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법, 심리의 삼중주 공모(비평)

대상작품: 그건 그냥 단순한 농담이었어요 (작가: 리리브, 작품정보)
리뷰어: 영원한밤, 3시간 전, 조회 5

※ 본 리뷰의 스포일러 부분은 소설의 후반부도 다루고 있습니다. 스포일러 부분은 감상 후 보는 것을 권합니다.

스크롤을 다 내렸을 때, 동시에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면서 ‘이 작품은 나중에 글로 감상을 정리해봐야겠다’는 글이 종종 있습니다. 특히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와 의도가 비교적 선명하게 다가올 때, 그리고 그 감상이 오랜 여운을 남기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에겐 본작이 그랬습니다.


1. 장르에 대해

본작은 장르는 추리/스릴러라고 분류되어 있지만, 메타적 요소도 강해서 추리/스릴러 작품이라고 한정해서 접근하면 작가가 의도한 재미를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추리극으로 접근하면 ‘나’가 범인일까, 아닐까라는 1차원적인 의문에 갇혀버릴지도 모릅니다. 독자를 화자의 입장에 가두고 불완전한 정보만 주는 편면적 서술을 통해서 심리적 압박의 공백 효과를 극대화하고, 중심 사건이 되는 범죄 여부를 증거보다 심리 묘사와 반응 변화를 통해 보여주면서 심리적 긴장감을 증폭시킵니다. 몰입과 거리감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속삭이듯 서서히 조여오는 서스펜스가 흥미진진합니다. 탁월한 서술방법을 채택한 심리 서스펜스라고 해야할까요.

전 스크롤을 다 내리고 마지막 문장까지 눈에 들어왔을 때, 문득 “롤리타”가 떠올랐습니다.

 

2. 미필적 고의, 1급 살인

작가님이 이 작품을 위해 어디까지 연구를 했을까 싶었던 부분입니다. 소설은 문화적, 언어적 차이로 인한 오해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중반부에 이르러 ‘1급 살인죄’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분위기가 급격히 반전됩니다. 본격적으로 ‘나’를 믿을 수 없는 화자로 보기 시작하게 되면서, 뇌 한쪽은 “‘나’는 살인자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지배하게 됩니다. 여기서 ‘나’를 완전히 벗어나 공백의 수사관이 되는 순간 전반부와는 또 다른 편향에 의해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점차 침착함을 잃어가는 ‘나’의 태도를 통해 심증은 ‘나’에게 많이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그럼에도 ‘나’를 완전히 놓지 못하게 하는 요인에는 우리나라 형법과는 달리 ‘1급 살인’과 ‘2급 살인’을 구분하는 미국 형사법 체계도 한 몫한다고 봅니다.

중살인과 보통살인을 구별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직접적이든 미필적이든 살해의 고의가 있고 사람을 죽였으면 살인죄로 규율합니다. 양형인자의 조사를 위해서 범행의 동기를 확인은 하지만, 그렇다고 적용되는 조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1급 살인으로 기소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요소인 고의와 더불어 ‘계획성’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1급 살인죄’라는 단어의 등장과 함께 그 전에 공백의 대화자가 물었던 질문들은 모두 살인의 동기와 계획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나’와 함께 서서히 그 날의 사건을 향해 조여들어오는 수사의 긴장감을 맛보게 됩니다.

 

3. 언어의 왜곡, 그리고 차별

롤리타가 화자의 언어를 통해 언어가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는지-를 실험했다면, 본작은 한국어와 영어를 놓고 작중에서도 언어가 왜곡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그러한 언어의 왜곡이 현실의 독자에게는 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하는 듯 합니다. 두 언어와 문화권의 차이가 초반부 몰입의 소재인만큼, 작가가 공을 들여 짠 것이 느껴집니다.

롤리타가 권력과 성적 착취를 폭로하는 불편한 성격도 가졌다면, 본작은 ‘차별’이라는 불편한 주제를 간결하고 흥미롭게 보여주는 모습을 보입니다.


무궁무진하고 다양하게 뻗어나가는 것이 소설의 매력이지만, 본작처럼 의도가 드러나는 작품에서는 작가의 의도를 음미하는 것이 괜찮은 감상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 어지간하면 설명서를 충분히 읽고, 튜토리얼을 먼저 하며, 정해진 레시피를 지키는 편입니다. 창작자가 만들어 놓은 방법은 가장 재밌게,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창작자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결과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리뷰를 쓰기로 마음을 먹은 작품에 대해서는 오롯이 제 생각을 글로 정리하지 못하고 선입견이 생길까봐 리뷰를 보지 않는데, 이미 3건의 리뷰가 있길래, 사실은 혼자 오독하고 내 편견으로 글을 써내려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위와 같은 심리 상태를 거치면서 읽었고, 다 읽었을 때 만족감이 상당했기 때문에 감히 제 감상법을 공유해봅니다.

 

브릿G 팀이 아무 작품이나 추천하는 게 아니었어요.

재밌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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