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 명의 독자로서 단문응원을 남길까 하다가, 뭔가 점점 쓰고 싶은 말이 늘어나서 리뷰를 남겼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합니다.
이 단편은 화성을 탐사하기 위해 가던 중 재난에 휘말려 소행성에 불시착한 생존자의 이야기이다. 우주 표류기에 집중되는 초반부는 영화 ‘마션’과 흡사하게 전개된다.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 여러가지를 시도하며 고군분투한 끝에, 생존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어서 홀로 남은 생존자의 외로움이 중점적으로 묘사된다. 이 부분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와 비슷한 분위기다. ‘인터스텔라’의 만 박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끝에, 채시라는 인공지능을 만들어 낸다. 인간을 이해하면서 점차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채시와의 교감은 영화 ‘her’와 닮았다.
위 줄거리 정리를 읽은 분들은 필자가 독자로서 작품을 어떻게 느꼈는지 눈치채셨을 것이다. 작품 전개는 분명 재미있고, 뒷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호기심을 유발하며, SF 장르로서의 매력에 충실하다. 그러나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작품의 한계였다. 참신함 측면에서 다소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설정 면에서도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부분이 있다. 안테나가 완전히 파손되었다면서 소행성대에 뿌린 인공위성과는 교신이 된다거나, 지구에서 화성까지는 6개월이 걸렸는데 소행성대까지는 10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거나 (화성과 소행성대의 거리는 약 1억 km이고 광속으로도 6분이 걸린다)하는 점이다. 이 상황에 의문을 가질 만한 일부 하드한 SF 골수팬에겐 아쉬울 만한 부분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경우도, 인공위성을 발사할 연료는 있으면서 이를 활용해 소행성을 탈출해 볼 생각은 하지 못하는 건 아무래도 의문스럽다. 하지만 소행성 위에서 작물을 키우고, 옥수수로 케이크를 만들거나 콩으로 고기를 만들어보는 등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상상하고, 이를 묘사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한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도 많다. 즉, 극의 전개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할 만한 부분은 나름 짜임새가 충실하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감정 없는 프로그램에 불과했던 채시가 뉴런의 움직임을 본따 자아를 갖춘 존재로 된다는 설정은 인상적이다. AI를 개발하는 방법은 크게 프로그래밍 적으로 지능을 모방하는 방법과, 보다 본질적으로 뇌의 전기신호 패턴을 모방하는 방법이 있는데, 실제로 채시처럼 사람과 감성을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면 후자의 방식으로 개발되어야 보다 설득력이 있다. 이 부분은 필자가 생각하던 것과 동일한 부분이라 더욱 감명 깊게 읽었다.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SF적 매력을 극대화한 부분으로, 특히 성행위에 대한 문답이 재미있는데 마치 순수한 아이에게 성교육을 하는 장면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 밖에도 인공지능과 다투고 화해하는 등 밀당을 하는 부분, 노래나 기념일 등의 문화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 등 공상과학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대화들이 있어, 좋은 지적 유희가 되어 준다. 사실 이 작품을 끝까지 쭉 읽을 수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러한 매력 덕분일 것이다.
(이하 리뷰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궁금하시면 가급적 작품을 읽고 나서 읽어주세요!)
생존을 위한 오랜 사투 끝에, 인공지능의 희생으로 주인공은 결국 고립 상태에서 풀려난다. 하지만 어려운 시간을 함께 했던 인공지능은 주인공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된다. 희생 플롯을 전면에 내건 잔잔한 결말이다. 사랑을 갈구했던 인공지능의 마지막 말들이 여운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 서정적인 여운에도 불구하고, 채시의 선택은 다소 신파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전기값이 많이 나올까 우려하여 컴퓨터를 끌 수는 있어도, 프로그램을 삭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전력이 모자라다고 프로그램을 셀프 삭제한 채시의 선택이, 꼭 그랬어야 했을까 싶은 것이다. 프로그램을 별도의 저장장치에 백업해 두고 주인공을 구조하러 온 사람들이 함께 수거하거나 구조된 주인공이 나중에라도 찾아올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당위성을 좀 더 강화하던가, 혹은 채시가 프로그램을 스스로 종료하면서 언젠가 찾아오길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결말이었다면, 좀 더 고개가 끄덕여지는 좋은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