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게!’
이 단어를 관습적으로 사용하지만, 사실 짧고 굵게 후려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작품을 감상하고 느끼는 것에 초점이 있는 소설, 영화와 같은 장르에서는 더욱 그렇죠. ‘짧다’야 만인이 느낄 수 있는 분량의 문제겠지만, ‘굵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더 복잡한 요소가 필요한 법입니다. 무거운 주제, 강렬한 이미지, 인상에 남는 결말…….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다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굵기에서 느껴지는 감각만큼 주관적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쓸데없이 길었던 서론입니다. 다만 이 도입부야말로 방금 이 작품을 읽고 느꼈던 제 감상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설명이었습니다. <지구는 평평했다, 한 3초 정도> 그저 제목에 호기심을 느끼고 들어왔던 저는 뺨을 유쾌하게 얻어맞은 기분입니다. 이 소설은 정말 ‘짧고 굵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멋진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표면적인 이야기는 ‘교수’와 ‘학생’의 면담기록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습니다. 학생이 제출한 보고서의 주제가 ‘토착 생물을 이용하여 행성 생태계를 멸망시키기’라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들의 대화만 살펴봐도, 이미 행성 하나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시간을 되감아 복구 시켜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들이 일반적으로 적대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절대적인 존재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죠. 멸망시킬 행성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학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들은 인지 능력이 부족해 자신이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문명이라고 생각하고, 같은 행성에 사는 다른 토착 생물보다 우월하다 믿고 있지요. 진리를 안다고 생각하며, 기본적으로 협동 정신은 있어도 배척하는 세력에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해집니다.”
학생은 해당 행성의 주민들이 ‘애매한 지능’을 갖고 있다면 조롱하는 모습마저 보입니다. 그런 주민들을 멸망시킨 수단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행성 주민들의 심리입니다. 놀랍게도 그 주민들은 본인들이 사는 행성이 ‘평평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합니다. 학생의 대사는 그들의 심리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우선 그들이 좋아하는 과학을 이용하여 그럴듯한 가짜 자료를 만들어 여기저기에 뿌렸습니다. 사실을 기반으로 거짓을 섞어, 그들이 더 믿을 수 있게 했지요. 그 생물들은 믿고 싶은 정보만 믿는 경향이 있고, 의견이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 걸 좋아하며, 배척 대상을 공격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니 그 점을 이용했죠.”
교수도 그 의견에 한 말씀 보탭니다.
“그러니까, 광기 어린 믿음을 가진 이들의 행동은 강화하고 강해진 그들 세력을 보고, 진실을 아는 이들도 입을 닫고 동조하게 했다는 거군?”
다시 말해, 그들의 행성을 멸망시킨 건 ‘음모론’에 휘둘리는 어리석은 사고였다는 말이 됩니다. 학생은 본인이 가진 절대적인 힘으로, 실제로 지구를 평평하게 만들어 그 믿음을 현실로 이뤄줍니다. 다시 말해, 음모가 곧 현실이 되는 혼동을 만든 셈이죠.
솔직히 말이 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교수의 말마따나 ‘우주선도 만들고 인공위성도 만드는 생물’들이, 서로를 배척하며 싸우다가 음모론에 함몰되어 행성을 망치고 있다고요? 심지어 ‘행성이 평평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론에 존재하지도 않는 근거를 찾으며 시간을 낭비한다고요? 세상에 그런 멍청한 생물들이 어디에…….
…… 응?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작품의 표면적인 분량은 원고지 14매에 불과합니다. 워드로 옮겨도 한 장 반을 겨우 채우는 분량이죠.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을 곱씹다보면 40매는 훌쩍 뛰어넘는 감상이 튀어나올지도 모릅니다.
지구는 평평했나요? 한 3초 정도? 작중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안타깝게도 제가 사는 행성은 3년도 못 가 멸망할 거 같네요.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