감돈다.
작중 주인공인 ‘강미호’는 아버지의 심장마비 사후, 집과 토지를 물려받게 된다. 강미호는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전업 작가로서의 새 인생을 살기 위해 이계리로 이사 온다. 하지만 이사온 날을 기점으로 이상한 존재들로부터 위협을 받게 된다. 다행히 옆집에 사는 ‘김귀녀’라는 기골이 장대하고 대검을 찬 할머니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난다. 이후, 강미호는 이계리에 사는 다양한 존재들과 괴이, 설화 속에만 존재하던 용들과 만나게 된다. 위협하는 존재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용 ‘조풍’, 이계리를 수호하는 ‘김 서방’, 형제인 조풍을 시기하고 그 모든 걸 빼앗고자 하는 용 ‘도철’, 그리고 기도를 들어주는 이의 기도를 들어주는 소년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어울리며 이야기는 점점 부풀려 간다.
작가님 특유의 글 센스는 이 작품에서도 빛난다. 강미호와 다른 사람들 간의 대화를 듣다 보면 마치 탁구를 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끊임없이 재미가 이어지며, 특히 조풍과의 케미는 보는 내내 웃음을 머금게 했다. 그 외에도 조풍이 쓴 소설 ‘백호전생’에 관한 마을 할머니들의 대화는 안 웃을래야 안 웃을 수가 없다.
이 작품에서 강미호는 현실과 비현실 속에 반쯤 걸친 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정말 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불안한 복선들을 남겨준다. 이형의 존재들로 인한 불안함과 작품 특유의 기이한 감성이 맞물리면서 보는 내내, 강미호에게 감정 이입이 돼갔다. 강미호는 도시에서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시골을 내려오면서 비현실로 접어들게 된다. 강미호가 느끼는 괴이들에 대한 불안감과 마을에 사는 존재들에 대한 궁금증은 독자들도 똑같이 느낀다. 당연히 느끼는 것이 비슷하면 감정 이입이 될 수밖에 없고, 점점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는 듯한 용의 자식들 중 하나인 조풍에 대한 설정도 좋았다. 다른 형제들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신봉하지 않고 잊혀져가기에 힘을 잃어만 가지만, 조풍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려가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잊히지 않게 한다. 이야기는 듣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계속 존재하듯이, 이 작품에서 나오는 존재들도 자신들의 이야기가 잊혀져 힘을 잃거나 힘을 쌓아간다.
이 작품에서는 용의 아홉 자식들 중 조풍을 비롯해 그에 대적하는 도철과 우포늪에 거주하는 ‘포뢰’까지 셋이 나온다. 아버지인 용(동시에 이계리 이장)은 자식들이 뭘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서로 물고 죽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듯이 말이다.
작중 강미호는 그나마 나은 정신 상태를 갖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감정을 따라 행동한다. 앞으로 이어나갈 이야기나 피치 못할 위협을 예비해서라도 죽이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인면지주를 살릴 때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런 식으로 강미호의 선택에 따른 복선들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발목을 잡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강미호가 초중반까지 뿌리는 복선들은 이 400쪽 남짓한 책 안에서 잘 마무리 지어진다. 물론 강미호와는 상관없이 이 작품에는 한 가지의 복선을 남겨둔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계리 판타지아의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과연 앞으로 강미호는 어떻게 될지, 새로운 위협은 어떻게 다가올지, 다른 등장인물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와 줄지 까지.
너무나도 다양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나오다보니, 솔직히 인물들 보는 재미로도 술술 읽혀나간다. 이계리의 주민들은 물론 적으로 등장하는 존재들까지, 어느 인물 하나 빼지 않고 불쾌하지가 않았다.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들에게까지 감정 이입이 잘 될 정도로 매력적이었고,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갔다. 그들이 생각하는 바, 그들이 원하는 바가 이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이야기 안에 잘 담겨져 있었다.
작가님의 다른 장편 작품인 ‘과외활동’도 그렇지만, 작중 인물들의 책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좋은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이시우 작가님의 작품 생활이 오래도록 이어져 나가길 바란다. 그래야 계속 좋은 작품을 볼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