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의 하룻밤: 디테일이 인상적인 훈훈한 탈출극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히틀러와의 하룻밤 (작가: Victoria, 작품정보)
리뷰어: 제오, 18년 1월, 조회 85

(혼잣말하듯 반말로 쓰겠습니다. 리뷰 내용은 사실상 스포일러 덩어리이니 주의해주세요.)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금발의 유태인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히틀러의 괴상한 집착으로 위기에 처하자, 온 세상이 탈출을 도와주는 훈훈한 이야기.”

 

우선, 디테일에 관해.

디테일이 인상깊었다. 등장하는 아이템들을 대강 설명하고 넘어가도 될만한 장면에서도 일일이 이름을 언급한다. 예를 들자면, 그냥 독한 술이라고 해도 될 것을 ‘상하이 크리스털’이라는 이름을 짓고, 그 술의 유래를 설명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최근에 스티븐 킹의 단편집을 읽으면서 디테일한 묘사에 감탄했었는데, 이 소설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자신이 살아온 시공간을 다룬 것이고, 이 소설의 작가는 – 아마도 –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노력이 특히 돋보인다.

혹시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묘사를 디테일하게 하는 것은 서양권(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양해를…) 대중소설의 일반적인 스타일이고, 작가는 이 소설을 말 그대로 서양권 대중소설로 보이게 하기 위해 그 성향을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 디테일한 묘사의 소재로 실제 독자들인 한국인들이 잘 모를 수 있는 유럽 관련 아이템 – 예를 들면 ‘북해의 바다’ – 들을 기꺼이 사용한 것을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작가는 거의 성공했다. 적어도 파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내 기준으로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당시 프랑스 파리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프랑스 작가 – 혹은 서양권 작가가, 역시 서양권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의 번역본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의’라고 말한 것은, 아깝게도 중간에 그 느낌을 깨버리는 구절이 있어서다. ‘…유교 성리학자같은 표정을 지었다’. 서양권 작가들이 유교 성리학자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대상으로 하는 서양권 독자 중에 유교 성리학자를 소재로 하는 표현을 알아들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마 서양권 작가라면 그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양식 묘사 자체도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다. 서양권 소설과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게 영리하고 장황한 문장인데, 그게 심하면 상황과 맞지 않아 거북한 느낌이 들게 된다. 이런 거다. “폭웅우가 몰아치는 바닷가의 기암절벽에서 중국 황제만이 먹을 수 있는 붉은 제비집을 따온 게 아니라구.” 어쩐지 숨어 사는 가정의 아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소박함이 깨지는 느낌이랄까.

표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 걸렸던 것을 하나 더 말하자면, 색을 황금과 비교한 부분들이다. 일단, 많아서 반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가가 황금빛이라는 중요 소재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피부까지 황금색과 비교한 건 좀 너무 나간 것 같다. 대신 커피색 같은 것과 비교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제 훈훈함에 관해.

주인공은 위기를 맞지만, 주인공 주위의 세상은 그를 위해 너무도 편리하게 작동한다.

대강 이렇다.

* 히틀러는 친절하게도 호텔 내에 부하들을 한 명도 남겨 두지 않고 떠난다.

* 맹장염에 걸린 여성은 주인공과 병원장이 병원에서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 절묘한 시각에 죽어 준다. 그녀가 죽지 않았으면 병원장은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이니 일찌감치 퇴근해버렸을 것이고, 주인공은 돈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 병원장은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 순순히 돈을 넘겨준다.

* 양복점 주인은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늦게까지 가게를 열어놓고 있다.

* 카페 주인인 주인공 친구는 때맞추어 화려한 자동차를 사고, 주인공이 탈출하기 직전에 인도받는다. 그리고 별 저항 없이 주인공에게 판다.

* 주인공의 아내와 친한 5층의 사교계 여성은 흔쾌히 파티 의상을 주인공의 아내에게 준다.

* 호텔 주인은 비밀통로가 (5층에!) 있는 호텔을 샀다.

* 주인공 가족은 그 호텔의 6층에 투숙해 있다.

* 주인공의 아내는 스파이 소설을 즐겨 읽는다. 비밀통로를 찾으려는 것처럼.

* 비밀통로는 하필 아내와 친한 5층 사교계 여성의 방에 있다.

* 비밀통로인 벽난로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상태다. 마치 주인공들의 옷이 더러워져서 의심받는 것을 방지하려던 것처럼.

* 아내는 무용을 배웠었다. 마치 탈출의 순간에 장애물을 넘기 위해 그랬다는 듯이.

* 경찰은 주인공 차의 꺼진 시동을 친절하게 켜준다.

이름이 나온 등장인물 중에 주인공의 탈출을 직간접적으로 돕지 않은 사람은 간호사 마리 정도다. 하다못해 간호사도 수동적이나마 주인공을 병원으로 불러내는 역할을 한다.

마치 야훼가 자기 아들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에 기분이 좋아져서 자기 백성인 유태인의 길을 인도하는 것 같다. 스토리를 우연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현대 소설에서 바람직하지 않다지만, 이 정도가 되면 작가가 작정하고 그렇게 쓴 것 같아서 차라리 훈훈해진다. 어쨌든 크리스마스가 아닌가! 기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하필 자기 아들을 인정하지 않는 유태인을 자기 아들 생일 (하루 전)에 도와주는 야훼도 아이러니하다. 아예 작가가 탈출 시퀀스를 조금 더 밝고 (블랙) 코미디스럽게 썼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연성에 대해 조금.

소설을 읽은 뒤 유태인에 대해 좀 찾아봤더니, 현대의 유태인들은 백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용모를 지녔다고 한다. 그렇다면 금발도 드물지는 않을 테고, 따라서 히틀러가 굳이 주인공의 딸을 찾아 파리까지 잠행할 이유도 없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야기를 이렇게 썼으면 어떨까. 금발이나 혈통 운운은 핑계일 뿐이고, 히틀러는 젊은 시절 만났던 주인공에게 무언가 원한을 품거나, 다른 집착을 가지게 되어 찾아왔다고. 여기서 좀더 나가자면 유태인 학살 자체가 그 원한이나 집착의 확장에 의한 것이라고 해 볼 수도 있겠다. 너무 나간 것 같기는 하지만.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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