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싸우는 자는 대리
앞장서는 자는 과장
끝까지 살아남는 자는 부장
이 작품은 초장부터 충격적인 화두를 던지고 시작합니다. 위의 세 덕목을 보다 현실에 가깝게 표현하자면 ‘일 잘하는’ / ‘통솔력이 있는’ / ‘변화하는 상황에 잘 대처하는’ 정도로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 가지 모두 사회 생활을 하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덕목입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줄에 상무나 이사는 될 수 없다고, 사장을 꿈꾸는 건 반역이라며 읽는 사람의 싸대기를 때리는 듯한 준엄한 경고가 따라붙습니다. 세 가지 덕목을 갖추더라도 애초에 시작점이 다른 사람은 감히 ‘더 위’를 넘볼 수가 없다는 거지요.
사회 초년생으로서 임원 자리를 단 한 번이라도 꿈꿔 보지 않은 신입사원이 과연 있을까요? 처음부터 그냥저냥 입에 풀칠이나 할 곳을 찾으러 취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겁니다. 몇 년쯤 지나 사회 생활에 익숙해지면, 비로소 체념을 배우게 되고 자신의 종착지가 어디쯤일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런 사실을 대놓고 입 밖에 내서 말하지 않습니다. 일반 대중들의 감정으로는 결코 용납될 수 없을 테니까요…사실이 얼마나 명백하건 관계없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 속의 세계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우선, 초장부터 회사가 소속 구성원들을 어떤 식으로 지배하고 통제하는지에 대한 기술이 살짝 나옵니다. 하위 단계를 늘리고 상위 단계에 더 많은 혜택과 지원을 부여하는 건 조직 구성원들에 대한 동기 부여책으로 상당히 효과적이기도 하지만…한편으로는 고전적인 조직 관리 기술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영달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는 한은 조직에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묘사는 더욱 암울합니다. 학교마저도 기업에 장악 당했고, 학비를 감당하지 못하면 학위를 딸 수 없으며 학위가 없으면 ‘화이트칼라’ 계층으로 진입할 수가 없습니다. 밑바닥으로 떨어진 ‘블루칼라’들의 삶은 비참합니다. 단지 고강도의 노동이나 오랜 노동 시간 때문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현대에는 누구에게나―심지어 최악질 범죄자나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조차도 당연히 있다고 간주되는 인권조차도 블루칼라들은 보장받지 못합니다. 누군가가 그들을 대리해 준다면 권리를 찾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도 엄청난 비용 때문에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습니다. 실질적으로는 노예, 혹은 천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좀 더 어설픈 비유를 이어가 볼까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기업들은 마치 고대나 중세 시대의 봉건 영주들을, 중앙 정부는 어쩐지 명목상 천자였고 갈수록 힘이 약해져 군웅들에게 명분 셔틀로 이용당했던 춘추전국시대의 주나라를, 초반부 갈등의 단초를 제공하는 WPP 판매 대리점주들은 소작농들을 착취해 자기 뱃속을 채우는 마름을 연상케 합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이 시대에는 WPP, 풀어 쓰자면 웨어러블 포터블 피씨(형태는 안 나와 있지만 명칭이나 기능을 볼 때에는 스마트폰으로 추정됩니다)가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공적 서비스가 WPP를 통해 기업이 제공하고, WPP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주체 역시 기업입니다. 일반 시민으로서는 어디로도 옴치고 뛸 수 없게 꼼짝없이 얽어매어 놓은 셈입니다. 기업으로 위탁을 받아 WPP 판매를 대행하는 대리점주들을 보자면, 저는 이들이나 소위 ‘폰팔이’들의 행태 사이에서 단 하나의 차이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단지 기업과 노동자 관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금권만능주의, 공평한 기회의 박탈, 앞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 무한 이기주의, 권력을 쥔 자들에게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부패와 타락…….이 작품을 처음 읽을 때에도 그렇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읽을 때에도 저는 변함없이 고통을 느꼈습니다.
단지 사기업뿐만 아니라 많은 조직들이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목표 달성과 조직 자체의 유지에 유용한 ‘도구’로 간주하곤 합니다. 조직의 의도에 따라 개인의 이익과 영달만을 좇으며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때로는 함께 일하는 동료나 무고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조직의 행태 역시 ‘기업’과 딱히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그리고 제가 은연중에 조직의 위계를 고착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저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를 결정하는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러한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이익을 보는 자들은 대체 누구일까요? 저는 대체 누구를 위하여 힘과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붓고 있었던 것일까요? 과연 저는 제 영혼을 무사히 보존한 채로 정년은퇴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