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율 도깨비 감상
‘인과율 도깨비’라는 작품은 작가의 마녀 연작 중 가장 최근 작품이다. 연작을 이해하기 위해 읽은 앞선 두 작품들이 (죽은 혼, 허무의 악마) 엽편에 가까운 분량인 것과는 달리 분량도 훌쩍 많아지고 구성도 조금 더 복잡해 졌지만, 큰 틀에서 볼 때 마녀 연작의 세 작품 모두 구조적으로 대동소이하다.
그 구조는 대략 이렇다. 1인칭 시점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는 신참 마녀이며, ‘나’를 골탕먹이기 좋아하는 스승에 대한 험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철학적 개념이 얽힌 사건과 마주치며 (허무/인과) 결과적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지며 끝난다. 뜬금없이 이제 죽은 혼은 찾기 힘들다며 푸념하다 끝나는 엽편 ‘죽은 혼’에 어떤 철학적 개념이 들어가있는지는 모르지만, 여하간 다른 둘만 보더라도 이러한 틀은 어느정도 눈에 들어온다.
연작의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그 작품에서도 어떤 사건, 혹은 개념과 화자가 마주치냐가 다를 뿐 그 구조는 비슷할 것이다. ‘인과율 도깨비’의 이야기에 빗대보자면 그러한 절대적 인과가 성립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경험을 통해 그러한 경향을 유추하는 것은 가능하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연작이나 혹은 옴니버스 장편에서는 패턴화된 이야기 구성이 흔하며 반복적인 이야기 속에서 조금씩 변주를 주어 익숙한 것의 편안함과 새로운 것의 자극으로 안정적인 이야기 구성을 할 수 있다.
단편 소설치고는 매우 단촐하고 작가의 취향이 반영된 철학 개념 (혹은 문학 작품)의 단순한 의인화, 오마주 정도에 그친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인과율 도깨비’가 플롯 구성등에 있어 긍정적인 변화가 보이는 만큼 앞으로의 연작도 기대할 만 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세 작품에서 너무 뚜렷하게 보이는 몇 가지 경향들은 그러한 긍정적인 변화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의구심도 남긴다.
우선 비문과 어색한 대사가 마음에 걸린다. 담당 편집자도, 혹은 심사위원도 아닌 주제에 퇴고를 하라마라 언급하는 것도 민망한 일이지만, 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도 없다. 시간과 마감에 쫓기는 정기연재작도 아니고 비정기로 올라오는 독립된 연작 단편치고는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비문이 많다. 비문이 없어도 인물들의 대사가 어색한데, 그냥 두기에는 템포가 너무 빨라 쉼표를 남발해서 과속방지턱만 잔뜩 만들어 둔 인물들의 대사들에 비문까지 섞이면서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기 어려웠다.
다른 작품에서 보이는 작가의 서술 방식을 보면 글솜씨가 모자라서 그런 건 분명히 아니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연극 대본, 그것도 셰익스피리언 스타일의 과장에 가까운 대사들이 소설이라는 포맷 속에서 괴리감을 나타내는 느낌이다. 허무의 악마에서 맥베스 리퍼런스를 들고 온 것을 보면 이러한 스타일은 실수나 무의식적인 요소라기 보다는 다분히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시도는 좋으나 그런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서 좀 더 여러가지 궁리가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셰익스피리언 스타일의 대사가 작가의 취향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아니다. 철학적 개념을 가지고 노는 부분이야말로 백미인데, 인과율 도깨비에 대한 설명이나 그들을 잡기 위한 행동, 그리고 실수로 그들이 풀려났을 때의 대처 등에서 사고실험에 가까운 가벼운 철학적 유희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작가가 자신의 취향을 따라 글을 쓰는게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작가 혼자 재미있는 글이 아니라 작가와 대중이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는 글을 목표로 한다면, 몇 가지 장치를 더 붙여 다른 사람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못내 아쉽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데이빗 흄이라는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나 미숙한 화자에게 풀어서 설명하는 인과율 도깨비에 대한 해설 등은 한 편의 꽁트를 완성하는데 모자란 것은 아니나, 필수 요소 위에 더 재밌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남아있어 보인다.
흄을 알 만한 사람은 ‘아 데이빗 흄에 대해 이야기 하는군’ 하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근거를 몇 몇 남기면서도, 데이빗 흄을 직접 언급하는 대신 ‘흄의 인과율 도깨비’ 라고 한 번 부르고 슬쩍 넘어가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데로 ‘이거 누구의 무슨 이론을 말하는 거야?’ 하고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는 어땠을까?
도깨비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나 도깨비를 잡는 법 등도 ‘화자’를 궁금하게 만들고 애를 태우지만 결국엔 스승이 설명해 주는데, 이것 역시 이러한 설명을 없애고 끝까지 궁금하고 알쏭달쏭한 상태로 남겨 두는 쪽이 조금 더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주의깊게 읽은 독자라면, 흄이 말한 대로 무수한 사건들 속에서 경향성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본능적으로 인과를 유추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좀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꾸미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직접적인 설명이 없더라도 독자가 ‘아 이렇게 된 거군’하고 스스로의 해석에 만족하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기왕에 아쉬운 점을 덧붙이자면 세계관과 배경에도 독자를 위한 배려를 조금 더 넣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녀, 마녀 하고 떠들지만 세 편의 연작에서 스승과 제자의 사이에 일반적인 마녀를 떠올리게 할 만한 어떤 상징적인 이미지가 부족하다. 굳이 언급하자면 맥베스 리퍼런스 정도? 연작에 나오는 ‘마녀’라는 단어를 ‘초능력자’로 바꾼다거나 ‘고스트 버스터즈’로 바꾼다고 해서 특별히 뭔가 더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다.
배경이 현대 한국이기도 하거니와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행동도 딱히 마녀를 떠올릴 만한 내용이 없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마녀 – 고깔모자와 이상한 재료가 가득찬 가마솥, 빗자루 타고 비행, 달밤의 축제 – 이미지를 답습할 필요는 없으나 기왕에 현대를 배경으로 한 마녀라면 그걸 좀 더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었을 것이다.
편하게 가자면 마녀의 상징성이 있는 물건을 현대화 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일반적인 마녀 이미지와 현대 배경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아 줄 수도 있다. 빗자루를 타고 나는 대신 진공청소기를 타고 날던 꼬마마녀 노노 같은 경우가 그렇다. 혹은 마녀로써는 미숙한 화자가 일반적인 마녀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스승의 모습에서 괴리감을 느끼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연작의 매 첫머리마다 스승은 마녀 전통을 지키는 것을 싫어하면서 도제 방식만은 답습하고 있다며 불평하는 정도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여하간 아쉬운 점을 잔뜩 늘어놓았으나, 이것도 작품 자체에 매력이 있기에 아쉬운 점이 남는 것이지 아예 매력이 없다면 아쉬울 것도 없었으리라.
앞으로의 연작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특히 남자였던 화자가 어떻게 마녀가 되었는지, 죽은 혼을 파는 상인 말고도 마녀들과 그들의 세계에 어떤 매력적인 인물들이 있을지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