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우주적 확장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배니싱 트윈 (Vanishing Twin) (작가: 김민주, 작품정보)
리뷰어: 녹음익, 7월 23일, 조회 115

바다를 항해하던 컨테이너선이 사고를 당해 인양된다. 배의 절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절단면은 자로 잰 듯이 깔끔하다. 사라진 부분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일상적이고 친근한 드라마로 시작된 김민주 작가의 배니싱 트윈(Vanishing Twin)은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본격적인 이야기의 서두를 연다.

화자인 강현서 사원은 사고 연락을 듣고 항만으로 간다. 거기서 선체 전방이 절단된 선박을 눈앞에서 목격한다. 이 대목이 전달하는 시각적 인상은 강렬하다. 영일만항이 배경이니 컨테이너 2000개를 적재하는 피더선을 가정할 수 있다. 길이는 축구장 가로길이보다 길고, 폭은 대왕고래 한 마리의 길이에 맞먹는다. 적재된 컨테이너까지 포함한 중심부 높이는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아파트 5층 정도 된다. 화자는 그런 거대하고 위압적인 금속 덩어리를 마주한다. 그 육중한 구조물에 가해진 손상은 지나칠 정도로 깔끔하다. 그러한 비현실적인 광경 앞에서 화자는 공포를 진술한다. 이를 통해 이야기는 불가해한 현상 뒤편에 도사린 원흉의 강대함을 암시하고 그 앞에 선 인간의 무력감을 한 장의 이미지로 각인시킨다.

그러나 배의 잔해를 목격한 화자의 반응은 기묘하게 보인다. 해당 사건을 내 삶에서 한 번은 꼭 일어나야 하는 필연적인 일이라 의미심장하게 정의한다. 불가사의한 현상과 화자가 관계가 있다는 명시적 단서는 주어지지 않았다. 대신 이상하게도’, ‘마주한 듯이라는 유보적 표현에서 그 관계성이 잠정적 예측이라 추론할 수 있다. 때문에 이야기는 이 시점부터 심리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또 하나의 미스터리와 뒤얽힌다. 이에 이야기의 중반부에서 회상 하나가 제시된다. 이것이 화자의 심리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던져준다. 바로 주인공이 태내에서 배니싱 트윈이라는 현상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진술 내용에 따르면 화자에게 배니싱 트윈 현상은 단순한 의학적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화자에게 그 사건은 일종의 발생학적 재난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회상에 묘사된 화자의 심리를 하나씩 따라가보자. 어린 시절의 화자는 모친으로부터 소실된 쌍둥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소실두려운사건이라는 인식(‘엄마는 나까지 잃고 말까 봐 두려웠다고 했다’)을 전달받고 자신의 태명이 가진 의미를 분석하며 소실에 부정적정서를 결부시켰다(‘왜 나는 모든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해가 될 수는 없었는지를.’). 뒤이어 자신이 자칫 소실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위기를 상상 속에서 재경험하고(‘내가 비실거리는 동안 햇님은 생명력을 뿜어냈다’), 상대방 대신 자신이 생존했다고 받아들이며 죄책감을 느끼기까지 한다(‘사랑받아 마땅해서라기보다는 남은 것이 나뿐이라 어쩔 수 없이 거두어진 것만 같았다’). 화자에게 배니싱 트윈 형상은 자신이 소멸할 뻔한 두렵고 부정적인 사건이었다. 둘 중 하나는 흡수되고 하나만이 생존할 수 있었다. 화자는 다른 한쪽을 희생시키고 자신이 탄생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화자에게 개체의 절반이 사라지는 현상이 목격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 완전히 다른 의미를 보았을 것이다. 화자가 재난 생존자의 자기인식을 가졌다고 해보자(‘햇님이 사라졌을 때, 엄마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구체적으로는, ‘생존자 죄책감과 비슷한 심리이다. 그런 화자에게 가장 두려운 생각은 자신이 겪은 위기와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건강히 잘 자라던 애가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이 드러나는 상황일 터이다. 자신이 상대방 대신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영구히 상실되기 때문이다(‘나는 머리를 늘 짧게 두지만 햇님은 허리까지 길러 냈을 수도 있다. 나는 긴 치마를 자주 입지만 햇님은 짧은 반바지를 즐겨 입었을 수도 있다.’). 죄책감과 무가치감에서 벗어날 길이 사라져버린다. 화자는 재난의 고통을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새로운 의미로 승화할 수 없었다(‘특별한 이유 없이 어딘가 마음이 쓰이는 찜찜한 것. 햇님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이는 자신의 재난을 우주적 질서에 결부시키면 고통과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졌다(‘나는 내 온몸을 순환하는 뜨거운 피의 흐름마저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구하러 자동반사적으로 도달한 학회장에서 화자는 결국 어떠한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차갑고 공허한 물리적 인과의 더미만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즉시, 낙담한 화자가 느끼는 자기 존재의 정당성은 극단적으로 약화된다(‘내게 햇님이라는 존재가 거부할 수 없는 블랙홀의 중력과 같다면, 내가 햇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꼭두각시인 게 당연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논리 안엔 질량의 절반이 사라지는 외부 재난의 원인을 설명하는 언어인 블랙홀이 포함된다.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기 위해 맥락없이 개념을 차용한 것은 자학이다. 화자에게 현상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의미 부여의 기회였다. 우주적인 규모의 현상이었으니 혹시 하는 마음도 강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좌절도 컸을 것이다. 재난의 무의미성에 대항할 여력을 잃자, ‘단단한 개체가 되기를 포기한 화자의 마음 속을 허탈과 냉소만이 가득 채운다(‘이렇게나 연약할 거라면 나는 무엇을 위해 내 삶을 들여 단단한 개체가 되고 싶었던 걸까.’) (‘내 발이 딛고 선 이 땅이 …. 그러니까, 정보 값의 투사 결과에 불과한 것이었다.’)

물리적 재난은 인간의 마음과는 무관했다. 화자가 심리적으로 극과 극을 오가는 동안 물리적 재난은 무심하게 세계를 집어 삼킨다. 선박이 동강나는 재난에서 해양 생물을 거쳐 결국 인간의 정신과 신체까지 소실된다. 이 시점에서 역설 하나가 작동한다. 우주적 파국 속에서 화자가 의도치 않게,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될 단서를 찾아낸 것이다. 자신이 살아남고 상대방은 소실되었다는 공간적 비대칭은 사라졌다. 경계면 위에 한데 편평해져버렸다. 화자는 자신이 햇님과 처음으로 동등한 자리에 서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원래의 몸이 소실된 그 자리에서야, 마침내 화자는 죄책감을 벗어 던지고 온전한 자신으로서 난생 처음 존재할 수 있게 된다는 역설을 경험한다(‘진정으로 온전해지는 순간이다.’).

고통을 경험한 인간이 얼마나 의미를 갈구하는지를, 그리고 자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상실한 경험이 인간의 정신에 어떠한 상흔을 남기는지를, 스케일 큰 물리적 파국의 스펙터클과 재난처럼 해석된 배니싱 트윈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감싸 전달하는 김민주 작가의 <배니싱 트윈>. 이 작품은 이유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의미를 구축해내는 대신 문학적 방법을 통해 우리를 이유가 필요 없는 가상적인 차원으로 소환함으로써, 의미에 대한 집착 자체를 벗어 던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비록 작중의 화자는 개체의 소실을 겪은 후에야 평온을 얻어낼 수 있었지만, 이 이야기는 홀로그래픽 경계면 위에 펼쳐진 화자의 통찰을 빌어, 삼차원 벌크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스스로를 상실하지 않고도 의미의 진공상태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깊은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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