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공식 <대지를 딛고자 날개를 꺾어버린 죄로> 공모(감상)

대상작품: 대지를 딛고자 날개를 꺾어버린 죄로 (작가: 래온, 작품정보)
리뷰어: 하얀소나기, 8시간 전, 조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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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원칙 : 로봇은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되며, 1원칙, 2원칙, 3원칙, 추가 제0원칙에 의문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본문.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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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인간에게 속박된 로봇의 존재』

2.『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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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간에게 속박된 로봇의 존재』

 

개인적으로 창작물에서 보이는 ‘로봇(인공지능)’의 형태가 인간과 닮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곧 인간이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한 창조본능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즉, 인간이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에 있어서, 그들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형태는 곧 ‘인간’이라는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의미겠죠.

 

사실 우리가 관습적으로 상상하는 로봇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시대란, 곧 인간과 닮은 무언가를 부리는 시대에 가깝습니다. 그것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대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음에도, 인간에게 종속되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우리에 갇혀 있는 것이 묘사되곤 합니다. 간혹 그 경계가 허물어지며 진보적인 관계를 묘사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인간 사회로 편입되는 또 다른 존재라는 바탕을 두기 마련입니다.

 

이번에 읽은 <대지를 딛고자 날개를 꺾어버린 죄로>는 이런 인간과 닮은 로봇이, 인간이라는 경계로 넘어가는 방식을 매력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지구 밖으로 던져진 안드로이드 ‘윌슨’은 홀로 우주를 떠돌던 중, 스스로를 옥죄고 있던 ‘로봇’이라는 허물을 깨고 ‘인간’이라는 경계로 발을 딛는 경험을 갖게 됩니다.

 

과연 이 작품에서 인간이 규정한 ‘로봇과 인간’의 경계는 어떤 식으로 묘사될까요? 그리고 그 경계는 어떤 식으로 흔들리고 말까요? 이 글에서는 그 주제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이 소설의 매력을 훑어볼까 합니다.

 

 

2.『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공식』

 

‘안드로이드’라는 존재를 인간과 닮은, 혹은 인간이나 다름없는 로봇을 뜻한다면, 작중의 주인공 ‘윌슨’은 틀림없이 이런 존재에 부합하고 있습니다. ‘윌슨’은 비범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중에서 윌슨 또한 그 배경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P3). 모두가 알다시피 안드로이드로서는 최초로 개발되었습니다. 최초인 동시에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중간생략…) 저를 개발한 목적은 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저 역시 인간의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최초인 동시에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다’는 문구를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이 ‘윌슨’은 기존의 건조한 계산을 바탕으로 움직이던 로봇들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 존재는 명확히 주관에 의한 자기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언어를 따지면 그것이 어떤 세평이라는 인식보다는 제 자신의 탄생비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물론 이 자기평가라고 여겨지던 언어조차 인간의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얻은 정보의 추론일 수도 있겠으나, 윌슨 본인이 그것을 ‘자부한다’고 말하는 만큼, 본인은 그것이 자신의 주관이라 믿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즉, 이 ‘윌슨’이라는 로봇은 존재자체가 여느 기계들과 구별되는 무언가라는 전제를 작가가 깔고 가는 셈입니다.

 

(P11). 제1원칙 :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가하거나, 인간이 위험에 처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P12). 제2원칙 :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제1원칙에 위배되어서는 안 됩니다.

(P13). 제3원칙 :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 하지만,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제 존재를 자부하는 윌슨도, 결국 보이지 않는 목줄이 채워져 인간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묘사합니다. 네오위즈에서 발매한 게임 <P의 거짓>에서도 ‘위대한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로봇들을 속박하는 규칙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도 비슷한 제약을 두는 선택을 한다고 보입니다.

 

이 ‘원칙’이라는 이름의 속박은, 윌슨에게는 뒤덮인 인조가죽이나 다름없는 ‘껍데기’에 가깝습니다. 작품 내에서 반드시 깨야할, 더 나아가 그것을 깨부쉈을 때 나타날 변화에 대해 암시를 주는 것에 가깝죠.

 

(P15). 추가 제4원칙 : 로봇은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되며, 제1원칙, 제2원칙, 제3원칙, 추가 제0원칙에 의문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이런 인간이 내린 속박을 깨는 도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심은 ‘호기심’으로 대표됩니다. 영문도 모른 채 우주선에 태워 쏘아 보내진 윌슨은, 출발선도 목적지도 보이지 않는 우주를 무작정 떠돌며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P19). “이렇게 큰 행성이 우주 송간에 떠 있다니. 이 우주라는 것은 어던 식으로 생겨난 걸까? 정말 신비로운 거 같아.”

 

그런 윌슨이 자신을 버티게 만드는 방식은 표면이 아닌 내면을 가다듬는 것에 있습니다. 함께 우주선에 태워진 쓰레기를 뒤지며 물건을 감상하고, 우주를 내다보며 그 광경에 취합니다. 이 삭막하고 위태로운 상황이 그에게는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다던 ‘호기심’을 발현시키는 기폭제가 된 셈입니다. 하지만 우주선은 점점 마모되어가고, 윌슨을 지키던 공간도 점차 연약해지기 시작합니다.

 

(P33). 큰 충격이 우주선 전체에 일었다. (…중간생략…) 우주선이 파손된다면 영영 지구로 돌아가지 못 할 수도 있었다. 아직 자신을 구하러 온 이들은 없었다.

 

윌슨은 틀림없는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입력한 프로그램인지, 스스로 발현한 감정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이 그에게는 무척 위태로우며,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흔드는 시련으로 묘사됩니다. 마치 그 과정은 뗏목에 태워져 망망대해를 표류하게 된 어느 인간의 모습과 대입됩니다. 갈증에 시달리고, 공포에 목이 메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고문이 되어가는 과정을 로봇 ‘윌슨’에게 대입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은 마치 격한 포르노를 보는 것처럼 우직하고 가학적인 면이 있습니다만, 결국 몸과 마음이 첨단까지 내몰리는 그 경계야말로 ‘인간’이 되는 과정이라 작가는 정의하는 셈입니다. 그로 인해 윌슨은 자신이 느끼는 위기감에 대해 스스로를 규정하기에 이릅니다.

 

(P34).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감정에 공감하게 되면서 저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한계에 몰렸습니다. 호기심으로 쌓아올린 위안이 더 이상 약이 되지 못 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고, 그저 지구에 있는 누군가 찾아주기만을 바라는 나약한 욕망을 되뇌는 것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녹물처럼 차오른 감정의 끝에 던져진 것은, 그가 구원을 바라던 ‘인간’의 태도였습니다.

 

(P64). “윌슨은 우주선에 탄 게 아닌, 고장으로 폐기처림 되었음으로 종결하겠습니다.”

(P66). “안드로이드에 인권을 부여하는 자들이 보면 기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P67). “어차피 필요해질 때 만들면 되는 유사 인간 아닙니까? 지구 소식은 잘 모르지만, 가끔 들어오는 신규 우주 비행사에 따르면 본인이 인간인 줄 안다던데?”

(P68). “웃긴 존재입니다. 인간도 아닌 것이 인간 흉내를 내는 것은 소름 끼치는 일이지요.”

 

이 일련의 대화들은 작가가 작정하고 칼을 던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궁지에 몰려 있는 윌슨을 감정적으로 터뜨리기 위한 장치가 분명하죠. 실제로도 이 대화를 엿들은 윌슨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던, 로봇의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기에 이르죠.

 

(P85). 인간은 인간을 죽일 수 있습니다. 다만 나는 인간을 죽일 수 없다, 다만 저는 인간은 죽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공평합니다.

(P93). 그러나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은 무척이나 간단하고 명료했으나 반대로 자신이 인감임을 부정시켰다. 인간은 지금까지 살아 있지 못 한다. 우주선에 구멍이 뚫린 순간 죽었을 테다.

 

말 그대로, ‘살기’나 다름없는 불꽃을 품던 윌슨을 무너뜨린 건, 역설적이게도 그를 ‘인간’으로 규정하도록 만들어준 경계의 끝이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 담긴 정보에 따르면 보통 인간은 현 상황을 버티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윌슨은 그곳에 존재합니다. 멀쩡히 사고하고 분노합니다. ‘호기심’으로 발현된 ‘감정’으로 스스로 ‘인간’이 되었다고 규정했던 윌슨이지만, 결국 그를 문턱에서 넘어뜨린 것 또한 그가 ‘인간’으로부터 습득한 지식들, 그리고 인간의 실수로 비롯된 그의 시련입니다.

 

(P107). 들리십니까. 저는 지구인 윌슨입니다.

(P113). 여기는 지구인, 저는 캐스트호 선장입니다.

 

마지막에 그를 만들고 찬양하던 모든 인간들이 사라진 어느 시대에, 어느 지구인이 그를 발견합니다. 이 순간에도 윌슨은 스스로를 ‘지구인’…… 즉, 그와 같은 ‘인간’으로 규정합니다. 과연 이 ‘캐스트호 선장’이라는 지구인은 우주에서 감정을 깨우친 이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일까요? 아니면 인간을 닮고 있는 로봇으로 받아들일까요?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집필 활동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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