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맛있고, 기담이 짜릿해요!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입춘 벽사문 (작가: 김아직,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3월 12일, 조회 63

이따금 왜 이렇게 좋은 걸까, 멈춰서 곱씹게 되는 문장이 있다. 이 소설 <입춘 벽사문>의 첫 문장 ‘구흘산을 마주하고 홍안락은 걸음을 멈추었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랬다. 61매로 분량이 짧은 데다 가독성 좋은 문장 덕에 나는 지옥철에서 회사로 향하는 길목에 이 소설을 단숨에 다 읽었다. 그러고도 아쉬운 마음에 출근하고 화장실에 가서 조금 더 훑어봤는데, 그때도 그리고 이 리뷰를 쓸 때도 시선이 첫 문장에 머무른다.

구흘산을/마주하고/홍안락은/(걸음을)/멈추었다

딱 4글자로 구성돼 눈이 편안해서일까, 4/4/4/4로 딱 맞춰진 운율 안에 ‘걸음’이 추가되면 그 ‘걸음’에 나도 모르게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두 번째 문장이 바로 ‘길은 두 갈래 였다’였으니 나는 ‘걸음’에 주목한 상태로 ‘길은 두 갈래였다’로 바로 넘어간다. 아, 길이 두 갈래여서 멈추었구나, 나는 딱 두 문장 만에 이 소설에 몰입했다. 마치 ‘홍안락’이 된 것처럼.

소설을 읽는 데 있어서 주인공에게 얼마나 몰입하였는가, 는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주인공과 너무 멀리 떨어지게 되면 독자는 주인공이 죽든 말든 상관치 않는다. 주인공에게 이입하게 되는 순간, 그가 겪는 온갖 고초 심지어는 나무 가시에 살짝 찔리기만 해도 내 손가락이 다친 듯 아파한다. 문장만으로 ‘감정’을 끌어내는 글이 오랜만이라 신나서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이 소설 <입춘 벽사문>은 모자란 형과 달리 초시에 합격하여, 복시를 보러 가는 선비 홍안락이 마물로 가득한 ‘구흘산’으로 들어서며 겪게 되는 일을 담고 있다. 험준한 산세에, 기묘한 것들이 깃든 ‘구흘산’에서 홍안락이 무슨 일을 겪게 되는지, 도대체 ‘벽사문’이라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빠르게 읽어보도록. 본 리뷰에서는 내용에 대한 스포는 일체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소설의 장점과 아쉬운 점만 짧게 집어볼까 한다.

일단 문장이 좋다. 이 소설의 시대 배경에 맞게 몰입할 수 있게끔 예스러운 어투와 표현을 구사하는 와중에 실로 담백하다. 군더더기가 거의 없는데 장면이 그려진다.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을 적재 적소에 섞어서 쓰며, 주변의 묘사와 주인공의 ‘감정적인’ 독백이 잘 어우러져 외부적인 상황과 주인공의 내적 상황이 잘 느껴지는 것도 장점이다.

예를 들자면, <나목들과 마른 넝쿨들이 뒤엉키어 그늘이 짙었다. 겨울 가뭄에 계곡이 말라 물소리가 끊기고 새소리도 뜸하여 주변이 적막하였다. 홍안락의 거친 숨소리와 발아래 잔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리는 것도 그 탓이었다.> 여기까지는 주변부의 묘사와 홍안락의 외부적 상황 묘사였다. 바로 뒤이어지는 문장들이 <입춘이 내일인데 풀이며 짐승이며 산 것들의 흔적이 이토록 귀해서야 쓰겠는가. 흉산은 흉산이었다>이다. 외부 묘사에서 인물 상황, 내적 서술까지 군더더기 없다. 유려하게 잘 읽힌다는 건, 그 만큼 많은 고민과 시간을 들였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라 나만 알기는 아깝다. 이 외에도 빛나는 문장들이 많았다.

다음으로 ‘마물이 다양하게 등장하며, 그 액션이 섬뜩한데 추후에 ‘떡밥’까지 회수한다’는 점이다. 이 리뷰에선 자세히 쓰지 않겠지만, 주인공 홍안락이 만나는 마물들은 모두 그의 과거와 연관되어 있다. 마지막을 읽고 다시 마물들을 보면 숨겨둔 이야기들이 다시 발굴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마물의 이야기와 ‘숨겨진 진실’ 이야기가 잘 연결되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마무리가 너무 급작스러웠다는 점이었다. 짧은 분량 안에서 기승전결이 확실하게 있지만, 전-결 부분이 조금 더 길어져도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이를 테면, 주인공이 벽사문을 쓰게끔 유도하는 마을, 마을 사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조금 더 보였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주인공이 산에 홀려서 보게 된 ‘일종의 환상 혹은 환영’이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단서가 조금 더 나와도 좋을 것 같다. 흥미롭게 읽고 있다가 갑자기 분위기 반전! 하고는 끝나버린 기분이라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상상력과 소재를 탄탄한 문장력과 묘사로 엔딩까지 잘 끌고 간다는 건 쉽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동양풍 소재를 좋아하는 터라 이따금 글들을 많이 읽어보는데, 고어투나 동양적인 묘사를 잘 구사하는 작품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단언컨대 문장만 보기 위해 이 소설을 봐도 좋다. 그런데 재밌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도 이런 금상첨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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