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동을 궁금해 하는 게 왜 오류일까 감상

대상작품: 제 오류는 아주 심각한 것 같아요 (작가: 연여름, 작품정보)
리뷰어: 하예일, 1일전, 조회 9

SF라는 장르의 우연한 발견

이 소설을 처음 만난 건 ‘리시안셔스’라는 단편집에서였다.

독서를 상당히 즐기는데도 SF는 너무 어려운 장르라는 선입관이 있었다. 그래서 철옹성을 올려다보듯 SF 소설엔 발가락 끄트머리조차 들이밀 생각을 전혀 하지 않던 때였다.

작가의 단편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SF가 이렇게 감성적일 수 있구나.’, ‘심지어 내가 공감을 하고 있어.’라며 감탄했더랬다. 국내에서는 이미 여러 SF 작가들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시기였음에도. 아, 부끄러워라.

아무튼 단지 읽은 것만이 아닌 깊은 감동을 선물 받아서 몹시 즐거웠다.

이후로 아주 살짝 옅어진 두려움을 안고 SF 소설 읽기에 도전 중이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SF 장르는 어렵다.

그리고 오늘.

SF의 맛을 처음 알게 한 ‘리시안셔스’ 속 단편들 중 ‘제 오류는…’을 다시 만났다.

 

인간을 모방하고자 하는 오류를 지닌 구형 안드로이드 미레이

연구를 위해 칼리스토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을 탄 언어학자 테이는 깜박하고 온 수면 안대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승무원 미레이를 알게 된다. 미레이는 폐기를 목전에 둔 안드로이드였다. 그리고 테이는 승선 기간동안 그녀와의 짧은 교류를 이어가는데…

 

미레이가 폐기 대상인 이유는 인간의 행동을 궁금해하고 따라하려한다는 오류 때문이었다.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마시지도 못하는 커피가 담긴 잔을 손에 쥐고 이런 저런 사유(?)에 빠지는 미레이라는 로봇에게 어떤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의문이 생겼다.

왜 이런 로봇을 폐기한다는 걸까.

인간의 행동을 궁금해하고 따라하는 것이 어째서 오류인 걸까.

그러다 호기심이 더 큰 욕망으로 발전해 그것이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형태로 변질된다면 충분히 두렵고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겠구나 싶었다.

로봇은 로봇답게 맡겨둔 일만 수행하고 필요 없을 땐 전원을 끄고 제자리 있는 것. 이것이 편의를 위해 로봇을 개발한 인간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리라.

AI가 고도로 발전하고 있으니 로봇이 어느 시점에 이르러 인간을 뛰어넘고 인간의 제어마저 벗어나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다 보니 미레이의 폐기를 일견 납득하게 되었다.

인간보다 로봇이 우위에 놓일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는 의미에서. 비록 무해한 호기심이어도 거대한 둑은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지기도 하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흘러가자, 맘이 씁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로봇과 공존하는 일상을 살게 된다면 진짜 어떤 다양한 일이 벌어질까.

인간이 진정한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요즘, 인간의 특질을 추구하고 발전한 로봇은 우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무기질 존재가 될까.

아니면 인간을 위협하는 또 다른 계층이 될까.

그들을 제어가능한 기계로, 마치 그 옛날 노예 부리듯 인격 없는 편리한 어떤 것으로 취급하며 가볍게 부리고 싶어 하는 인간이 오히려 지배받고 통제되는 세상이 오게 될까.

로봇과의 공존.

그건 극강의 공포일까, 지극한 편안함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일까.

다가오지 않은 수많은 시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상상을 자아낸다.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신기한, 그런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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