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엔 언제나 한 사람이 기존에 갖고 있던 경험이나 이해와 잘 들어맞지 않는 영역이 있고, 우리는 그걸 어떻게든 끼워 맞추려는 의식적·무의식적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흔히 말하는 해석의 문제가 생겨나지요. 이건 반드시 픽션에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기호와 의미로 짜인 모든 텍스트는 일관성을 추구하는 해석자의 강력한 욕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재미있는 건 한 텍스트를 읽은 여러 사람의 해석이 아주 제각각일 때 일관성의 신화는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겁니다. 현재의 인식을 쌓기까지 걸어온 길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각자의 개별적 이해 안에서는 일관되지만 나란히 놓고 보면 아주 다른 여러 해석을 접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죠. 타인이 지나온 길을 알 도리 없는 우리는 어떤 해석의 신뢰도를 평가하기 위해 일관성이라는 공통된 믿음에 자주 의지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 ‘아 다른 관점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텍스트에 내재한 진실이 하나라고 가정한다면 이런 태도가 무리 없이 승인되는 건 조금 어색하지요. 한 텍스트에 대해 상반되는 두 종류의 해석이 똑같이 유효하다고 하면, 진실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말하는 셈이 되니까요. 그런 밋밋한 소리를 진지하게 믿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보다 어떤 해석은 다른 해석보다 진실에 더 가깝고, 그 근거는 이러저러하다고 말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작업처럼 보이죠. 일종의 메타 해석과 같은 작업의 영역이 파생되는 겁니다.
저에게 이 작품 「그건 그냥 단순한 농담이었어요」는 그런 메타 해석 층위에서 벌어지는 매우 지적인 실험처럼 보입니다. 살인사건의 윤곽을 드러내는 서술자의 진술은 실체적 진실일 수도 있고 교활한 기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둘 다일 수는 없어요. 거칠게 말해 이 이야기에서 벌어진 일은 하나입니다. 그러니 서술자의 사후적 진술이 본질적으로 어떤 성격을 갖느냐에 따라, 그리고 독자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판결하느냐에 따라 혐의는 성립하거나, 성립하지 않습니다. 만약 누군가 여기에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을 제시한다면 우리는 그중 어떤 것을 채택하고 기각할지 꽤나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어느 정도 관습적인 모범 답안이 존재합니다. 징검다리처럼 단단히 박혀있는 단서를 따라 규격화된 답을 고를지 말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입니다. 하지만 그걸 고르는 것보다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건, 서술자의 진술을 100퍼센트 참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것이 아주 찝찝한 이질감을 남기면서도 끝끝내 일관성의 신화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 욕구를 치밀하게 충족시킨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독자는 진술의 형식적 일관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근거로 무죄 추정의 원칙을 마지막 남은 자존심처럼 고수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이 장르 안에서 익히 쓰이는 몇 가지 관습적인 트릭들―이를테면 서술자의 태도나 그가 발화하는 언어와 같은―은 그에게 여전히 매우 구체적인 혐의를 둘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이처럼 무죄 추정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사이를 맴돌며 끝까지 해소되지 않는 긴장감은 이 이야기가 갖는 가장 큰 매력으로 느껴집니다.
결국 작품을 다 읽고 난 뒤 확정적인 심증을 토대로 마음을 굳혔더라도 독자는 그것에 대해 섣불리 말하고 싶지 않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전 이것이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긴 농담의 진짜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시종 여유와 위트가 넘치는 건 그만큼 농담에 자신이 있다는 뜻일 테고요.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백하자면 글을 읽으면서 곡예를 보는 기분이 든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어요.
이 농담에는 최소한 두 가지의 가능한 해석이 있고, 둘은 양립불가하며, 그중 어떤 걸 선택할지는 제 마음이죠. 그런데 뭘 고르든 완벽히 해소되지 않는 인식 차원의 아이러니가 있고, 그래서 결국 이 게임에서는 독자가 작가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 제가 가진 해석의 최종 버전이 되었습니다. 좋은 농담은 좋은 반응으로 완성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감탄하기 바빠 재치 있는 반응을 꾸며낼 여유가 없었네요. 수준 높은 농담을 본의 아니게 다큐로 받게 된 점, 양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