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아니, 허물을 먹고 싶어! <허물 끓이기> 감상

대상작품: 허물 끓이기 (작가: 끼앵끼앵풀, 작품정보)
리뷰어: 하얀소나기, 6시간 전, 조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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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신체 일부를 섭취한다는 행위는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사고하고 공감하는 행위에서 비롯됩니다. 그만큼 인간은 모든 사고와 잣대를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눈과 다리가 많은 벌레들에게는 혐오를 표하면서, 이목구비와 신체적인 구성에서 인간과 닮은 개와 고양이에게는 충분한 호감을 표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그 때문에 신체를 섭취한다는 행위는, 우리 인간에게 ‘식인’이나 다름없는 이미지로 변질되기 마련입니다.

 

이번에 읽은 <허물 끓이기> 소개하는 이유는, 이런 섭취행위(?)를 굉장히 유쾌하고 엉뚱한 상황에 빗대며 해당 이미지를 재단하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허물 끓이기>는 몸보신이 필요했던 화자가 ‘드래곤’이라고 불리는 환상의 이성을 통해 허물을 얻어내는 데에 성공하며 벌이는 가벼운 소란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분명 이성의 신체일부를 섭취하는 식인…… 아니, 식룡(?)의 이미지를 다루고 있으나, 그 이미지는 사뭇 달갑게 느껴집니다.

 

제가 이 작품을 즐겁게 읽은 이유를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해볼까 합니다.

 

 

첫째는 ‘거리’입니다.

 

사실 ‘섭취’라는 행위 자체는 인간이 실행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감을 상징하기 마련입니다. 연인 간의 관계를 빗대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손을 겹치거나, 입을 맞추거나, 심지어 옷을 벗고 몸을 섞는 다양한 행위들을 떠올려보면, 인간은 어떻게든 서로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왔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허물 끓이기>에서 거리감을 좁히는 방식은 무척 일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9) 대학 친구가 드래곤이니 이런 것도 손에 들어오는 구나. 요즘 몸이 허한 거 같다고 하니 선뜻 자기 허물을 내주는 것이 아닌가.

 

이 작품에서 ‘허물’은 곧 ‘선물’처럼 화자에게 주어집니다. 몸이 아픈 화자를 위해, 이성친구가 직접 제 허물을 건네주었다는 배경을 제시하죠. 화자는 친구의 허물을 ‘산삼’에 비유하며, 그 효능을 몸으로 느끼기를 원합니다.

 

(P.44) 그래서 일단 물을 끓여봤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안 떠오를 거 같았거든. 다행히 아이디어는 금방 생각났다. 영양 섭취가 목적이라면 푹 끓여서 육수를 우리면 되잖아.

 

사실 이 장면은 섬뜩함과 엉뚱함을 동시에 전해주는 장면입니다. 만일 화자가 몸보신 소재로 끓이는 것이 용의 허물이 아닌, 인간의 손톱이나 머리카락과 같은 신체의 일부였다면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이 장면은 현실성이 재현하는 일종의 호러 극으로 비춰졌어도 무리가 아니겠습니다.

 

하지만 그 신체일부를 전해준 친구가 ‘드래곤’이라는 환상적 배경은 생리적인 거부감이라는 벽을 유쾌하게 허물어줍니다. 어쩌면 ‘피부조각’이라고 설명될 수 있는 소재를, 이종족의 ‘허물’이라는 표현으로 치환함으로서 마치 이 상황이 평범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듯한 단란한 현장으로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P.68) 그 녀석은 드래곤답게 자기가 한 말은 꼭 지켰다. 내게 허물을 주겠다고 선언하기 직전까지 한참 머뭇거리기도 했고, 이런 걸로 거짓말하지 않으리란 건 오래 알고 지낸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럼에도 이 친구가 ‘드래곤’이라는 짐승의 이미지로 함몰되지 않습니다. 작가는 본문 내내 그녀가 인간과 소통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줄곧 강조하며, 이 행위가 인간적인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킵니다.

 

앞서 이런 섭취행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강조한다고 설명했습니다만, 이 작품에서는 그 이미지가 주는 불온함을 달래고 공감대를 유지하는 영리한 방식을 보여준 셈입니다.

 

 

 

둘째는 ‘흔적’입니다.

 

다시 떠올려보면 ‘허물’이라는 소재는 굉장히 이질적이 않나요? 이성친구가 ‘드래곤’이라는 데서 나온 발상으로 그칠 수도 있겠지만, 제 개인적으로 이 ‘허물’이란 소재는 인상을 달리합니다.

 

‘허물’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허물 :

동물이 탈피하면서 벗겨진 껍질이나 외피

 

사람으로 치환하자면 피부의 표피층이 죽어 떨어져나가는 ‘각질’에 가까운 녀석이죠. 그 이미지가 썩 깨끗하지는 않지만, 사실 머리카락 눈물 생리혈 등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들 중 깨끗하다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물학적으로 정의되는 부산물들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허물’이라는 부위는 다른 부산물들과는 차별화되는 특별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허물’이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리는 것은 짐승의 신체 일부, 혹은 그 전부를 뒤덮고 있는 얇은 막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허물의 이미지는 그 짐승의 과거 모습을 화석처럼 그대로 본뜨고 있기 마련이죠. 말 그대로, 생물의 순간을 담은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2) ‘좋아,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 내 허물 줄게!’

(P.14) ‘정말이지, 나니까 너한테 주는 거다. 이게 이무기 허물이랑 차원이 달라.’

 

그렇게 가정한다면 위의 대사는 단순히 신체일부를 건네주는 대사보다는, 정말 자신의 모습을 간직한 흔적 그 자체를 건네준다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무기 허물이랑 차원이 달라’라는 대사 또한 용이라는 종족으로서 그 하위 종족을 하대하는 느낌에 가깝지만, 이 허물을 본인의 흔적 그 자체로 볼 경우에는 사방에 널린 이무기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이기에 이 허물이 특별하다는 감성적인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하죠.

 

(P.90) “그거, 몸보신하라고 준 게 아니라 부적으로 준 거야. 너한테 좋은 기운 넣어주고, 나쁜 기운 날아가라고.”

 

물론 이 이성의 본질이 ‘용’이라는 존재이기에, 그 가치관을 인간에 빗대 사고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이 작품 자체가 그런 인간적 사고와 인간이 아닌 존재의 사고가 오해를 빚으며 나타나는 해프닝을 그렸으니까요.

 

다만 그 오해로 벌어지며 나타나고 확인되는 감정들은 기분 좋을 정도로 순수한 빛깔을 띠고 있습니다. 이성에 대한 걱정과 자신의 애정에 대한 표시로 자신의 흔적을 넘겨준다는 것은, 저에게는 그녀 자신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부적’이라는 것을 토로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할 정도죠.

 

*

 

떠올려보면, 화자가 허물을 대하는 태도는 무척 정성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귀한 약재를 다루는 데에서 비롯된 오해에 가깝지만, 종족이 다른 이성으로부터 받은 흔적을 자신의 방식으로 요리(?)하는 모습은, 표면적으로는 화자가 누군가를 아껴주는 애틋함마저 감지될 정도입니다.

 

때문에 상상해봅니다.

 

만약 화자가 자신의 허물을 끓여먹었다고 성을 부리는 이성에게 간지러운 변명이라도 건넸다면 어떠했을까요? 가령 “네가 건네준 몸의 일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을 뿐이야!”라며 만화 같은 대사로 그 진심을 받아들이는 시늉이라도 해준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요?

 

화를 낼까요? 기가 찰까요? 아니면 화자에게 질려버릴까요?

 

어느 쪽이든 이 이야기가 독자들에게는 달콤한 간식을 선물 받은 듯한 기분 좋은 한편이 되리란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합니다.

 

즐겁고 유쾌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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