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창이 우리를 배신할지라도. 비평

대상작품: 뇌 용량 팝니다 (작가: 최양,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16시간 전, 조회 25

웹소설을 좋아합니다.

웹소설에 반복되는 모티프를 꼽자면 회빙환, 그리고 상태창이 있겠죠.

한국인에겐 만능행정주의가 있습니다. 행정만능주의와는 다릅니다. 만능행정주의입니다.

이런 문장을 상상해 봅시다.

‘그해 태어난 모든 아이는 고유한 번호를 발급받고 국가전산망에 등록되었다.’

1984에서나 그릴법한 고도의 감시체계가 돌아가는 디스토피아 창작물의 배경묘사 같나요 아니면 그냥 우리 일상 같나요?

아무래도 일상이겠죠. 한국인의 만능행정주의의 근간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걸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해 태어난 모든 아이가 고유한 번호를 발급받고 국가전산망에 등록되는 한국에서 상태창을 통한 ‘시스템 등록과 관리’는 다분히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감각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상태창이 등장한다는 것은 시스템을 암시한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있다면 정부가 있는 것이고, 출력되는 모니터가 있다면 컴퓨터가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모든 한국인이 정부를 신뢰하지는 않듯이, 모든 독자가 시스템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지는 않습니다. 상태창이 등장하는 웹소설에서는 시스템의 주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거나, 가끔은 시스템을 해킹해 주인공 전용의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이 문제를 간단하게 회피하곤 합니다.

웹소설에는 수많은 하위장르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 근간에는 독자의 욕망을 긍정하고 충족시키기 위한 장르기 때문에 시스템에게 무력하게 당하는 주인공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 당연한 조치지요. 그렇다면 그런 제약이 없는, 웹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의 상태창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요?

‘뇌 용량 팝니다’ 는 직접적으로 상태창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이 적응하지 못하는 시스템에 대해서 조금은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기는거 같아요.

앵그리 버드 라는 게임을 아시나요? 그렇다면 슬슬 건강검진에 수면 내시경 항목을 추가하셔야 합니다. 모르실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스마트폰의 초창기 시절 유행한 게임인데, 새총으로 궤도를 지정해 화난 새를 쏘아서 돼지들을 터트리는 게임이죠. 이 게임이 유행하던 당시에 누군가가 꼬집었던 말이 생각납니다.

나사에서 68kb 메모리로 보이저 호를 쏘고 있을때 너희들은 수백배 메모리나 되는 휴대폰으로 앵그리 버드나 날리고 있다.

컴퓨터의 스펙은 점점 증가하고, 정보 검색 하는 방법조차도 배워야 했으며, 프로그래머가 고도의 기술을 가진, 마법사와 비견되는 시절을 지나 llm이 나오고 우리가 개떡같이 프롬프트를 넣어도 어느정도는 구현해 주는 수준까지 왔어요. 우리는 기술이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더 나은 기술은 더 나은 삶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매년 갱신되는 최악의 폭염을 견디며 llm과 ‘대화’하며 세상의 비밀을 깨우쳤다고 믿는 광인들을 보고 있자면, 무엇보다도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미래의 발달된 기술에 넘기는 게으른 동료 시민들을 보면서 과학 기술이 어쩌면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떠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웹소설에서 상태창은 주인공에게 더 많은 수익, 더 많은 인기, 더 큰 명예를 보장해 줍니다. 상태창, 그리고 퀘스트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지요. 그러나 웹소설이 아닌 곳에서 상태창, 시스템, 기술 등이 실제로 그렇게 편의적으로 작동할지는 의문입니다. 컴퓨터를 뇌에 박고 상태창을 불러올 수 있을때, 그 상태창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눈에 보이는것만 빠삭하게 알려준다면, 눈 앞에 사람이 가진 검버섯 갯수만 계속해서 불러주느라 감정을 느낄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컴퓨터가 우리의 정수리를 붙잡고 거인의 어깨 위로 끌어올려 주었을때, 그때 우리가 볼 수 있는건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찬란한 미래일까요? 아니면 강제로 끌어올리느라 빠져버린 목일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컴퓨터가 우리의 정수리를 잡아챘을때 내가 원하는게 아니라고 말할 주체성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기술과 내가 섞일때, 그럼에도 나를 유지하는 방편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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