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괴담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처녀공양 (작가: 한님, 작품정보)
리뷰어: 열한시, 17년 8월, 조회 64

불 꺼진 방에서 액정으로 눈을 수없이 혹사시키는 인생입니다. 어차피 눈 건강은 글렀으니 이렇게 더운 밤에는 괴담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폭염에 질식하는 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경험이 있음을 상기시켜서 자기위안하려는 무의식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튼 필자의 괴담 읽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스릴감이고 둘째는 호기심입니다. 둘 중 하나라도 충족된다면 만족스럽다며 자축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며칠을 지내봤는데, 생각해보니 브릿g에도 수많은 공포소설들이 있다는 걸 깜빡 잊었더랍니다. 망각한 과거의 나를 책망하는 대신 기억해낸 자신을 치하하는 알량한 자의식 속에서 하나 골라보았습니다.

주인공은 메일함에서 반가운 발신인을 발견합니다. 음성파일 하나만 덜렁 첨부된 메일입니다.(발신인은 꽤나 무뚝뚝한 친구인가봅니다). 첨부파일은 어느 시골 할머니와의 인터뷰입니다(발신인의 정체가 더더욱 궁금해집니다). 주인공은 발신인에 대한 별다른 회상없이(필자의 애타는 마음도 몰라주고) 녹취록을 클릭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전설의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산 속에 사는 괴물이 자신의 아이를 낳아줄 처녀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 괴물은 아이 만드는 법도 알지 못합니다. 때문에 한 현명한 이는 묘책을 냅니다. 여인의 정인을 몰래 보내어 임신을 시킨 후, 마을에 내려와 출산을 마치면 아기인형을 괴물에게 바친다는 겁니다. 이렇게 형성된 풍습은 수백년간 이어져왔다가, 83년 전에 끊어졌습니다. 작중 시간대는 2007년이므로, 지금으로 따지면 93년 전 쯤 되겠네요. 이 할머니와의 녹취록은 풍습이 중단된 연유에 관한 목격담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괴물은 아둔합니다. 동물보다 심각합니다. 심지어 동물도 제 짝과 정 나누는 법은 압니다. 이렇게 가엾을 수준의 지성을 지닌 생명체가 마을에 해를 끼치며 처녀를 요구하는데, 어찌하여 마을 사람 중 그 누구도 이 괴물을 속여 산에서 쫓아낼 묘책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요. 그들도 크게 똑똑하지는 않았나봅니다. 어쩌면 그들도 꽤 정이 있는 분들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이 풍습의 마지막 타자인 한 처녀가 등장합니다. 수백년간 이어온 전통대로 처녀는 괴물에게 억류된 동안 약초꾼 정인의 아이를 밴다. 문제는 이 약초꾼이 처녀가 아이를 배고나서부터 발길을 끊은 것입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줄임글로 대신하겠습니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다양한 괴담들이 흘러넘치는 시기입니다. 그럼에도 공포소설을 찾는 이유는 논리적으로 더 잘 정돈된 작품을 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괴물에게 치명적인 단점을 부여한 것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으레 초자연적인 괴물은 무적으로 묘사되기 마련이죠. 때문에 작가의 접근은 꽤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 단점은 괴물의 캐릭터성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 채 후반부에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가장 중요했을 괴물에 관한 설정이 정교하지 못했던 탓에, 자연히 사건 간의 논리적인 연결도 약해졌습니다.

큰 원인은 애매한 장르적 방향성이라 생각합니다. 괴물의 아둔함이 충분히 강조되었다면 이 소설은 코미디가 되었을 것이고, 경악스러운 힘이 더 묘사되었다면 호러 및 스릴러가 되었을 것이며, 괴물의 신비로움이 보다 명확히 드러났다면 말 그대로 판타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소설은 호러와 판타지의 애매한 중간에 위치해 있는 듯합니다.

앞서 장황히 설명하긴 했지만 이런 방향성만 굳게 잡힌다면 다른 문제들은 금방 해결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인형이 썩을 때마다 아이를 잃는 슬픔에 잠겨야하는 괴물과 마을의 딸들을 보호하기 위해 괴물을 속여온 마을.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감정선을 조금만 더 살린다면 독자에게 감정적 공감상대를 누구로 해야하는지에 관한 딜레마를 좀 더 명확히 제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문장을 읽을 때 턱턱 막히는 게 느껴지지 않고, 담담하게 필요한 정보를 묘사하시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특히 괴물이 불길 가운데에서 아이를 안는 장면은 정갈한 문체 속에서 더욱 돋보이는 듯했습니다. 분명 앞으로 더 나은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 듯합니다. 가장 좋은 글쓰기연습은 역시 다작일 테니까요. 작가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11시입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무더위로 푹 젖은 채 보내셨을 분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만 글 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무뚝뚝한 발신인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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