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딜리버리에 부쳐 팬아트&캘리

대상작품: 던전 딜리버리 (작가: 유권조 프리미엄, 작품정보)
리뷰어: 라쿤 덱스터, 7시간 전, 조회 7

유권조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립○○대학교에서 던전 생태사를 공부하고 있는 학부생입니다. 저희가 이렇게 편지를 드리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선생님께서 학술지에 번역, 발표하신 「던전 딜리버리」에 대해 여쭙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대로라면 학회를 통해서 선생님께 문의드려야 했지만, 아직 학부생인 저로서는 학회의 문을 넘기가 무척 어려워 이렇게 무작정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 드리게 되었습니다. 혹여 편지로 선생님을 놀래거나 불쾌하게 해 드렸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 여쭙고자 하는 건 「던전 딜리버리」의 배경이 되는 제7시대 복합 던전의 형성 과정에서 있었던 ‘다자 불가침 조약’과 ‘생성형 던전’에 대한 내용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복합 던전의 시작이 제7시대에 초반에 있었던 다자간의 불가침 조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출간하신 저서들도 함께 견주어 볼 때 이 불가침 조약은 ‘모험가를 막기 위해 던전을 확장하는 가운데 발생한 가벼운 군사 및 정치적 연합의 의미가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불가침 조약이 차후 멀리 떨어진 던전까지 연결되어 ‘느슨한 안보 협의체’의 형태가 된다는 것은 학계의 정론이기도 합니다. 저도 학과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내용들을 공부하던 도중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불가침 조약―안보 협의체로 이어지는 제7시대의 던전들이 실제 역사에서는 갈등과 충돌이 잦았다는 겁니다. 이는 선생님의 저서와 학계의 정론과 대치되는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파고들어 보기로 하였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가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 가설은 바로 이계청의 「한(韓)―이(異) 고유명사 번역 지침」의 오류입니다.

이계청에서는 원활한 이세계어 번역을 위해 한국어―이세계어 번역 지침을 만들고 항시 개정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지나치게 의미를 압축하고 제한한다는 의견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다면, 혹시 제7시대에 이루어진 ‘불가침 조약’ 역시 어떤 번역상의 오류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관련한 내용을 조금 더 조사해 보았고, 다자 불가침 조약에서 ‘불가침’에 해당하는 이세계어 명사의 어원이 ‘군사적 침공을 하지 않는다’는 것보다 더 넓은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이세계어 명사는 ‘군사적 침공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가지지만 ‘재산을 침해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이는 아직 국가의 형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대에 피아 집단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재산’ 말고는 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재산’이 단순하게 유형의 무언가를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형의 무언가도 포괄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금은보화와 같은 것만이 재산이 아니라, 마법 주문이나 지식도 포함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제7시대 19년의 다자 불가침 조약과 그것에서 이어지는 던전 안보 협의체는 ‘재산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다자간의 합의 혹은 약속’, ‘그 합의에 동의하는 던전들의 모임’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후 벌어지는 던전 간의 갈등과 충돌도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협의체를 구성한 것이었다면, 어떤 재산을 지키기 위해 다자간 합의를 했는지가 밝혀지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그러한 이유를 그러한 이유를 제6시대 중엽 이후 발생한 모험가들의 폭발적 증가와 생성형 던전 시스템의 발생 때문이라고 추측해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제6시대 중엽 이후로 모험가들의 던전 공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던전의 세력들은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해졌습니다. 던전 확장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기하급수로 늘어난 모험가를 막기에는 어려웠습니다. 특히나 사람이나 몬스터는 생각하는 것이 한계가 있어, 던전을 확장하더라도 필연적으로 비슷한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있었지요. 비슷한 구조는 공략에 취약했으니까요.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시스템에 따른 던전 구축, 바로 생성형 던전 시스템의 등장입니다. 마침 기술적으로 제7시대는 시기가 좋았습니다. 슬라임 군체를 이용한 원시적인 대량 연산 시스템이 개발되었고, 단방향이기는 하지만 마법 송신 시스템도 사용 중이었죠. 던전의 세력들은 이를 앞다투어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성형 던전은 이상하게도 제7시대 말엽이 못 되어 역사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희한하게도 던전 간 안보 협의체가 등장한 시기와 같습니다. 저희는 이게 우연이 아닐 거로 생각하고 조금 더 자료를 모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불가침 조약과 안보 협의체가 이 생성형 던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죠.

시스템을 통해 생성형 던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재료가 필요합니다. 그 재료는 던전 구조의 학습인데, 이끼슬라임을 통해 기존의 던전 구조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죠. 이끼슬라임은 던전을 기어다니며 학습한 구조를 단방향 통신으로 슬라임 군체에 전송합니다. 그러면 슬라임 군체는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던전의 구조를 랜덤하게 확장하죠. 이것이 생성형 던전의 제작 과정입니다.

저는 여기에 주목했습니다. 앞서 저는 ‘불가침’의 뜻이 ‘상호의 재산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가설을 세웠습니다. 또한 ‘재산’에는 ‘유형이 아닌 무형의 지식도 포함된다’고 하였고요.

제7시대 이전의 던전은 모두 사람이나 몬스터의 손에 의해 지어졌고, 그것을 만든 이들은 모두 장인이었습니다. 즉, 그들이 만든 던전은 그들의 지적 재산이었죠. 그런데, 생성형 던전이 확산되면서 이런 지적 재산이 침해받게 되어 갈등이 생기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갈등이 심해지자, 결국 던전들은 서로의 던전에 대한 지적 재산을 침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불가침 조약을 맺었을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이것이 이후 서로 다른 던전으로 확장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위의 가설을 토대로 본다면 던전 딜리버리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선생님께서 비교할 자료가 없다 하심도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던전 딜리버리 서비스의 필요성이 대두된 건, 던전의 확장과 복잡성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 배경에는 생성형 던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던전 간의 지적 재산 침해를 막는 합의가 있었고, 이로 인해 생성형 던전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던전은 다시 그 확장성과 복잡성이 줄어들게 되었고, 결국 이러한 여파로 던전 딜리버리의 수요는 점차 줄게 되어 사라지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선생님께 여쭈어보고 싶은 내용입니다. 사실, 편지를 보내기 전에 많이 고민하였습니다. 저는 아직 학부생이고, 전문적인 학술 논문의 작성 방법도 서툽니다. 의욕만 앞서 나섰다가 큰코다친 적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의욕만 앞선 거면 어쩌지? 이미 이 가설을 누군가 반박했다면? 같은 실수를 또 저지르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런 걱정의 끝에서 불현듯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5년 전에, 그러니까 제가 아직 고등학생이었을 때 선생님께서 저희 학교에 강연을 오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세계어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처럼 훌륭한 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 연구가 이루어지는 걸 보면 제가 대학에 간 이후에도 제가 연구할 것이 남아 있을지 걱정입니다. 제가 새로운 것을 찾았다고 생각한 것이 이미 누군가 연구한 흔적은 아닐지 걱정됩니다.”

그 질문은 저희 모두의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조금 놀란 듯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내 미소를 머금으시고 이렇게 답해 주셨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학문이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바라고 있으니까요. 이미 앞선 사람들이 한 일을 반복하지 말라는 뜻의 격언인 ‘바퀴를 발명하지 마시오.’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바퀴를 발명해 봐야 합니다. 직접 생각하고 몸을 움직여서 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 물론 그 행위를 이미 누군가 했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 문제일까요? 여러분은 그것을 통해 경험을 쌓았습니다. 몸으로 쌓은 경험은 무의미하지 않죠. 만약 이후에 같은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돌아갈 수 있게 해 줄 겁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제에서 똑같은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면, 뛰어드세요. 다시 한번 온몸을 다해서 뛰어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학문이란 그런 겁니다. 겁먹지 마세요. 앞으로도 여러분이 연구할 내용은 무궁무진할 것이고, 때로는 제가 연구한 내용이 여러분의 새로운 연구의 발판이 되기도 할 겁니다. 저에게 질문을 던지세요, 제 연구를 밟고 뛰어 오르세요. 학문이란 그런 겁니다.”

그때의 그 답변이 저를 오늘로 이끌었습니다. 던전 생태사를 공부하도록 이끌었고, 선생님의 새로운 연구로 이끌었고, 이 편지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겁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선생님께 질문을 던지고, 몸을 던지기로 하였죠. 그것이 때론 실수로, 또 실패로 끝난다 하더라도요.

해서 감히 선생님께, 제가 세운 가설이 어떠한지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시간이 허락하는 선에서 이 가설을 한번 살펴봐 주십사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이에 대한 어떠한 비판과 논평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한 번 더 높게 뛰어오르겠습니다.

그럼, 선생님의 답신을 기다리며,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두서없는 긴 편지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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