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흔 작가의 <공기의 기억>은 에드가와 란포의 <지붕 속 산책자>와 전체적인 소설의 구도가 비슷한 점이 있다. <지붕 속 산책자>는 에도가와 란포의 몽상가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초기 대표작이다. <지붕 속 산책자>는 지루하고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현실의 삶 속에서 회의하고 방황하는 염세적 인물이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하숙집 지붕으로 통하는 통로를 발견하게 되면서 밤의 세계와 범죄의 유혹에 눈을 뜨게 된다는 이야기다.
란포는 ‘현실은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이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자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에도가와 란포가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가 되고 그의 소설들이 추리소설의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관심은 오직 진실을 아는 것’이라는 아케치 고고로의 말처럼 이상과 현실 속에서 진실을 찾아 방황하는 범시대적인 고뇌를 다뤘기 때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반듯이 누운 상태에서 부스스 눈을 떴다. 불빛… 벽 모서리에서 네 가닥의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벽을 살펴보았다. 신기하게도 그 불빛의 모양은 보안을 위한 레이저빔과도 같았다. 그 때 나는 추측할 수 있었다. 원래 이 벽은 사람이 드나들었던 여닫이문이었지만 공간을 나누기 위해 벽지로 가려져 있다는 것을. 따라서 불빛이 투과되어 나오는 틈은 경첩과 문손잡이를 떼어낸 흔적이었다.”
<공기의 기억>은 다세대가 공존하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남자가 우연히 집 구조상의 특이점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통해 옆집의 가족들을 은밀히 관찰하면서 자신만의 망상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다. 소설의 도입부는 란포의 소설과 유사한 점이 있어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설의 전개가 거의 대동소이한 에피소드의 반복이고, 소설의 결말도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망상에 빠져 있던 남자가 바라보는 사건들을 완전히 뒤엎는 반전의 요소가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또한 소설의 전개과정에서도 1인칭 주인공시점인지 전지적 작가 시점인지 헷갈리게 전개되는 대목이 많았다. 단순히 공기 속에 존재하는 정체 불명의 미지의 존재에게 시작과 결말을 맡기지 않고, 좀 더 스토리를 다듬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