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도 재미로 하는 게 아니에요. 공모(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공모채택

대상작품: 자살 강자 (작가: 녹차빙수, 작품정보)
리뷰어: NahrDijla, 23년 2월, 조회 131

※ 이 리뷰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의아니게 작가님을 디스하는 것 같은 제목이 되었는데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재미라는 것은 주관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리뷰도 주관적입니다. 뭐 어떤 리뷰가 주관적이지 않겠냐만은, 그래도 재미라는 부분을 설명할 때 주관에 침잠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겁니다.

소설 내 작가의 말처럼 블랙 코미디이되 대상에 대한 조롱에 역점은 두지 않았다는 것은 이 상황을 아이러니하면서도 처연한 간극으로 이끕니다. 웃음이 웃음조차 나지 않은(혹은 웃음이 나서는 안되는) 상황은 비극으로 영락하여 소설의 전체적인 테마를 구성합니다. 이런 테마가 끝내 도착하는 곳은 심리적 불안감으로 점철된 일종의 호러 – 사이코드라마에 가깝습니다.

호러는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긴장감과 공포감을 일으키는 장르군을 통칭합니다. 여기서 긴장감과 공포의 요소는 보이지않는 것에서 실질적인 것으로 치환되어 작품의 감정을 형상화합니다. 녹차빙수님의 소설 [자살 강자]에서는 실체적인 삶을 공포를 대상으로 정의하며 그로부터 도망치려는 인물을 표현합니다. 주인공은 안락한 자살을 위하여 자살을 연구하는 인물이나 실질적으로 자살을 할 용기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 자살을 연구하는 행위 자체가 이 ‘공포스러운 삶’으로부터 도피하는 방식이자 저항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루프 속에서 실질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그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도피하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루프는 주인공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시험할 수 있는 가상 공간이며, 동시에 자살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를 형상화하는 도구입니다. 이처럼 주인공이 주목하는 대상이 자살 자체가 아니라 자살을 연구하는 행위인 것은 이 소설이 아이러닉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루프는 죽음에서 시작하며 삶으로 끝이 납니다. 주인공은 무수한 방법으로 자신의 죽음을 테스트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삶으로 다시 회귀합니다. 결과적으로 자살을 안전하게 체험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죽음의 동등함이 아니라 죽는 방식의 귀천을 이야기합니다. 그리하여 자살법 공유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과의 대화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주제를 형상화합니다. 떨어지고, 약을 먹고, 손목을 긋는 방법은 고순도 에탄올이나 리튬, 리도카인을 섭취 및 주입하는 방법보다 과연 열등한걸까요. 이 지점에서 소설의 자살에 대한 사이코드라마적인 면면이 드러납니다. 죽음을 맞이하려는 방식은 언제나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기 마련입니다. 주인공은 극단적인 방식의 귀천이 그 결과에 귀천이 없더 하더라도 고통의 총량에 의해 귀천을 정의합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극단적인 상황들을 마주하고, 그 것들의 폐해를 말하며 더 안락한 죽음과 더 안락한 자살 방법에 골몰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방법을 옥상의 학생에게 전달하며 자살을 권유하고는 루프는 끝이 납니다. 이렇듯 소거법으로 사라져가는 방법론의 집착은 실제로 죽어버린 인물들과 죽음을 위해 살아가는 주인공을 나누며 주인공이 손수 모아둔 자살 방법들을 소각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자살 강자로 정의했던 주인공이 다시금 자살 약자로 영락해버린 상황은 일종의 냉소적인 무기력함의 사이코 드라마입니다.

소설의 ‘재미’에 대한 부분은 이처럼 작품 전체에 퍼져있는 아이러니에 있습니다. 여러 디테일을 잡은 극단적인 방법들은 자살방법의 날카로움을 다소나마 무디게 만들고 점진적으로 그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려는 이들을 제시하며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호러적이며 사이코드라마적인 부분은 일견 삶에 대한 시선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그런 점과 더불어 루프라는 상황은 소설은 일견 몽롱하면서도 공상적으로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의 자살에 대한 접근이 다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은 피한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이정도로 디테일한 자살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는 모방을 주의해야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테마인 것은 매한가지긴 하나 소설은 작품 전체에 퍼져있는 냉소적 무기력함을 바탕으로 이를 조심스럽게 묘사합니다. 이 무기력함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여기에 나온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고통스러움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사실 이 소설이 이 지점에서 문제를 극복한건지는, 저 역시 우울증 환자임에도 판단이 잘 서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냉소적이되 비난하지 않으며, 무기력하지만 자살을 말리려 합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하나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우울증을 앓는 중 자살은 얼마간 치료를 받았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극심한 우울증 속에서는 자살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지만, 치료를 받은 후에는 무기력함이 나소 나아져서 실제로 행동하는 사례가 왕왕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의 상황은 이에 걸쳐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우울증이 점점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시대에 우리가 다소나마 행복한 상황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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