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의 경성에서 불길한 오라를 감지한 마법부는 코리안 마법사를 경성에 파견했다. 이 뛰어난 마법사는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으나 머글 한 명의 기억을 지우지 않고 귀환했다. 마법부 장관은 조선어를 할 줄 아는 마법사를 경성으로 보내 이 머글을 조사하고 후속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예언자 일보, 1945.8.15.
비가 추적추적 을씨년스럽게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땅이 젖어서 파기 쉬울 줄 알았는데, 반도의 토양에는 돌이 많아서 삽질을 할 때마다 삽날에 단단한 것이 부딪쳤습니다. 민둥산이어서 나무뿌리가 걸리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고 할까요, 비가 조금만 더 많이 오면 산사태가 날 것 같아서 불안했다고 할까요. 달도 뜨지 않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순전히 감으로 땅을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다른 곳을 파면 되지 않냐고 한다면, 경성에선 집값이 올라 원래 사람이 살지 않던 산이며 묘지에까지 궁민(窮民)들이 토막집을 짓고 사는데, 산세가 험해서 토막민이 거주하지 않을 것 같은 야산이 거기였다고 하겠습니다.
요령 없이 땅을 파고 있자하니 겨우 웅덩이만 패였는데도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손은 물집이 잡히다가 피부가 벗겨져서 쓰라리고 어깨며 허리며 욱신거리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작 그것 가지고 아프다고 앓는 소리를 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천장에 매달려 사정없이 팔다리를 비틀리며 끔찍한 비명을 질렀던 그 조선인을 생각하면 나의 고통은 모두 엄살이고 역겨운 자기연민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우의를 여며 입고 삽자루를 고쳐 잡던 그 때였습니다.
“Expecto Patronum!…역시 조선 땅에선 조선 발음인가? 익스펙토 패트로눔! 이것도 아닌가? 이쿠소뻬쿠토 빼토로누무…?”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누군가가 나타나 나를 향해 알 수 없는 말을 외치고 있었습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자 다급하게 말하더이다.
“Will you kiss me?”
대답 없이 한 걸음 더 갔더니 갑자기 눈 앞이 번쩍했습니다.
“루모스!”
상대는 나를 볼 수 있었지만 나는 눈이 부셔서 상대를 볼 수 없었습니다.
“뭐야, 그냥 머글이잖아.”
“모구리?”
“마법사가 아닌 평범한 보통 사람을 ‘머글’이라고 하지요. 근데 오밤중에 산에서 뭐 하는 거요? 혹시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겁니까?”
‘나쁜 짓’이란 말을 들으니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고 뭘 하고 있고 무얼 해야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때마침 천둥번개가 치더군요. 여전히 손에 빛나는 것을 들고 있는 상대가 화들짝 놀라자 빛이 움직였습니다. 우의도 우산도 없이 한 손에는 빛나는 막대를, 한 손에는 빗자루를 들고 있었습니다. 우의를 벗어서 건네려고 하니 의도를 오해했는지 우의 속으로 쏙 들어왔습니다. 둘이 머리 위로 우의를 걸치고 있으려니 꼭 붙어있을 수 밖에 없었지요. 살아있는 사람의 체온은 따듯했습니다.
“천둥번개가 무서워서…공습이 생각나서 그런가…잠시 신세 좀 집시다?”
오해가 아니었습니다. 작정을 하고 곁에 붙은 것이었습니다.
“근데 순사가 한밤중에 삽질은 왜 하는 거요?”
우의 속에 입은 순사 제복을 본 모양이었습니다. 순사 제복을 보고도 천연덕스레 말을 붙이는 조선인은 두 번째였습니다. 우는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치게 한다는 순사인데 말입니다. 첫번째 조선인은 내가 묻고 있던 학생이었습니다.
“시신 매장 중입니다.”
“설마…암매장…? 대체 왜…?”
“가족은 안 나타나고, 경성의전에 해부용으로 넘길 수는 없으니까…내 잘못이니까…내가 들여보내지 않았더라면…”
내가 손을 덜덜 떨었나 봅니다. 조선인이 내 손을 가만히 잡았습니다.
“내가…낮에 조선인 학생을 서에 들여보내줬습니다. 부친이 체포되었다는데 퍽 딱해 보여서…아버지가 여기는 안 계신 것 같다면서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그 학생이 기대있던 벽에서 낙서가 발견되었지요…징병을 거부하고 조선 독립에 힘쓰자고…얼마 못 도망가서 체포당했지요…훈방이나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니까 공연한 만용을 부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고문을 했지요. 불온한 사상을 주입한 자가 누구냐고…아직 어린애였어요. 울고, 두려워하고…배후가 있어야 누구라고 말을 하지요. 그런데도 말 할 때까지 고문을 멈추지 않았고…그러다가 죽었지요. 사람을 고깃덩이로 만들어놓고 옆에서 설렁탕을 퍼먹고 있는 것들이 내 동료들이고 내 업무란 말입니다. 두려운 겁니다. 자신 없는 겁니다. 지금 낙서하는 애가 자라면 폭탄을 터뜨릴 거라고? 매일 궁성요배를 하고 황국식민 서사를 외는데도, 왜 아직도 조선인들이 충량한 황국신민이 되지 않고 불령한 짓거리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겁니다.”
“선의를 낙서로 갚았네…그쪽도 곤혹스러웠겠소.”
“내통한 거 아니냐고 심문 당하긴 했지만…제복을 입으면 나는 개인이 아니라 순사일 뿐이니까 그 학생이 날 속인 걸 탓할 수는 없지요. 내가 그 학생을 들여보내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겁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천둥번개는 그쳤습니다. 조선인은 우의에서 빠져 나와서 삽을 잡았습니다.
“방공호 안 파봤지요?”
삽에 체중을 실어가며 박력 있게 쑥쑥 땅을 파더이다. 금방 구덩이가 생겨났습니다.
“아씨오 태극기!”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인이 시신에 태극기를 덮었습니다. 나와 조선인이 각각 시신의 머리와 다리를 잡고 구덩이 안에 안치했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묵념하며 태극기를 못 본 척 했습니다.
“녹스!”
빛이 사라지고 조선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조선인에게 낮에 서에서 있었던 일 중에 말하지 않은 게 있었습니다.
퇴근 후에는 전차를 타고 혼마치로 가곤 했습니다. 전차야말로 ‘모던’의 상징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남녀노소 빈부귀천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하며,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의 온갖 유행을 다 볼 수 있는 ‘움직이는 쇼윈도’이고, 경성의 곳곳을 잇는 도시의 핏줄이며, 인력거나 자전차에 비할 수 없는 문명발전의 이기, 전기로 움직이는 쇳덩이가 전차란 말입니다. ‘대일본제국’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아직 가마나 마차를 타고 다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그 날, 외근나갔다가 돌아오는 전차에서 그걸 보고 만 것입니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습니다.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사람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간다는 게… 다시 눈을 비비고 봐도 미쓰꼬시나 화신 백화점보다도 높이 날아가고 있기에 일단 전차에서 내렸습니다. 택시를 잡아탈까 하다가 창 밖으로 고갤 빼서 보며 추격하긴 어려울 것 같아 그냥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내지인들의 남쪽과 조선인들의 북쪽을 경계 짓는 청계천을 따라 전력질주했습니다. 아스팔트로 포장한 남쪽의 거리와 진창길인 북쪽의 거리. 천만 촉 전등이 환한 남촌과 불빛 없이 어두운 북촌. 백화점의 혼마치와 모조품 노점의 종로. 그 사이의 경계선인 청계천. 빈민들이 오물을 내다버리고 그 물에 채소를 씻어먹고 빨래하고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썩어 들어가는 개천. 복개해서 사라져버릴 악취 나는 시냇물. 남과 북 어디로도 가지 아니하고 계속 달리기만 하다 보니 허리에 찬 군도(軍刀)가 거추장스러웠습니다. 군도를 끌러서 청계천에 던져버리면 가벼운 몸으로 더 빨리 달릴 수 있겠다 싶던 참에 빗자루에 탄 사람이 수표교에 착륙했습니다. 역시 남으로 갈 지 북으로 갈 지 결정치 못 하고 두리번거리고 있더군요. 뒤따라가 손목을 덥석 잡았습니다. 그랬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내 팔을 확 꺾어버렸지요.
“이거 놓고, 종로서로 가야겠습니다.”
모던걸이 핸드백과 양산을 들고 다니듯이 나무막대기와 빗자루를 들고, 어지간한 단발랑보다 짧게 자른 헤어에 베레모를 쓰고 이상한 바지를 입고 군화 같은 신을 신은 조선 여자는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보폭이 넓은 걸음으로 성큼성큼 흔쾌히 나를 따라 왔습니다.
취조실에는 나와 그 조선인 여자 뿐이었습니다. 나는 언제라도 뛰쳐나갈 수 있도록 의자 끝에만 엉덩이를 붙인 채로 앉았고 조선 여자는 두리번거리면서도 여전히 막대기와 빗자루를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할 거니까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시오. 그래야 빨리 풀려날 테니까.”
“고문 같은 건 안 합니까?”
“나는 피 보면 구역질 나서 안 하는데, 다른 순사한테 당하고 싶으면 만세라도 부르시든가. 먼저, 이름은.”
“전해리엇. 보통은 ‘전해리’라고 합니다. 영국의 ‘해리엇 스튜어트 밀’에서 따온 이름이외다. 조선 이름 아니고 영국 이름이니까 가타가나로 적으시오.”
-창씨개명 피하는 방법도 가지가지.
“나이는.”
“20세.”
-조선 나이? 내지 나이?
“직업은.”
“무직.”
-룸펜.
“학교는.”
“영국에서 기숙학교를 다녔소.”
-신여성? 미영귀축(美英鬼畜)?
“위아래 붙은 그 희한한 옷은 뭔가. 배에 폭탄이라도 숨기려는 건가.”
“영국에서 유행하는 사이렌 수트 라는 건데.”
-모던 걸.
“소지품이 특이한데. 저 빗자루는 도깨비로 변신하는 건가.”
“도깨비라니! 싸리나무로 만든 임보소 1919 리미티드 에디숀이오.”
“골동품 같은 나무 젓가락은 왜 한 짝만 가지고 다니나.”
“소나무에 삼색 고양이 수염. 31센티. 단단하고 휘지 않음. 호랑이 털을 넣으려다가 조선호랑이 씨가 마르는 바람에 고양이로 대체한 거요. 삼색 수컷 고양이는 영험하다니까.”
-광인.
“주소는.”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여기저기 알아보는 중이오. 혹시 내가 필요하면…하늘을 보면 될 거요.”
“일단 오늘은 돌아가시오. 더 조사할 거 있으면 재소환 할 테니까.”
“이게 정말 끝이오? 대일본제국 순사가 이렇게 태업해도 되나?”
“대일본제국?…씨발.”
전해리엇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요즘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순사양반, 뭐 아는 거 없소? 검은 개를 봤다거나 갑작스레 추위를 탄다거나 처녀도 입덧할 것 같은 악취를 맡았다거나…”
취조실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차가운 악취가 훅 끼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