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SF의 하위 장르로, 보통 세계종말을 다룬다. 종말, 대재앙을 뜻하는 아포칼립스와 이후를 뜻하는 단어인 포스트와 결합하여 종말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디스토피아와 언뜻 비슷해보이지만 디스토피아는 문명사회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환경오염이나 질병, 독재 등으로 암울해진 사회를 이야기한다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문명사회가 무너진 이후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수지와 명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의 생존자다. 평범한 일상을 보낼 때, 층간(?) 소음과 우유 테러 사건으로 둘의 사이는 개와 고양이만큼 원수지간으로 치달았으나, 결국은 살아남기 위해 점차 서로에게 협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수지는 군에서 복무한 경험을 살려 외부와의 연락을 담당하고 명해는 주로 식량을 담당한다. 그간 쌓아온 감정의 골을 생각하면 둘의 협력은 좀 놀라웠다. 역시 사람도 동물의 일종인지라 생존본능은 어쩔 수 없나보다.
어떻게든 살길을 찾겠다고 노력하는 와중에도 명해는 근처 아파트에 들러 아버지를 챙긴다. 반지하에 살아 자성풍에 휩쓸리는 걸 피할 수 있었던 자신과는 달리 고스란히 문명을 파괴한 폭풍에 휘말려 뇌가 녹아버린 아버지를. 이런 세계관에서 가족을 강조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한층 더 풍부한 재미를 선사한다. 미우나 고우나 내 가족이니 챙길 것인지, 아니면 내 생존에 방해가 된다면 가족이라도 버리고 갈 것인지. 살아 움직이는 고깃덩어리가 된 아버지를 챙기는 명해의 모습을 보며 ‘내가 명해라면?’ 이라고 상상했을 때, 고뇌하는 주인공을 보는 독자는 손에 땀을 쥐고 작품에 몰입한다. 당장 자신의 생존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 정도로만 아버지를 챙기는 명해처럼 나도 그럴까? 아니면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아버지를 대피시킬까? 어떤 선택을 할지는 본인만이 알겠지.
자성풍으로 난리가 난 세상에서 사람들은 본인의 능력에 따라 국가에서 제공하는 대피소를 이용할 수 있는지 아닌지 갈린다. 의사나 기술자와 같이 본인이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으면 쓸모 있는 인간으로 분류되어 대피소로 이동하고, 아니라면 그저 알아서 각자도생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명해는 군인한테 알아서 살아남으란 이야기를 들었으나 철기는 의사인 관계로 같이 대피하자는 권유를 받은 것만 보아도 그렇다. 내가 만약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 떨어진다면 명해와도 같은 신세가 되겠지.
개인적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감상하는 포인트는 두 가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외력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와 기존의 법과 도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심각한 갈등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하느냐. 앞으로 수지와 명해가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