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개인적으로 텍스트를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나의 관점을 제시해주는 평론을 선호합니다. 그 관점이 텍스트의 내용 전반을 관통할 수도 있고 텍스트의 아주 일부분에만 해당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저렇게도 볼 수 있구나 라고 편하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있는 난쟁이”라는 표현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근대’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두고 학자들 간의 의견이 분분할 때 한 학자가 한 말이죠. 그저 “매우 다르다”라는 말 외에는 ‘근대’를 정의할 수 있을 만한 보편적인 특징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동양은(특히 식민을 당한 우리나라는요) 소위 ‘근대’라고 불리는 시기를 두고 하나의 공통점을 뽑아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특정한 단어로 그 공통점을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요. 아마 그것은 ‘폭력’일 것입니다. 일본에게 있어서는 검은 배가 그러할 것이요. 조선에게는 일본이 그러하겠지요. “내지인”이라는 표현만 해도 그렇습니다. 식민(殖民)은 다른 나라에 자국민을 보내 그곳에서 살게 하여 직접 지배하는 방식입니다. 조선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자신들을 지배하러 온 일본인들이 “외지인”인 것이 당연하지요. 하지만 조선인들은 일본인을 “내지인”이라고 표현합니다. 소수의 이방인이 내지인이 되어버리는 것, 그것은 폭력을 수반하였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그 폭력은 육체적이기도 했고 정신적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식민시기를 10년 단위로 무력통치, 문화통치 다시 무력통치로 나누는 것도 그 폭력의 양상을 두고 나누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루모스 경성]에서 드러나는 경성의 시기는 문화통치가 끝나고 다시 무력통치로 접어든 시기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근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개화가 되었죠. 가히 계몽(Enlightenment)의 시대라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속에 숨어 있는 폭력마저 알아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폭력에 가담해 살아남고자 하였고 누군가는 내면의 부끄러움을 몰아내고 그 폭력에 저항하는 윤동주가 되었습니다. 글의 화자인 ‘나’도 그 폭력을 잘 알고 있는 자였습니다. ‘전차’를 타고 다니는 그도 비록 신문물에 매료되기는 했지만 순사들이 자행하는 폭력을 보며 고통 받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다만 그의 대응은 윤동주처럼 절정에 서있기 보다는 절정에서 살짝 빗겨나 있는 김수영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김수영이 소시민이라면 ‘나’는 경계인입니다. 그는 일본인이자 조선인이었죠. 출생 자체가 ‘내선일체’였던 그는 경계에 서 있는 자였습니다. 조선인이면서 일본인인, 빛이면서 어둠인 그 경계에 서 있는 ‘나’는 양 측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동료 순사에게 그는 조선인일 뿐이고 할머니에게 그는 일본인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는 빛이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다른 무언가를 어둠으로 규정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밝혀내 빛에 휩싸이게 만드는 계몽의 폭력을, 식민의 폭력을, 일본의 폭력을 인지한 자였습니다. 그 자신도 일본인이기에 그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었죠. 그는 그저 죽은 학생을 몰래 묻어주는 방식 외에 다른 저항을 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때문에 민족(민족이라는 어휘와 그 개념 자체가 식민시기에 일본이 독일의 Volk를 번역해 일부러 퍼트린 어휘이기 때문에 사실 민족이라는 어휘 자체는 일제의 폭력과 분리해서 볼 수가 없습니다) 따위는 없이 모던한 개인으로만 존재하는 해리는 그에게 충격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존재였죠.
여기서 해리의 이야기를 다시 해볼까요. 해리는 영국에 있는 마법학교에 진학해 모던한 마법사가 되었지만 이방인일 뿐이었습니다. 동양 여인으로서 외국학교 생활은 쉽지 않았고 그녀의 국적도 아직은 조선이니까요. 그녀는 서구에 가서 가장 서구적인 판타지(마법)를 배웠지만 행복한 기억이 없기에 디멘터를 무찌를 수가 없었죠. 아마 그녀가 중립국인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명훈은 북한과 남한 모두를 거부하고 중립국인 스위스를 선택하지만 결국에는 인도로 가는 배 안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죠. 이상적인 공간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해리는 동양인이고 여인입니다. 동양인 여성은 타자 중의 타자입니다. 객체인 타자는 결코 주체를 통해 또 다른 주체로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동양을 객체로 만들어 주체로 거듭난 서구에 가서 그들의 방식을 배운다고 동양이 주체가 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일본만 해도 그러하지요. 일본은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서구의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서구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일본은 다위니즘을 소셜 다위니즘으로 변형해 이를 적극적인 이데올로기로 삼았죠. 서구가 다위니즘을 기반으로 “애초에 우리의 유전자가 너네보다 우수하니 너네는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 밑이다”라는 폭력적 시각을 가졌다면 일본은 그 DNA라는 것은 사실 문화적인 것을 포함하고 교육을 통해 바꿀 수 있다는 관점을 추가하였습니다. 그래야만 자기들도 주체가 될 수 있으니까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실제로 그들은 ‘우리는 동양인이 아닌 유럽인이다’라고 생각했구요. 일본은 주체를 꿈꿨고(물론 여기서 주체는 긍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주체는 반드시 객체가 있어야만 주체가 될 수 있으니까요. 폭력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을 객체로 삼았죠. 화려한 문물로 그들을 유혹하면서요. 화신의 네온사인과 혼마치의 루미나리에는 그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선명한 어둠을 만들어내죠. 그래서 디멘터들이 백화점에서 득실거리는 거겠죠. 하지만 그건 일본의 욕망일 뿐 서구 강국들은 그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조선 정도에서 만족했더라면 서구 강국들도 나서지 않았겠지만 일본은 더 많은 걸 원했거든요. “감히 짝퉁 주제에 오리지널을 넘봐?”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루모스 경성]의 처칠을 보십시오. 그는 마법사들의 폭탄으로 일제를 무너뜨렸습니다. 가장 서구적인 것으로 말입니다. 그 폭탄은 가장 서구적인 과학기술임과 동시에 서구의 판타지가 가장 잘 응축된 마법이죠. 아. 이렇게 허망하게 말입니다. 아직 우리는(여기서는 해리와 나) 디멘터를 겨우 쫓아낼 수 있는 고양이 한 마리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그들은 이렇게 한 방에 일제를 무찌르고야 말았습니다. 서구는 우리가 독립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앗아간 뒤,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객체로 남게 되었죠. ‘나’가 원했던 것은 자기가 누구를 짓밟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그저 아무도 짓밟히는 사람이 없었으면 했던 건데요. 죽은 자들은 돌아올 수 없을 것이고, 천황의 이름으로 징집되었던 사람들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저 먼 타지에서 또 다른 이방인인 디아스포라가 되어 살 것입니다.
회의에 참석해서 마법세계가 머글들의 세계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해리의 말. 전 사실 이 말을 듣고 씁쓸했습니다. 여기서 마법세계는 서구이고 머글들의 세계는 객체들의 세계라고 읽혔거든요. (작가님이 그렇게 의도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냥 그렇게 읽혔습니다. 독자는 자신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작품을 읽곤 하니까요) 그들의 지팡이를 빼앗지 않는 이상 그들은 다시 머글의 세계를 농단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지팡이를 쥐고 있고 끊임없이 머글의 세계에 관여합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양상만 조금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진 바는 없지요. 지금은 제국주의가 아닌 문화제국주의의 시대니까요. [루모스 경성]만 해도 외국의 소설이자 영화인 [해리포터]에서 아주 당연하게 세계관을 따오지 않습니까. (세대마다 다르긴 해도 해리포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요..) 다만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점은, 해리가 쏘아낸 빛은 우리를 어둠으로 규정 지었던 폭력의 빛이 아닌 사랑에서 기인한 따뜻한 온기라는 점입니다. 서구의 마법을 아무리 외쳐봐도 우리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지요. 해리와 ‘나’가 나누었던 행복이 없었다면 그들은 디멘터의 키스를 받게 되었을 겁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아니라면 아무 것도 해낼 수가 없습니다. 모던한 개인으로만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혹독한 세상이거든요.
개인적으로 맨 처음 리뷰는 [루모스 경성]으로 해보고 싶었고(정말 완전 너무 취저 작품이었습니다. 전 해리포터를 읽기는 했지만 즐긴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루모스 경성]도 루모스보다는 경성에 사실 더 포커스를 맞춰서 읽었죠) 리뷰 공모에 지원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시간이 너무 없어서 이제야 써서 올리네요 ㅠ 사실 제가 쓴 건 그냥 하나의 관점이지 이 관점으로 작품의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작품을 풍부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는 거고.. 제 개인적 가치관과 유리될 수 없기에 자의적 해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라고 읽어주시면 됩니다.
추신- 작가님 좋은 작품 많이 많이 써주세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