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명작이 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지만… <귀야리> 공모(감상)

대상작품: 귀야리 (작가: 흉비, 작품정보)
리뷰어: 하얀소나기, 4시간 전, 조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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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엔 매년마다 어린아이가 하나씩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울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고 하고는 사라졌다고 하구요. 진혁씨의 동생처럼 말이죠.”

(본문.5-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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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호러소설이 뭐 별것 있나요?』

2.『어라? 내 입맛에 딱 맞는 메뉴인데?』

3.『재료는 충분하다! 요리는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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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러소설이 뭐 별것 있나요?』

 

 

소제목이 다소 공격적입니다만, 실제로 ‘호러’라는 장르에 있어서 익숙하게 응용되는 공식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는 점을 짚고 가고 싶습니다. 가령 배경이 ‘시골(촌락)’으로 제시되는 경우 잇따라 나오는 이미지들이 있기 마련이죠.

 

혹자에게는 익숙한 장면이겠죠?

 

모종의 이유로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든 시골마을, 그 안에서 형성된 기이한 문화, 마을 하나를 공포로 몰아넣는 초현실적인 존재부터, 표면적으로는 헛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사건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무당에 가까운 노인……. 여기에 화자를 마을에 물들지 않은 외부인으로 설정하여 이 작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을 객관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다면, 상당히 그럴듯한 포크호러가 완성됩니다.

 

이번에 읽은 <귀야리> 또한 이런 호러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개성을 찾아가는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아이를 납치해가는 미지의 존재, 그 존재를 두려워하면서도 숨만 죽이고 있는 주민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다시 마을로 돌아온 화자의 이야기까지……. 어쩌면 누군가는 익숙하다는 말로 치부하며 넘어갈 수 있는 요소이지만, 선명하게 잡힌 설정들을 쫓는 사이 한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인상적인 면도 존재했습니다.

 

다만 이 소설 해당 장르에서도 완벽한 형태를 갖췄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에 관해서는 천천히 후술하겠습니다.

 

 

2.『어라? 내 입맛에 딱 맞는 메뉴인데?』

 

앞서 ‘익숙하다’거나 ‘공포 장르의 공식’이라는 표현을 쓰며 이 작품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아주 낯선 무언가는 아니라는 것을 줄곧 강조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첫 회 분을 읽었을 때, 모종의 존재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강제로 마을을 나가야만 했던 주인공의 사정을 훑어가며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러다가 승용차에 허겁지겁 올라타서 마을을 빠져나가려는데, 창밖에서 귀신이 상냥한 목소리로 부르며 고집스럽게 쫓아오는 장면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라고.

 

어? 설마….

 

사실 이것은 ‘팔척귀신’을 소재로 한 일본만화에서 등장한 장면인데, 마침 그 장면이 재현되듯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것을 보며, 이 작품에서 소재로 쓰고 있는 존재의 모티브를 아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비슷한 설정과 장면을 이유로 평가절하 할 이유는 없습니다. 더 나아가, ‘미지의 존재 아이를 훔쳐간다’는 설정이 특정 작품을 예시로 들기 힘들 정도로 창작되어 왔다는 것을 떠올리면, 비단 이 작품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비판할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당장 저조차도 그 설정으로 <루시 : 마녀가 죽었던 집>이라는 작품을 연재하고 있기 때문에 남말할 처지가 아니네요 ㅠ

 

사족이 길었다면 죄송합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전 이 작품이 상당히 매력적인 도입부를 지니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마을에서 아이를 훔쳐가는 존재, 그 존재에게 여동생을 빼앗긴 화자, 이웃들의 도움으로 마을을 벗어났던 화자,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다시 그 마을로 돌아가게 된 사정까지……. 생각보다 많은 정보와 설정들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것만 봐도, 이 작품이 상당히 선명한 목표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만족스러움을 가져다줬습니다.

 

제가 이 <귀야리>를 읽으며 가장 눈여겨봤던 것은 이 ‘귀야리’라는 마을의 집단을 묘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서두에서 밝혔듯 ‘포크호러’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화자’와 ‘마을’ 두 세력 간의 갈등으로 묘사되기 마련입니다. 안팎으로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폐쇄된 사회와 그 안에 자급자족하고 있는 주민들을 그리며, 그들 사이로 뛰어든 주인공의 시선을 쫓는 것이 서사적 흐름으로 마련됩니다.

 

하지만 이 <귀야리>는 그런 작은 사회와 마찰하는 갈등을 과감히 배제하는 흐름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주인공과 마을 간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은 ‘귀야리’에서 나고 자란 인물입니다. 어른이 되어 마을로 돌아온 지금도, 한때 얼굴을 알던 주민들은 주인공에게 이웃과 같은 호감을 표하며 환영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2-P.11) “일단 진혁이부터 살리자꾸나. 진혁이는 내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놈에게서 벗어나게 해볼 테니.”

 

어릴 적, 주인공이 미지의 존재에게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가장 먼저 나선 것도 주민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귀야리’ 주민들은 주인공에게 있어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4-P.22) 반가움이라기 보단 어색함이 가득했고, 기억 속 한편에 있던 엄마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비루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깡마른 여인이 서 있었기에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랐다.

(4-P.20) “네가 이해를 좀 해줘, 자식 잃은 부모의 속은 창자가 끊어질 고통이라고 하지 않냐. 너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네 엄마의 고통을 모르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

 

그 호의는 마을 구성 전체에게로 돌아갑니다. 아들을 멀리 떠나보내고 실성한 채로 살아왔던 어머니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주인공에 비해, 오히려 주민들 쪽이 이해를 구하며 어머니를 돌보아왔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가치관이 뒤틀린 작은 사회’보다는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으로서 기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마을주민들을 하나로 엮어줄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귀야리’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한 적대를 근반으로 합니다.

 

(5-P.28) “이 마을엔 매년마다 어린아이가 하나씩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울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고 하고는 사라졌다고 하구요. 진혁씨의 동생처럼 말이죠.”

(5-P.38) “맞아, 내 딸도 그놈에게 희생당했지. 그 후로도 많은 아이들이 그놈에게 희생당했고. 그렇게 몇 년 동안 마을 사람들은 아이를 잃었지만 힘없이 지내야 했단다.”

 

주민들은 그 존재를 ‘그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묘사되지는 않으나, 주민들이 대적할 수도 없이 아이를 빼앗겨왔던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이 존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영리한 구성은 이 ‘그놈’을 공통된 적으로 제시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으로 이웃들이 서로에게 베푸는 호의가 당연해지는 것을 넘어 필수에 가까워지는 집단을 형성했고, 주인공 또한 ‘그놈’과 적대해야하는 이유를 중심사건으로 제시함으로서 이 집단과 손을 잡게 되는 타당성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으로 이 작품은 기존의 포크호러에서 보이던 ‘집단과 주인공의 대립’에서 벗어납니다. 그것은 곧 이 작품이 주인공이 이들과 집단으로 하나의 거대한 시련과 맞서 싸워야 하는, 일종의 재난물에 가까운 성격으로 비춰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재료는 충분하다! 요리는 어떻게 할까?』

 

어떤 소설을 읽을 때 기술적인 능력에 대해서 평하기는 쉬운 편입니다. 문체, 묘사력, 사건적 서사, 인물에 대한 조형 등 흔히 소설을 읽을 때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을 만들어서 주관에 따른 기준을 제시하면 그만입니다.

 

굳이 이 말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 <귀야리>라는 작품 자체가 기술적으로 완벽하다는 인상을 주기에는 부족한 면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소설보다는 트리트먼트에 가깝게 읽히는 집필방식부터, 호의라는 이름으로 너무 편리하게 흘러가는 인물관계, 설정 면에서 부족한 개연성까지 짚자면 이 감평을 읽고 쓰는 과정이 너무 피곤하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이 <귀야리>라는 작품이 갖고 있는 재료는 호러 작품으로서 인상이 번뜩일 수 있는 지점을 짚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만 작가님이 이 재료를 어떻게 써야 할지와 더불어,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에 대해 다소 어색해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억지로 찾아낸 엉성함 따위를 언급하기 보다는, 한 명의 독자로서 ‘어떤 이야기가 담겼으면 좋겠다’는 제안에 가까운 이야기를 담을까 합니다. 제가 독자로서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부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왜 주인공은 귀야리로 돌아가야만 할까요?

 

주인공의 어린 시절은 일촉즉발이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두려워하는 미지의 존재에게 여동생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모든 주민들이 입 모아서 그의 안위를 걱정할 정도로 희생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비록 그는 아내와 딸을 둔 가장으로 번듯하게 성장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주인공은 하룻밤 사이에 엄마와 여동생과 생이별하고 기이한 존재에게 목숨을 위협받았던 강렬한 기억을 품은 셈입니다.

 

(2-P.87) “아빠 할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대. 그래서 할아버지 뵈러 가는 거야.”

(2-P.99) 벌써 33년이나 지났으니 이제는 괜찮겠지.. 하며.

 

그럼에도 주인공이 그 순간을 다루는 것은 무척 안일한 면이 있습니다. 당시 그가 긴박한 상황을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아가 미숙했던 점은 감안해야겠습니다. 다만 그는 승용차에 올라타 여동생을 훔쳐갔던 존재를 인지할 정도의 수준이 있다고 묘사됩니다. 냉정히 말하면, 이 기억만으로도 주인공에게 귀야리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는 마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33년이나 지났는데 돌아가도 뭐 문제가 있겠어?’라고 느끼는 사람이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3자 입장에서 할아버지 장례식을 이유로, 혼자도 아니고 가족들 전체를 데리고 그런 ‘마굴’로 돌아가겠다는 주인공의 사고는 공감할 수 없는 담력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심지어 주인공은 이 안일한 선택으로 딸을 잃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놓이지 않나요? 작품의 중심사건의 원인이 주인공의 아둔함으로 제시되는 이 상황은 무척 아쉽게 느껴집니다.

 

만일 주인공이 이런 아픈 기억에도 마을로 돌아가야만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곧 주인공이 ‘그놈’과 싸울 수 있는 이유와 더불어, 어릴 적 여동생을 잃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작중에서 주인공이 당시 기억을 ‘트라우마’로 인지하는 듯한 묘사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이 모든 것이 제 사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작게 구겨둡니다.

 

 

둘째, 왜 마을 사람들을 귀야리를 떠나지 못 할까요?

 

작중의 대사를 보면, ‘그놈’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아이를 훔쳐간 것은 어제오늘일이 아닌 듯합니다. 적어도 매년 마을에서는 미지의 존재에게 아이를 빼앗기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 주체가 ‘그놈’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범인을 알고 푸는 사건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쉬운 답은, 마을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로도 마을을 벗어난 주인공이 딸을 낳고 멀쩡히 살았던 것을 보면, ‘그놈’은 오로지 마을 안에 있는 구성원에게만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마을을 벗어나면 이 존재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런 반문도 가능합니다.

 

“아니, 마을을 버리는 게 쉬운 일이냐? 이 많은 주민들은 다 어디로 가냐?”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다만 그것이 곧 이 존재에게 아이를 갈취당하면서 버텨야 되는 이유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만약 ‘그놈’에게 아이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여느 창작물에 등장하는 재물의 개념처럼 바쳐지는 것이었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어디까지나 주민들은 칼이라도 쥐어주면 ‘그놈’에게 달려들겠다는 입장이니 고려할 가정을 아닙니다.

 

왜 굳이 주민들은 이 마을에서 버텨야만 할까요? 그것도 3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주인공이 돌아오는 순간까지도 마을을 유지해야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 답을 구체화할 때 이 <귀야리>는 더욱 생동감 있는 호러물로 탄생하리라 생각합니다.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집필 활동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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