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빛의 속도로 브릿지 성간을 오가던 나그네별입니다. 이러면 눈치 빠른 분은 금방 알아챌 것입니다. 음, 이 리뷰어는 기웃거리다 입이 좀 근질거려진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그간의 체류를 기껏 모아봐야 반나절이나 될까요, 그런 정도의 독자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 글도 단지 인상일 뿐 평가(라니요)는 부임을 양해해주시기를. 실은 무료의 은총이라 작가님께 미안한 마음도 한편입니다.
판타지과로 분화되긴 했지만, 원래 제 태생은 독자라는 종입니다. 갑종 유전자라 예의도 없고 무책임하지요. 작가의 땀과 고뇌를 존중하는 미덕이라든지, 좋아, 유려한 문장이니 끝까지 가줘야겠다, 그런 의리 따위는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질색하는 것은, 이야기에 접근하려면 작가가 설계한 세계를 학습해야 하거나, 가치관에 경배부터 해야 비로소 진입을 허용한다는 느낌이 들 때입니다. 일단 한발 물러나 도망칠 준비부터 하게 되지요. 이 세상이 고달파 다른 세상을 찾았는데 뭔가 더 피곤하고 시달릴 것 같다, 라고나 할까요.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아름다운 밤하늘의 헤드카피가 생각나는군요. 이야기의 세계로 건너가는… 누가 만들었는지 죽이지 않습니까? 살살 한번 되뇌어보시기를. 가슴이 왠지 두근거리지 않나요?
<피를 머금은 꽃>은 이야기입니다. 인물 몇을 던져놓고는 다짜고짜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인물들이, 어딘가 가본 듯한 산천을 떠돌면서,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 전란의 행적으로 얽히다가, 어떤 시대에선가 치러졌을 것 같은 공성전을 거쳐, 다시 어디론가 알 듯한 곳으로 향하는 것 같긴 한데… 그곳은 또 어떤 세상이고, 그 세상은 또 어디까지인지 막막합니다. 당황스럽기까지 하지요. 인간계의 역사처럼 익숙한데 세계는 보이지 않고, 보이지는 않는데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을 것 같은 세계가 이야기만큼씩은 드러나거든요. 정말로 궁금해지는데, 작가님은 대관절 그 세계의 끝까지 가보고서나 이야기를 시작했을까요?
리뷰를 쓰고싶다! 생각이 들었을 때, 인상적이었던 기억을 따라 (일단 한 작품을 선택해야 발언권을 주는 플랫폼의 지시에 따라) 이런 작가님들은 대체 어디에서 뭘 하시다 나타났을까, 신기했던 작품들을 다시 찾아 읽었습니다. 목적이 생기니 아무래도 재미는 좀 덜했습니다만, 역시나 대단하더군요. 혹시 브릿지가 금화를 늘리려고 몰래 섭외한 작가님인지(죄송) 의심까지 했던 작품부터, 무료만 찾아봤는데도(역시 죄송) 작가님의 인생 년대가 궁금해졌던, 조선 양반의 기개와 외계생명체가 충돌하여 눈부신 장면으로 폭발하는 작품까지, 그리고 정갈하게 단장된 중세 마당의 꽃그늘에서 한땀한땀 수놓는 비단옷의 처녀가 연상되었던(그런데 왜 베스트에는… 왠지 죄송) 작품까지요.
판타지는 이래야만 돼, 뭐 그런 특별한 규칙이 있을까요? 햄릿이나 춘향전은 판타지가 아니라 ‘문학’이나 고전소설로 특별하게 분류되어야 하나요? 반드시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전제해야만 판타지인가요? 고블린이나 드래곤, 님프가 등장하면 정통 판타지이고 도깨비나 무당이 등장하면 실험적이고 새로운 한국 판타지인가요?
인류 역사상 최고의 판타지는 <성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실재하는 이 세상을 통해 실재하지 않는 저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개별 인간의 어떤 지성도 도달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을 보여주며, 독자에 따라 동서의 어떤 ‘문학’도 도달하지 못하는 절대 가치를 느끼게 해줍니다. 신이 쓰지 않았다면, 그것은 인간이 만든 이야기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판타지는 더도덜도 아닌 이야기입니다. 장르문학이나 판타지소설 식의 분류는 개인적으로 못마땅합니다. 그 정도야 그렇다치더라도, 로맨스나 퓨전이라는 표현에 이르면, 도대체 이야기꾼으로서 ‘작가’라는 고귀한 직업이 이젠 사라진 것인가 슬픈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오니 포그리 작가님, 부디 <피를 머금은 꽃>의 이야기로 브릿지의 은하계에서 피안의 세계를 창조해주시기를. 무소의 뿔처럼 이야기로만 밀고나가주시기를!
그리고 좀 부지런히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