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고 주관적임을 밝힙니다. 또한 이 작가님의 작품을 읽은 건 이것이 처음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아래 스포일러 창은 작가님이 마음의 준비를 하신 다음 열어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별로 듣기에 좋을 소리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일단 저에겐 아무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가 없었습니다. 밍밍했습니다. 만약 제가 리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3분의 1지점에서 읽기를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왜냐구요? 전 고등학생이 아니니까요. 별달리 흥미가 될만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이 평범한 남학생에 대해서 별로 알고 싶은 마음이 안 들었으니까요. 제가 수능이 끝나고 대학 갈 때를 기다리는 고3 학생이었다면 흥미를 가졌을지 모릅니다. 아니 제가 고등학생만 되었어도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해 하며 읽었을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을 먼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혹은 제가 고3 무렵에 풋풋한 연애를 했던 경험이 있다면 그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읽어나갔을지 모를 일이죠. 근데 그런 게 전혀 해당되지 않는 저로서는 이 소설을 읽는데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가 없었어요.
이 소설은 펼쳐놓은 일기장 같았습니다. 심지어 방학숙제로 제출해야 할 일기장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내용은 예상 가능하고 끝까지 읽어봐야 결국 그럴 것 같았다 하는 내용 말이죠.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 아 고3 겨울이 배경이구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1인칭 시점이고 주변 인물들을 하나하나 만나게 될 때까지만 해도 뭔가 기대감이 있었죠. 학교를 배경으로 소설을 쓴다면 떠오를 만한 게 학교 폭력? 왕따? 여자친구와의 썸씽? 뭘까? 상상해보게 되잖아요.
고3 겨울, 그 특이한 시기에 벌어질 법한 개인적인 특수 경험도 꽤 있을 수 있겠죠, 그 시기는 좀 특별하긴 하니까요. 빡빡한 공부의 압박에서 벗어나 이제 막 다른 것들에 눈뜨기 시작하는 시기. 12년간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쉼표 같은 시기이니까요.
하지만 이미 소설 초반에 옆자리 친구와 나누는 대화에서 단짝 친구의 존재가 드러났으니 왕따는 아닌 것 같고 물 마시러 갔다가 고개가 처박히자 아, 학폭인가? 하다가 또 아니라니 그럼 저 터프한 여자친구와의 이야기일 것인가? 새로운 기대감으로 변환됩니다. 아니면 현실에 없던 새로운 어떤 존재가 출몰하는 걸까? 이 짧은 부분을 읽어가면서 독자는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읽어가죠. 그러면서 계속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거죠. 그럴 때 뭔가 사건이 빵 터지거나 혹은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 같은 문장들이 서술되거나 뭔가 계속 읽어나가게 하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근데 없었어요.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일상이 계속 펼쳐지고 있습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가리키며 여자친구 시은과 나누는 대화에서 음? 뭔가 있으려나? 또 한번 기대를 해봅니다. 부모님도 없는 집에 가자는 시은. 은근 유혹적입니다. 근데 첫키스를 해도 모자랄 판국에 ‘네가 먼저 쳤잖아’ 대결을 하고 있군요. 뭐 나름 귀여운 커플이긴 합니다만 …. 계속 이런 식입니다. 독자의 기대감 혹은 흥미를 절대 채워주지 않으면서 이야기가 계속 흘러가죠.
이 이야기가 왜 1인칭 시점을 택했는지도 사실 의문입니다. 설혹 현실에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1인칭 시점이라면 개인의 특이한 내면적 풍경들로 좀 더 풍성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하다못해 혈기 왕성한 남학생이 여자친구를 보면서 에로틱한 상상 혹은 그런 기분들을 느끼는 부분도 없습니다. 상상인데 뭘 못하죠? 왜 안하죠? 19금 소설이 될까봐 두려워서? 이제 막 미성년을 마감할 찰나의 남학생이 느낄법한 그 뜨끈뜨끈하고 생생한 욕망을 살짝 내비친다고 해서 뭐랄 사람이 있을까요? 여자친구와 단둘이 불꺼진 빈집에 있음에도 눈내리는 밤에 눈사람을 만드는 낭만적인 순간조차도 남학생의 내면은 별다를 게 없군요.
8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라서일까요? 너무 남자친구 같은 여자친구니까 그럴 수도 있을까요? 그냥 조금 뭔가 기대하는 듯한 감정을 시은에게 내색해 보는 정도에서 그치고 말았어요. 하긴 특이하게도 성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럴 수 있다 합시다.
그나마 후반부에는 이런 저런 사건들이 좀 생기네요. 근데 말이죠. 독자가 여기까지 과연 읽게 될까요? 전 그게 의문스러웠어요.
거의 모든 소설작법 책들을 보면 이렇게 말해요. ‘궁금하게 하라.’ 이건 단편소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체 이 사람이 뭐가 말하고 싶은 거야?부터 아 다음이 어떻게 될까 사건이 어떻게 해결 될까? 얘네들(주인공들)은 어떻게 될까 등등 궁금하게 만들 장치는 충분합니다. 근데 그 모든 걸 하지 않았어요. 그냥 따라오라고만 하는데 끈질기게 독자를 따라붙게 만들려면 문장의 힘이 세야 합니다.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서, 혹은 문장에 홀려서까지는 아니라도 그 언저리까지는 가주거나 아니면 앞 문장이 뒷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결코 눈을 뗄 수 없거나 정도는 돼야 별 사건 없는 이야기를 읽을 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일기도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잖아요. 그건 굳이 왜 읽을까요?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본다는 기분이 들게 해줘야죠. 누군가의 비밀을 탐지하고 나만 알고 있는 것 같은 내밀한 기쁨을 느끼게 해줘야죠.
문학작품들 보면 별 사건도 없이 계속 흘러가는 작품들이 분명히 있어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같은 작품도 별 사건이 없죠. 하지만 문장의 힘으로 읽게 됩니다. 타인의 자서전은 왜 읽을까요? 그가 성공했다는 전제하에 읽게 되는 거잖아요. 그냥 평범한 누군가 자서전을 냈다 하면 읽을까요? 뭐 노숙자가 자서전을 냈다 하면 왜 노숙자가 됐을까 궁금해서라도 읽게 되긴 하겠지만요. <안네의 일기>는 어떤가요?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갈지 모른다는 특수한 상황을 산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안네의 평범한 일기문들이 다르게 읽히는 거잖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평범한 이야기,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이야기라면 결말을 미리 밝히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8년간 사귄 여자친구와 이별하고 말았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뭔가 궁금하지 않나요? 끝까지 읽게 될 것 같지 않나요? 그러니까 왜 헤어졌다는 건데? 결말에 별 내용이 없어서 욕을 한바가지 늘어놓더라도 어쨌든 다 읽게 하는 데는 성공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중간 중간에라도 시은에 대한 마음을 표현해줄 수 있는 서술이 좀더 있어야 마지막 부분의 ‘가지마’에 좀더 감정이입이 될 텐데요.
만약에 지금 작가님이 고등학생이고 개인적으로 연애경험이 없는데 이런 소설을 완성지었다면 작가님 개인으로서는 성공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어쨌든 여기에 풋풋한 첫사랑과의 이별이 잘 드러나 있으니까요. ‘있을 법한 이야기’를 잘 빚어놓았으니까요. 하지만 독자를 끌어당기고 붙잡아 놓기에는 뭔가 부족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작가님은 스포일러창을 클릭했다는 것이겠죠? 왜 그 창을 클릭했나요?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