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망각의 계곡일까?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록스타’였다.
나이가 불혹을 넘긴 지금
어린 시절의 그때를 떠올리면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지금은 뭘 하고 있냐면…
이런 글을 쓰고 있다.
’10년 후면 나란 놈은 말이지…
대한민국 록의 미래가 돼 있겠지?’
그 시절의 나는 그랬다.
무척이나 성공을 갈망했고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고 싶었으며
최선, 그 이상의 자신을 망치는 연습만큼
송곳 같은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10년이 넘은 지금은 어떤가?
록의 미래는 퍽이나…
그냥 발 냄새 나는 아저씨다.
게다가… 배도 많이 나왔다!
몸은 불었으나 내려놓은 것이 많다.
이것이 나이를 먹는다는 걸까?
‘자의식 가득한 현학 같은
어려운 말을 쓰지 않게 되었다.’
‘남이 차려주는 밥의 감사함을 몸소
느끼며 반찬투정을 안 하게 되었다.’
‘그리고, 솔직해진 만큼 흙 속에 묻혀있던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의 ‘다이몬’은 항상 심심해지면
귀에 대고 짜증이 날 만큼 속삭였다.
“야, 꼴값 떨면서 멋있는 척하지 말고 말야
먹고 싶으면 솔직하게 먹어 인마!”
“올인은 아무나 하냐? 밥부터 먹고 생각해!
밥 다 먹었으면 다음부터 너한테 이 밥을
먹여줄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 보자고!”
“유명세를 위해서 자신을 바치지 말아라!
대신 너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위해서는
뭐… 생각해 볼 만하지 않아?”
나는 다이몬에게 마지막 질문에 관해서
따지듯이 되물었다.
“야! 네가 나의 욕망에 대해서 뭘 안다고!”
다이몬은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이런, 새대가리를 봤나? 너는 그동안의
고달픔이나 괴로움이 그저 겉멋 들어서
누군가의 박수나 환호를 듣고 싶어서였어?”
“어? 뭐… 뭐라고? 허 참…”
“이 자식아~ 부모님 말 안 듣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 때 말이야~
처음, 네 마음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
살면서, 치기 어린 마음으로 시작된
일탈 같은 자유는 매 순간 나에게
빚 독촉처럼 대가를 치르게 했다.
무엇이든 돼야 한다는 조바심
무엇도 이루지 못한 자괴감
아직도 내세울 게 없는 창피함.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동안의
괴로움의 변제가 얼마 안 남았는지
뒷산에서 밤을 줍듯이 여유로워졌다.
다이몬의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니까… 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안 하면, 죽을 거 같으니까…’
그저, 그게 진실이었다.
나는 망각의 계곡을 읽고는
지금의 고달픔을 담배 연기 한 줄기로
구수하게 태우며 생각했다.
“왜 제목이 ‘망각의 계곡’이지?”
아마도… 내 생각을 이야기하자면
그의 피로가 나에게도 보이는 듯하다.
작품 속에서의 묘사 하나하나가
왠지 모르게 이렇게 생각되었다.
‘나는 창작을 사랑한다.’
‘나는 나의 이야기들이 너무도 소중하다.’
‘나는 그것들을 위해 매사 최선을 다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닿지도 못한 채로
그 소중함이 묻히는 것이 가슴 아프다.’
이 이야기를 쓴 작가는 왠지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홀로
테니스 공을 필사적으로 쳐대는
‘동지 혹은 전우’같이 느껴지기에
몇 장의 감상을 적어보았다.
“그대의 용감하고 절실한 이야기는
무사히 나에게 와닿았고 이렇게
나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였소.”
잘 보았다는 인사와 함께
이 리뷰를 보는 이들에게 전한다.
이것은 누군가의 애정과 사랑의 이야기
용감하고 진지한 창작자의 이야기이다.
창작의 고독함을 느낄 때면
망각의 계곡을 읽어보기 바란다.
망각의 새벽… 버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