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人之行, 不出於梱
여인의 행실은 문지방을 넘어가지 않는다
목차
1. 홍길동전의 Trans-gender Fiction
2. 조선후기의 여인
3. 글을 맺으면서
1. 홍길동전의 Trans-gender Fiction
리리브 작가님의 <외자혈손전>의 첫문장과 끝문장엔 유명한 고전인 『홍길동전』 (洪吉童傳)의 구절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사방에 일이 없고 도적이 없으며 시화연풍하여 나라가 태평하더라.”1 그리고, “비록 천생이나 적원을 풀어버리고, 효우를 완전히 하여 신수를 쾌달하니 만고에 희한한 일이기로 후인이 알게 한 바이어라.”2 따라서, 저는 <외자혈손전>이 홍길동전의 TS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보고, 다른 리뷰어분들의 리뷰글도 읽으면서 작가님이 홍길동전에서 영향을 받고 썼으리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홍길동전』 은 조선 중기 허균이 지었다고 전하는 고전소설로, 홍 판서의 서얼로 태어난 홍길동이 신분 차별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고, 활빈당을 조직해 가난한 백성을 돕다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율도국의 국왕이 된다는 내용입니다.3 그러나,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은 작자는 맞지만, 한글소설 홍길동전과 완전히 같은 내용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4과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은 한문으로 쓴 원작이며, 지금 전하는 홍길동전은 빠르면 18-19세기 무렵에 누군가가 허균의 원작을 윤색해 국문소설로 탈바꿈시킨 것으로 여겨진다는 주장5도 있습니다.
20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許筠, 1569-1618)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최근에는 홍길동전의 작자에 관란 이슈가 논란6 중이라고 합니다. 현재 전해지는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만, 허균이 ‘원작’ 홍길동전을 창작했으나, 그것이 오늘날 전하는 한글소설과는 거리가 있고, 허균의 원작 홍길동전은 한문소설일 가능성이 높으며, 한글소설 <홍길동전>은 개작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7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으로 지목한 최초의 기록은 이식(李植, 1584-1647)의 택당별집(澤堂別集)이라고 합니다.8
世傳作水滸傳人, 三代聾啞, 受其報應, 爲盜賊尊其書也. 許筠ˎ朴燁等, 好其書, 以其賊將別名, 各占爲號以相謔. 筠又作 洪吉同傳 , 以擬水滸, 其徒徐羊甲ˎ沈友英等, 躬蹈其行, 一村虀粉, 筠亦叛誅, 此甚於聾啞 之報也.9
세상 사람들이 전하기를 水滸傳을 지은 사람은 집안 3대가 聾啞가 되어 그 응보를 받았으니, 도적들이 그 책을 떠받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許筠과 朴燁 등이 그 책을 좋아해서 도적 장수의 별명을 각자 차지하고 서로 별명을 부르며 장난했다. 허균은 또 洪吉同傳 을 지어 수호전에 비겼는데, 그 무리 徐羊甲과 沈友英 등이 그[소설 속] 행동을 몸소 실천하다가 한 마을이 분쇄되었고, 허균 자신도 반역죄로 처형되었으니, 이는 농아가 된 응보보다 심하다.10
<홍길동전>에 대한 연구는 김태준의 『조선소설사』11로 시작되었는데, 그는 홍길동전을 임진・병자 양란 사이에 발흥된 신문예 중 하나로 소개하고, ①계급 타파 특히 적서차별의 폐지를 고조한 것, ②향토거벌과 토호와 귀족을 질시하며 지방 수령의 불의지재를 몰수하여 빈민을 구제한 것, ③율도국에 들어가서 왕이 된 것 등 세 가지로 규정했다고 합니다.12 고전소설에서는 주제의식을 완성하기 위해 충(忠), 효(孝), 정절(貞節)이라는 관념을 드러내지만, <홍길동전>은 이와 달리 ‘입신양명’이라는 관념이 뚜렷하다고 합니다.13
홍길동전의 주인공인 홍길동은 타고난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데, 집안에서 호부호형을 허락받고, 집을 떠난 뒤에는 활빈당 조직의 수장이 되며, 조선에서 병조판서의 지위를 받아 마침내는 왕이 됩니다.14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방법을 취하는데, 이는 조선시대에 서얼로 태어난 홍길동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견고한 사회적 질서에 맞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며, 이런 길동의 폭력 행위는 그가 권력에 대한 추구 의지를 성취할 수단이며, 사회적 문제의식이 홍길동의 폭력적 행위를 통해 욕망 충족으로 해소되는 면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15
홍길동전은 영어로 번역되어 해외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 겸 미국 조선 주재 외교관 겸 의사로 활동한 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은 조선을 알리기 위해, 조선에 살고 있던 동안 우리나라의 소설들을 영어로 번역했습니다.16 한국 고전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역자인 호러스 뉴턴 알렌이 부연설명을 첨가하거나 아예 원작에는 없는 서술자로 서사에 개입해 의도적으로 논평하는 부분도 있는데, 이는 서양인들에게 「홍길동전」 서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17
The Latter son was very remarkable from his birth to his death, and he it is who forms the subject of this history. (이 이야기는 첩의 아들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매우 특출했던 바로 그의 인생을 다룬다.)
The neither cold nor warm, while it lacked nothing of the bracing character of a Korean autumn. (차지도 덥지도 않으면서도 한국 가을의 특징인 상쾌함이 잘드러나는 날씨였다.)
As was the rule, this temple in the mountains was well patronized by officials, who made it a place of retirement for pleasure and debauch, and in return the lazy, licentious priests were allowed to collect tribute from the poor people about, till they had become rich and powerful. (흔히 그러하듯, 관리들이 산 속의 이 절의 뒤를 봐 주고 대신 이곳을 그들의 은밀한 쾌락과 방탕의 장소로 삼았다. 게으르고 음탕한 사제들은 그 대가로 근처의 가난한 사람들로 부터 공물을 거둘 수 있는 허가를 받아 재물을 쌓고 강력해졌다.)
One old fellow, who seemed to be chief, was tormenting a young lady by tieing to tear away her veil and expose her to the gaze of the barbarians assembled. (대장인 듯 보이는 한 나이 많은 자가 젊은 숙녀의 베일을 찢어 모여있는 야만인들에게 그녀의 얼굴을 드러내려 하며 괴롭히고 있었다.)
When Hong Pansa was the father of but two sons, he dreamed by night on one occasion […] He hoped the blessing might prove to be another son, and went to impact the good news to his wife. She would not see him, however, as she was offended by his taking a concubine from the class of “dancing girl”. The great man was sad, and went away. Within the year, however, a son of marvellous beauty was born to one concubine, much to the annoyance of his wife and to himself. (홍 판서에게 두 아들만 있었을 때, 그는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다 […] 그 축복의 아들을 한 명 더 낳는 것으로 밝혀지길 희망하며 좋은 소식을 전하고자 아내에게 갔다. 그러나 아내는 그가 ‘무희’ 계급의 첩을 들인 것에 마음이 상해서 그를 보려 하지 않았다. 대인은 슬퍼하며 물러났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지 않아, 한 첩에게서 출중한 용모의 아들이 태어나 그의 아내와 그를 아주 골치 아프게 했다.)
★유광수 (2022). 알렌(H. N. Allen) 번역 「홍길동전」 연구. 어문논집, 89, pp. 133-164.에서 발췌함★
2. 조선후기의 여인
조선 시대 여성의 존재감이 가정 안으로 한계가 그어지고, 사회적 관계망이 남성에 비해 확장되어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가정이 여성들의 주요 활동 공간이더라도 가정 내에서 다양하고 다층적인 사회적 관계망이 존재했으며, 관혼상제 등을 계기로 친척간 교류를 비롯해 친정을 왕래하고, 이웃이나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며, 비정기적이고 간헐적인 교류를 통해 여성들의 언행이 알려지고 존재감을 확인받으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18 조선시대의 여성이 남성에 비해서 차별받는 존재인 것은 맞습니다.
15세기 경에는 유교에 따른 법이나 제도 및 각종 문물이 그 체제를 갖추게 되었고19, 조선 정부와 양반층은 신분 혹은 성별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일상에서의 유교화20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유교에서는 성별을 남녀로만 구별하여 안과 밖을 음양의 성질과 연결 짓고 각 성별에 합당한 역할이나 가치와 위계를 부여하였습니다.21 유교의 젠더적 규범은 유교 이상 사회와 교차하기도 하고 절충하는 면모를 보였으며, 특히나 양반층에서는 유교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양반 여성에게 필요한 역할, 가치관, 바람직한 태도를 교훈서로 정리하였습니다.22
그렇지만, “우리에게 조선 여속에 관한 역사서가 없다는 것은 조선 사람의 과오다.”23라고 할 정도로 조선시대 여성에 관한 연구는 전무했다가, 한국여성문화를 다루는 조선시대 여성사의 개척서인 <조선여속고> (1927년)를 시작으로, 1945-2013년까지 한국 여성 연구의 성과를 검토한 『한국 여성사 연구 70년』가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24, 2000년 이후를 기준으로 조선시대 여성을 연구하는 전문적인 연구자가 늘어나면서 조선시대 여성사의 연구는 양적, 질적으로 팽창하게 됩니다. 아래의 표는 2000년부터 2022년까지 조선시대 여성사를 연구 현황입니다.
[Table 1] 2000~2022년 조선시대 여성사 연구 현황(저서)25
[Table 2] 2000~2022년 조선시대 여성사 연구 현황(논문)26
이러한 추세에 비추어서 리리브 작가님의 <외자혈손전>을 또다시 되새겨 읽어보면, <외자혈손전>은 홍길동전의 TS물이면서 조선시대 여성사의 한 갈래에 속하는 현대소설이라고 감히 정의할 수 있습니다. “대감에게는 고명딸이 하나 있었다. 늦둥이로 태어난 그 아씨의 이름은 무엇인가 하니, 글쎄, 무명(無名)이라 하더라. 듣기로는, 대감의 첩이었던 제 어미가 산통에 못 이겨 명을 다하는 바람에 일찍이 그 집 여종이 젖을 먹여 키웠다고 한다. […] 무명은 제대로 된 이름 하나 없었다.”27 또는, ‘나는 무릇 바깥(外)에 탯줄을 타고 나와 그 외자의 젖을 먹고 자란 계집이 아닌가.
남녀 할 거 없이, 하물며 사람 아닌 온 땅의 모든 짐승이 전부 제 어미 되는 부인의 살을 찢고 세상에 나와 숨을 쉴 터인데. 어찌하여 이 나라는 양반이며 노비며 하는 신분 따질 것 없이 여성이라 하면 남성의 종속물로 여기며 나아가 한 집안을 꾸리는 데 있어서 어머니의 친지혈육은 바깥이라 하는 외(外)자를 붙이고 그 반대되는 친(親)자 붙은 아버지의 혈손과 영 다른 취급을 한단 말인가. 하물며 그 밑에서 태어나 이제 막 이 땅의 숨이나 마셔볼까 하는 젖먹이의 아래 달린 게 남녀 중 누구 것이더냐 재보며 한 인간의 여생을 저들 마음대로 규정해버리지 않던가.
종국엔, 어머니의 딸이라는 직책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집안 내 서열이란 걸 매기자면 이러나저러나 천민과 다를 바 없는 자리 아닌가.’28 이런 대사들이나 묘사들 때문에, 저는 <외자혈손전>은 조선시대 여성사 계보를 잇는 현대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어떤 권위를 가진 문학 비평가나 문학 연구자는 아니라서, 제가 ‘이 소설은 이러이러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리뷰를 작성해도 딱히 공신력이 있는 발언이나 주장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저 80억 명이 넘는 현생인류 중에 한 명일 뿐이에요.
3. 글을 맺으면서
근래에 수영과 요가, 본가에서 가족들의 애정어린 위로를 받으며 정서적으로 회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에 이어서 리뷰글을 작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리리브 작가님이 행복하시길 바라며, 42매의 리뷰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