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메기들의 과메기 같은 SF 비평

대상작품: 과메기 (작가: 주희연, 작품정보)
리뷰어: 노말시티, 17년 7월, 조회 43

‘과메기’가 뭔지 아시나요? 무슨 음식의 이름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계신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포항 구룡포의 특산물로 추운 겨울에 청어(herring)나 꽁치를 짚끈에 꿰어 3~10일 동안 찬 바다바람에 말린 것’이라고 정확히 알고 계신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메기’라는 단어에서는 단지 알 수 없는 음식의 이름이라는 느낌만 전해지는 건 아닙니다. ‘에스까르고’나 ‘부용청해’ 같은 음식 이름이 주는 느낌과는 다르죠. 아무리 잘 봐줘도 고급스런 느낌은 아닙니다. 과메기가 뭔지 모른다고 교양인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무언가 하찮은 느낌이 과메기라는 단어에는 있습니다. (과메기를 사랑하시는 분께는 죄송합니다.)

이 이야기는 SF 입니다. 그것도 인류 멸망과 외계의 초지성체가 나오는 진짜 SF 입니다. 물론 주인공들의 이름이 ‘굴엉-포’와 ‘헤-링’이라는 점에서 (과메기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읽어 보세요) 진지하고 심각한 SF는 아니라는 걸 눈치챌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디테일은 의외로 SF 로서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제목이 ‘과메기’일까요? 대체 어떻게 하면 이야기가 과메기와 연결될까요? 그 의문은 이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데 충분한 동력이 됩니다.

2025년에 지구는 핵전쟁으로 멸망합니다. 그리고 지구의 과학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촉수형 외계인이 태양계에 도착하여 지구의 멸망 원인을 분석합니다. 그들의 기술은 지구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단 3%의 저장용량만으로도 담을 수 있을 정도죠. 하지만 그들은 분석 중 무언가 이상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지구의 모든 정보가 망라되어있는 데이터베이스에 단 세 개의 단어에 대한 정보가 지워져 있습니다. 당근, 소나무, 그리고 과메기.

당근과 소나무는 그래도 뿌리식물과 관상용 수목의 이름이라는 것이 밝혀지지만 과메기가 무엇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습니다. 결국 분석관 굴엉-포는 과메기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멸망 직전 지구를 탈출한 식민지선 ‘캐럿파인’을 추적합니다.

대체 과메기라는 단어는 왜 지구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지워져 있을까요? 굴엉-포는 과메기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길지 않은 분량의 단편이니 직접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허탈하고 어이없을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의도한 코믹한 분위기를 감안하신다면 꽤 짜임새 있는 전개와 결말이 이어집니다.

“좋아. 송신한다. 571번계의 종족인들에 대한 정보다. 이름은-”

굴옹-포는 4번 촉수를 가볍게 떨어 웃는다.

“과메기.”

그는 지구인의 이름을 과메기라고 전송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참 절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과메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중요치 않은 무언가를 떠올립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굴엉-포와 헤-링은 초지성체 종족이지만 종족 내에서는 ‘크레딧 벌어서 저급 단백질 배급이나 받아먹는’ 하찮은 존재들입니다. 그런 하급 직원이라도 지구인들은 그들에게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과메기를 우습고 하찮은 무언가라고 생각할 때, 외계의 어떤 지성체에게는 지구인이 그런 과메기 같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지구의 정보에서 과메기라는 단어가 삭제된 것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궁금하셨나요? 사실 그 비밀 역시 과메기 만큼이나 하찮은 것일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유쾌한 SF를 읽으며 여기까지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과메기처럼 가벼운 이야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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