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서기 , 그 아프고도 치열한 역설 감상

대상작품: 물구나무서기 좋은 날들 (작가: 오미호, 작품정보)
리뷰어: 고힝, 1일 전, 조회 28

무당집의 서늘한 공기와 방울 소리, 그리고 새벽녘 파출소에서 보름달처럼 웃고 있던

서른한 살 발달장애 아들 현수의 모습이 글을 읽고 나서도 마음에 길게 잔상을 남기네요.

 

이 글이 저에게 남긴 지극히 사적인 감정과 먹먹함을 담아 조심스럽게 감상을 적어봅니다.

 

 

거꾸로 뒤집힌 세상에서 중심을 잡는다는 것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의물구나무서기는 어쩌면 가볍고 장난스러운 몸짓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문장을 읽고 마지막 문장에 닿았을 때,

이 제목이 얼마나 아프고도 치열한 역설을 담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남들에게는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이, 화자에게는 온 힘을 다해 버텨야 하는

물구나무서기같은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피가 머리로 거꾸로 솟구치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절망감과 실패감 속에서도,

기어코 바닥을 딛고 서 있어야만 하는 삶의 무게 말입니다.

 

차마, 다 헤아릴 수 없는 ‘자립’의 무게

“지난 30여 년, 길거리에서 날밤을 새우고 삭발을 해가며 얻은 전쟁 전리품…”

화자가 툭 던지듯 묘사한 이 한 줄의 문장에서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세월이 단단한 흉터처럼 만져졌습니다.

국가책임제를 외치며 삭발을 하던 격렬한 광장의 시간과, 새벽 5시 안개 속에서 아들을 찾아 헤매는 고독한 시간.

그 오랜 싸움 끝에 얻어낸 임대주택이라는자립의 기회가, 막상 현실로 다가왔을 때 몰려오는

띵한 두려움과 미더움 사이의 갈등이 너무나 솔직해서 가슴이 아릿했습니다.

세상을 믿어보기로 결정했지만, 일주일에 몇번씩이나

새벽 잔디밭에서 잠든 아들을 데려와야 하는 현실은 여전히 가혹합니다.

그럼에도 파출소에서 웃고 있는 아들을 보며 치밀어 오르는 여러 감정을 삼키는 부모의 뒷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무당의 축언, 혹은 삶의 서글픈 농담

“자식 덕분에 책 내고 비행기 타고 다니며 연단에 설 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기꾼 같은 무당의 말은,

어쩌면 이 비극적인 현실을 견디게 하기 위해 신이 던져둔 서글픈 농담 같기도 합니다.

화자는 코웃음을 치지만, 독자인 저는 마음속으로 그 황당한 예언이

정말 기적처럼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더군요.

그만큼 이 가족의 삶이 조금은 더 다정해지기를 바라는 사적인 연민이 싹텄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새벽녘 파출소에 있을 수 있다면, 문을 열고 들어서는 화자의 시린 어깨를 가만히 짚어주고 싶습니다.

세상이 올바르게 서 있지 않다면, 차라리 내가 물구나무를 서서라도

세상을 똑바로 보겠다는 듯한 그 치열한 삶의 기록이 오래도록 마음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참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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