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리뷰) 인류의 끝에 이브가 있었다2 비평

대상작품: 파라미터O (작가: 알렉산더, 작품정보)
리뷰어: Ello, 17년 7월, 조회 88

1.

피드백이 잘되는 작가님이라 본래 리뷰를 받고, 내용을 수정하신다기에 그럼 저도 스리슬쩍 리뷰를 수정할까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본 작품의 내용이 많이 바뀌어 있는 것을 보고 재리뷰를 결심했습니다. 같은 작품에 리뷰를 두 번이나 쓰다니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스포가 있으니 여기까지만 읽고 일단 작품 읽으러 다녀오시면 더 좋겠네요!

 

2.

일단은 암울한 것은 더 암울하게, 희망적인 것은 더 희망적이에 바뀌었습니다.

‘쾌감기’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의 명암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차피 자손도 낳을 수 없는 몸이며 (낳을 수 있는 몸이었다고 하더라도 바뀔 것은 없다는 점이 더 비극이긴 합니다만) 윤리나 도덕에 관한 덕목은 찾아 볼 수도 없고, 종교의 가르침 또한 유효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힘의 논리로 판가름 나는 공간에 갇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쾌락’에 눈이 먼 집단이 약자를 강간하는 것부터 전개가 시작되고 마는데요. 여담이지만 강간 뿐만 음식을 가지고도 힘의 논리가 적용되었을 것 같습니다.

쾌감기 이후의 삶에서도 장애아동들이나 감옥의 죄수를 죽여 음식의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시기에 적절하게 정의의 사도가 등장합니다. 목사님 조차 교화에 실패한 이들 때문에 매일 매일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카일이 그 모두를 죽이기로 합니다. 슬프지만 누구라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정말 인류의 절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프롤로그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전사가 된 카일이 꾸준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좋은 뜻은 절대 아니고요. 감옥에 있다는 것 같고, 기계종을 계속 부수기도 한다고 하고, 심지어 10회에서는 ‘카일 놈’으로까지 불리는데요. 왜일까요. 이번에 새로 쓰신 프롤로그에서 카일의 정의감을 잘 나타내셨기에 단순히 “카일이 누구길래??” 가 아니라 “아니 대체 카일이 왜??” 로 궁금증이 바뀌었습니다.

또 프롤로그를 통해 쾌감기 이전의 삶을 그렸기 때문에 지호에게도 숀 존에게도 힘을 실어주는 역설적인 효과도 나타났습니다. 지호가 매번 게이브 목사와 대립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의사이기도 하지만 쾌감기를 발명하고 운용하는 역할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쾌감기를 통해 욕구를 효과적으로 해소 할 수 있었던 까닭에 도덕이나 윤리의 잣대에는 흔들리지 않았던 원시적인 무리들도 강간이란 행위를 멈췄습니다. 쾌감기는 무료로 이용 가능한데에다 원한다면 평생이라도 들어가 있을 수 있으니 쾌감만을 좇던 이들에게 얼마나 로또 같았을런지.

그 대표주자가 숀 존이죠. 숀 존은 쾌감기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면서 음식의 섭취도 줄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강간은 하지 않는 인간’이 됐습니다. 네. 그 정도의 인간이라는 것만으로도 대접해줄 만한 가치가 생기는 겁니다. 참 암울하지만 후에 숀 존과 힘을 합치는 카일과 목사를 보면 정말 최소한 강간만 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강간은 안되지만 살인은 된다는 논리가 뒷배경에 있긴 합니다만….)

프롤로그 한 편으로도 많은 내용들이 알차고 단단하게 바뀌어서 읽으며 감탄을 했습니다.

 

3.

 

내용 수정도 꽤 많이 되어서 세계관을 공유한 조슈 시점을 새로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다만 2회에 “팔을 뻗어 그녀의 기름진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나 5회에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손을 부들 부들 떨며 나사 구멍을 향해 황급히 드라이버를 들이댔다.” 와 같은 문장에 조금은 의아함을 느꼈습니다.

작가님께서 어떤 의도로 “기름진 머리칼”이라고 적었는지는 알겠지만, 기계종들이 장애아동들을 다룰 때 분명 위생적으로 다루게 되어있지 않을까요? 물론 물이 여유가 있어서 매일 씻고 닦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굳이 비위생적인 부분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 전에도 이 후에도 이 표현 이외에 위생적인 측면에 대한 설정이 나오지는 않아서 단순히 엘라가 씻는 걸 싫어할 수도…! 라고 혼자 납득하려고 해봤습니다 (..)

또 조슈가 여분의 패널을 발견한 순간에 너무 기뻐서 손이 떨렸다는 건 알겠지만 그 기쁨을 마약에 취한 것처럼 떨렸다고 표현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의 기쁨과 떨림을 표현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조슈의 감정선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가 암울하지만 그래도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는 건 그래도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노력하는 조슈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라라는 제자를 키워내고 이브를 자식처럼 아끼고 어머니를 찾는 등 쉼 없이 누군가를 보듬는 조슈가 있어서 다행스럽기도 했고요.

그런 조슈가… 변했습니다.

14회를 기점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브 91을 구하러 가면서 기계종들을 밟아 죽일 때 좀 충격적이었어요. 이 내용은 이전에도 있었던 것 같긴한데, 에울이랑 아프가 멈추지 않고 반목하자 두 기계종을 힘껏 부딪칠 때라던지. 이브족을 제외한 기계종을 구형 기계종처럼 여기는 모습이라서요. 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게이브 목사가 이야기했던 기계종은 자아를 가지면 안된다, 사람에게 봉사만 해야한다는 논리를 반박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전력탱크 가지고는 어떻게 동족을!! 이라는 느낌이라 아니 그럼 네가 밟아 죽인 기계종은…? 싶었달까요.

아마 어머니를 잃고 찾으러 다니면서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어지다보니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쌓였고 그걸 기계종에게 푼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게다가 엘라에게 달려들어 죽이려고 할 때는 그래 역시 그랬구나 싶기도 했어요. 화를 못참는 성격으로 못본 2년 사이에 변했나보다 하고요. 이브족들이 창조주님이라며 따르고 떠받들기도 했고, 사람들도 이브를 발견해서 전력 문제를 해결한 조슈를 분명 대단하게 생각해주고 대우해 주기도 했겠죠.

그렇게 이해하고 있던 와중에 19회에서 또 다시 조슈의 급격한 감정선을 마주하게 됩니다.

순간 욱해서 엘라를 때리고 죽이려고까지 했는데 그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엘라가 맞거나 죽어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조슈의 입장에서는 그럴만 했어요. 그런데 잠시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엘라 걱정을 하고 사람을 때린건 잘못이라고 반성을 하다니요.

오히려 그래도 엘라도 맞을만은 했다고 자위를 하는 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그리고 엘라는 요즘 어떠냐는 말이 일정 부분 엘라가 나를 용서해서 빨리 이 감옥에서 나가게 해줬으면 좋겠다로 들리면 더 자연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요.

착했다가 분풀이로 자아를 가진 기계종을 밟아 죽였다가 다시 분풀이로 엄마를 죽인 제자를 죽이려 했다가 급격하게 반성이라니. 감옥에서 들은 얘기도 “맞을 만한 짓을 했으면 맞아야지!” 였는데 사람을 때린건 잘못이라고 급 반성이라니….

25회에서는 “이런 썅년이!”라고 해서 다시 조슈가 돌아왔군 하며 잠시 흐뭇해 하기도 했습니다. 조슈가 너무 착하긴 했거든요.

 

4.

조슈의 감정선이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수정한 쪽이 더 좋습니다.

프롤로그도 그랬고요. 지호가 여전히 냉정하고 이성적이기 하지만 마지막에 사랑한다는 말, 부성애가 느껴지는 것도 좋았습니다. 또 조슈가 어머니의 노트를 발견하고 자신이 막 대한 기계종이 어머니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감정도 좋았고요. 훨씬 와닿았어요. 그리고 이브가 일을 배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이브에게 애정을 더 가지게 해서 마지막에 사람들을 ‘비활성화’ 시켰을 때 더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이브가 항상 극존칭을 쓰다가 17회 때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에서만 해요체 였던 것도 이브가 자아를 가진 기계종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 시켜줬습니다. 이렇게 예쁘고 귀엽던 이브가….

26회에서 엘라가 “그녀를 위해 드론~”을 이라고 얘기한 부분이 있는데 급박한 상황에서 비꼬려고 ‘-를 위해’라고 쓴 것 같지는 않고 ‘그녀에게”가 더 낫겠다고 생각하다가 다른 부분에 놀랐습니다. 엘라가 이브보고 ‘그녀’라고 했어요! 이브가 아니고 ‘그녀’ 인 건 엘라도 이브를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한다는 것 아닐까요? 게이브의 의견을 따르고는 있지만 엘라도 이브에게 자아가 있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고 예뻐하기도 했을 거예요.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브를 그녀라고 불러서 어쩐지 엘라의 무의식을 본 것 같았습니다.

5.

희망은 더욱 더 희망으로.

에필로그에서 그 동안 찝찝했던 감정이 한 번에 날아 갔습니다. 이브가 생존 확률을 따져 조슈를 구하려 했을 때도 에울족과 아프족이 서로 반목하며 복수만 생각했을 때도 얘네를 어떻게든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초조함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윤리와 도덕이 없는 다시 절망적인 시대가 도래하면 어쩌지 싶어서요. 31회에서 종족만 인간에서 기계종으로 바뀌고 다시 1회로 돌아가는 비극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그 모든 것을 극복한 조슈가 이들의 스승님으로 들어가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보수적이었던 게이브 목사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이해 가능한 하나님(여기서는 창조주)의 교리를 전파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이들에게도 윤리와 도덕 관념이 생기겠지 하고 기대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자리를 잡을 것 같네요.

이브족에게 벌써 제사장이 생긴 걸 보니 종교의 개념은 나왔겠어요!

이브가 기계종의 몸으로 변한 조슈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도 보고 싶었는데 이브가 승천했으니 그건 볼 수 없겠네요. 조슈를 믿지 않는 무리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이브도 조슈를 믿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겠다 싶었다가 그건 슬프니까 그만 생각하기로 합니다.

 

이번에도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