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작업을 하거나 글을 쓸 때 눈물을 마시는 새 오디오북을 자주 듣습니다. 덕분에 눈물을 마시는 새의 텍스트를 자주 접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는데요. 성우 분들의 뛰어난 연기와 해석 덕분에 책으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듭니다. 또한 작가님의 어휘력과 문장력 덕분에 저도 힘을 얻어 글을 더 열심히 쓰게 되곤 합니다.
오늘 이 리뷰를 작성하는 이유는, 그렇게 눈물을 마시는 새 오디오북을 듣다가 불현듯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후반부의 스포일러, 사건의 진상, 핵심 반전이 전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눈물을 마시는 새를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꼭 읽어보신 뒤에 리뷰를 펼쳐보시길 바랍니다. 이 리뷰는 발자국 없는 여신이 만들어 낸 무언가에 대한 해석입니다.
심장탑에서 케이건의 몸에 잠들어 있는 어디에도 없는 신을 깨우기 위해 시우쇠는 외칩니다. 본문에서 발췌한 시우쇠의 대사입니다.
“이런 엄청난 규칙 파괴를 일으키기 위해 발자국 없는 여신이 지불해야 했던 대가는 가혹한 것이다. …… (중략) …… 그래서 발자국 없는 여신은 엉터리 윷가락을 만들어 내야 했어. 너를 대신할 윷가락 말이다!”
케이건 드라카를 대신하기 위한 네 번째 윷가락. 발자국 없는 여신이 가혹한 대가를 지불하며 만들어 낸 엉터리 윷가락.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것이 갈로텍이라고 생각합니다. 갈로텍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 두 번의 배신, 두 번의 상실.
케이건 드라카는 나가에 의해 두 번 속습니다. 케이건 드라카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은 나가들은 모든 나가의 목숨을 담보로 걸었고 그래서 케이건 드라카는 나가를 잡아먹습니다. 그 배신에 의해 잃은 것은 그의 조국, 그의 아내. 그가 가장 사랑한 것들입니다. 그 뒤로 케이건 드라카는 복수밖에 모르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오직 복수를 위해 그는 나가를 사냥하고, 삶아 먹습니다.
그리고 갈로텍은 케이건 드라카에 의해 누이를 두 번 잃습니다. 나가 정찰대였던 세페린은 케이건 드라카와 우연히 조우하여 목숨을 잃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연치 않게 그곳을 지나가던 요스비가 바로 그 장면을 목격하고 케이건은 세페린이 재생하지 못하도록 핵심 부위, 머리만 챙겨 달아납니다. 요스비는 세페린의 시신을 하텐그라쥬로 가져옵니다.
갈로텍은 그 잘린 목에 억지로 음식을 쑤셔 넣어 세페린이 머리를 재생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간신히 살아난 세페린은 복수만 아는 괴물이 되었고, 다시 케이건에 의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초반 케이건 드라카가 ‘머리를 재생시킨 나가’에 대해 티나한과 비형에게 설명할 때 ‘다시 만나니 반가워 하더군’ 이라는 대사로 그들이 다시 조우했음을 알 수 있고,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오’ 라는 대답으로 케이건이 이번에는 확실히 그녀를 죽이고 재생하지 못하도록 삶아 먹어 치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갈로텍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케이건과 갈로텍이 마침내 만났을 때, 갈로텍은 케이건에게 자신의 누이를 두 번 죽였다고 분노했죠.
케이건 드라카가 나가에 의해 두 번 속아 복수를 결의하게 된 것처럼, 갈로텍 역시 나가 살육자에 의해 누이를 두 번 잃음으로써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보트린은 갈로텍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요스비를 죽인) 갈로텍에게 남은 원수는 나가 살육자 한 명이며, 갈로텍이 반드시 그것을 해내고 말리라고. 그들은 그렇게 닮은 꼴이 됩니다.
2. 신체와 화신, 그리고 군령자.
갈로텍은 나가 중 유일한 군령자입니다. 왜 군령자여야 했을까요. 여신을 감금하기 위해서는 군령자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왜 갈로텍이어야 했을까요. 왜냐하면 갈로텍이 바로 여신이 빚어내는 가짜 윷가락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체와 화신에 대한 설명은 초반부, 하인샤 대사원에서 나옵니다. 륜이 신체와 화신에 대해 설명하며 군령자의 시작 역시 신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의 육에 두 개의 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을 시험해 보니 실제로 가능했다. 그렇게 군령자가 탄생했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케이건은 신체에서 화신이 된 존재입니다. 그의 몸에는 어디에도 없는 신이 깃들어 있었지만,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며 그 둘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진짜 윷가락이고, 가짜는 당연히 진짜를 닮아야 합니다. 하지만 갈로텍을 신체이자 화신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발자국 없는 여신은 그들의 계획에 의해 감금되어야 하기에, 여신은 그를 신체로 만드는 대신 군령자로 준비합니다.
군령자인 갈로텍은 놀라운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계획을 세운 것은 아마 세리스마이지만, 핵심적인 역할은 갈로텍이 해냅니다. 갈로텍이 영을 빼내고, 그 안에 가두어 여신을 감금합니다. 그리고 대장군으로 몸소 북부 정벌에 나섭니다. (그 과정에서 갈로텍이 가진 군령자로서의 능력은 더더욱 발전합니다. 그는 자각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정치적 계략까지 자유롭게 짜냅니다.)
여신은 감금되어 잠들고, 여신의 힘만이 세계에 남아 있습니다. 갈로텍은 그 힘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그는 동료가 닐러 준 내용으로 그 자신이 군령자이기에 원래부터 그의 것이 아니었던 힘을 자유로이 사용하는 데에 거부감이 없다. 때문에 여신의 힘에 누구보다 빠르게 익숙해진다, 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반만 맞는 내용입니다. 갈로텍이 여신의 힘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신체이자 화신인 케이건을 닮은 가짜 윷가락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여기에서 재미있는 대비가 보입니다. 그 자신이 화신인지 알지 못하는 케이건은 어디에도 없는 신의 힘을 사용할 수 없지만,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 자각하고 나서는 그 힘을 자유로이 사용합니다. 원래부터 그 힘의 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갈로텍은 그 자신이 군령자이기에 자신의 것이 아닌 여신의 힘을 자유로이 사용합니다. 거의 용인에 맞먹는 수준으로 능력을 사용하면서, 다른 수호 장군들과 비교했을 때 발군의 능력을 보입니다. 정작 갈로텍은 나가 살육자를 만났을 때, 그를 검으로 상대하고자 합니다. 여신의 힘이 아닌 그 자신의 손으로 복수를 이룩하려 합니다. 그러나 케이건에 의해 군령자가 아니게 됩니다. 케이건이 어떻게 군령자를 군령자가 아니도록 만들 수 있었을까요. 신이 행사할 수 있는 기적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애초에 하나의 육에 여러 영이 존재할 수 있는 그 능력 자체가 신의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사람의 육에 깃들기 위해 만들어 낸 그 능력을 도로 빼앗는 것은 쉽겠지요.
진짜 윷가락을 만난 가짜는, 이제 그 효용이 다 했고 쓸모를 전부 이루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윷가락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갈로텍은 화신에 가까운 군령자에서 한 명의 나가로, 인간으로 몰락합니다. (어쩌면 여신의 계획에서 갈로텍은 그 순간 카린돌에 의해 죽음으로써 퇴장했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케이건이 그를 군령자가 아니게 만듦으로서 그를 해방시켜 주었고, 복수를 위해 그 자신을 불태울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여신의 힘은 여전히 그에게 있었지만, 제 생각에 그는 더 이상 그것을 용인의 수준만큼 자유로이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정리합니다. 케이건 드라카는 화신이다. 발자국 없는 여신은 케이건 드라카와 같은 가짜 윷가락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를 위해 갈로텍을 군령자로 만들었다. 군령자는 신체에서 비롯되었으며, 동시에 그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자의 기억과 능력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게 돕는다. 즉, 갈로텍이 군령자가 된 것은 가짜 윷가락이 되어 진짜 윷가락을 닮기 위한 것이다.
3. 변화와 재생산, 복수.
제2차 대확장 전쟁으로 북부와 남부는 마침내 섞이고, 변화하고, 재생산합니다. 나가들은 전쟁을 알게 되고 북부인은 왕을 찾아내며 도깨비는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구조하고 레콘은 물로 피투성이 도깨비를 씻어냅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고,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 원인에 전쟁이 있습니다.
그리고 갈로텍이 바로 그 전쟁을 일으킨 자입니다. 바로 갈로텍이, 잠들어 있는 어디에도 없는 신을 대신하여 변화와 재생산, 전쟁을 만들어 낸 가짜 윷가락입니다.
갈로텍이 전쟁을 원했다는 내용은 꽤 자주 나옵니다. 비아스는 갈로텍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고 여신을 감금한 계획에서 갈로텍이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계획을 세운, 혹은 참여한 이유가 사적인 목적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또한 가주들이 감금당한 뒤 혼란에 빠진 나가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이 바로 갈로텍이지요. 갈로텍이 바로 나가들을 북부로 이끕니다. 불신자들이 여신을 감금했다고 주장하며, 여신을 찾기 위해 북부로 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대장군이 되어 북부를 유린합니다. 그 자신의 진짜 목적은 나가 살육자를 찾아내어 복수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북부를 샅샅이 뒤져 많은 북부인을 학살하지만 정작 나가 살육자에 대한 어떤 힌트도 얻지 못합니다.
케이건 드라카가 복수를 위해 나가를 사냥해 삶아 먹었다면, 갈로텍은 복수를 위해 전쟁을 일으켜 북부인을 죽입니다. 시우쇠는 말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곧 먹는 것이라고. 존재를 위해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해치고 먹어 그 자신의 양분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갈로텍은 전쟁으로 북부를, 불신자들을 죽여 먹었습니다. 그것으로 그 자신의 안에 있는 복수를 계속 불태우고, 그 자신이 움직이는 양분으로 삼았습니다.
케이건은 갈로텍을 향해 말합니다. 어쩐지 우리는 서로 닮은 것 같군. 그들은 복수밖에 모르는 괴물들인 동시에, 진짜 윷가락과 가짜 윷가락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4. 발자국 없는 여신의 가혹한 대가.
시우쇠는 가짜 윷가락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발자국 없는 여신이 가혹한 대가를 치렀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전쟁으로 인해 죽은 무수한 나가일 수 있고, 그 자신의 종족에 의해 감금되어야 했던 처지일 수 있지만 저는 이것을 보다 직관적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발자국 없는 여신은 세페린에게, 요스비에게, 그리고 카린돌에게 깃들어 있었습니다. 세페린의 안에 깃들어 있던 발자국 없는 여신은 케이건에 의해 죽임 당합니다. 그 순간 발자국 없는 여신은 요스비에게 전령하고, 요스비는 갈로텍에 의해 죽임 당합니다. 요스비가 바로 세페린의 죽음을 목격했음에도 나가 살육자에게 복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위해 발자국 없는 여신은 그 자신이 깃든 신체를 두 번이나 죽여야 했습니다.
발자국 없는 여신이 치른 대가는 그 자신의 죽음입니다. 신체에 깃든 신은 그 육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요? 하나가 되지 않은 그들은 분명히 다른 존재이지만, 발자국 없는 여신은 깃들어 있던 요스비의 기억과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죽음에는 발자국 없는 여신의 힘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5. 여행자.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여행자는 대금을 붑니다. 작중에서 대금을 자유로이 분 사람은 갈로텍입니다. 여신의 힘이 남아 있는 그 시점에서, 갈로텍은 여신의 힘을 이용해 북부를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갈로텍이 아닌 케이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걷는 것이 능숙하다는 묘사라든가 마법처럼 대금을 꺼내고 다시 집어넣는 것, 암살자와 같은 모습으로 비석에 다가가는 몸짓 등으로 그가 노련한 여행자이며 능숙한 검객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갈로텍은 노련한 여행자도, 능숙한 검객도 아니지요.
그 장면에서 케이건이 대금을 부는 묘사가 나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가짜가 진짜를 닮듯, 진짜 역시 가짜를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갈로텍이 케이건을 닮았듯, 케이건 역시 갈로텍을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금을 부는 케이건은 갈로텍과 닮아 있습니다.
떠오른 것들을 곧장 글로 옮긴 것이기에, 본문을 좀 더 찾아보고 깊이 해석한다면 더 많은 증거 혹은 힌트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모두 제 해석이며, 확실한 답이라기보다는 가설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진짜 답은 작가님이 아실 테고, 어쩌면 진짜 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죠. 모든 것이 답인 동시에 아무것도 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반드시 이것이 답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비평이 아닌 감상 카테고리로 글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