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달 뒤 퇴사를 목표로 사표를 품은 젊은 신입 사원이 있다. 그에게 주어진 건 “고물 같은 마우스, 고물 같은 윈도우 xp”, 2001년 출시되어 2014년 단종되었으니 현재 10대 중후반의 나이에서는 거의 접했을 리 없는 운영체제다. 연두색 들판과 푸른 하늘이 맞닿아 있는 배경 화면이 떠오르고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컴퓨터를 켜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때에는 배경 화면에 캐릭터를 방생해 키우거나 마우스를 따라다니는 아이콘을 설치하는 것이 유행이기도 했다. 조악하고 때로 불편했지만, 그때의 게임과 감성이 종종 떠오를 때가 있다. 지금의 매끈하고 속도감 있는 컴퓨터에서는 당시의 향수를 재현할 수 있어도 그것을 온전히 복원하지는 못한다.
윈도우 XP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는다기엔 드문드문 분절되는 추억이 있고, 완전히 안다기에는 너무 어렸던 나의 과거를 소환하는 하나의 짧은 소설, 담장 작가의 〈window를 설치하세요〉를 읽는 순간, 스크롤을 멈출 수 없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윈도우 XP의 부팅 화면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 희미하지만,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검은 배경에 네 구역으로 나뉜 깃발 모양. 가지런히 떨어지는 직선과 곡선으로 쓰인 타이포. 화룡점정인 흰 글자의 ‘Windows xp’. 당연히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는 도입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일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신입 사원이다. 그는 얼마 뒤 퇴사를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노잼’인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아. 당시에는 ‘노잼’이라는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무료한 일상에 하나의 작은 변화가 생긴다. 그것은 너무 별것 아니라 처음에는 섬뜩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바탕 화면의 폴더 아이콘 사이로 무언가 튀어나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호기심 많은 주인공은 그것을 잡아당겨 ‘졸라맨’의 정체를 확인한다.
이 소설에는 운영체제로서 윈도우 XP의 특징뿐 아니라 그 시절의 사람들만 아는 ‘졸라맨’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이 캐릭터는 단순한 외모와 특유의 목소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공개된 이후 유명세에 만화책과 플래시 게임 등으로 가공되기도 했다. 선으로만 이루어진 인간형 캐릭터를 총칭 ‘졸라맨’으로 불렀을 정도로 고유명사가 된 이 캐릭터는 윈도우 XP를 사용하던 시절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니 이 소설에 주인공 ‘나’의 반려 캐릭터로 졸라맨이 등장한 것은 당연하다.
담장 작가는 이 졸라맨이 당시에 지니던 캐릭터를 그대로 살려 “잠깐만! 기다려 봐! USER!”라는 독특한 대사로 독자의 눈을 끈다. 졸라맨의 목소리와 성격, 말투를 아는 독자들은 특유의 음성 변조와도 같은 가늘고 긴 음성을 떠올린다. 브릿G 소설 연재 편집기 기능 중 대사 인용을 십분 활용해 윈도우 창의 파란 바와 결합하여 메모장처럼 보이게 하는 센스는 괜히 작은 웃음이 새게 한다. 졸라맨은 따옴표 안의 대사로 가둘 수 없는 좌충우돌 캐릭터다.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다니며 가상의 자판을 클릭하는 졸라맨의 모습은 익살스럽고 생생하게 그려진다. 주인공은 잠과 스트레스 사이에서 팽팽히 긴장하던 정신이 드디어 헛것을 보는 데에 일조한다는 생각으로 체념하며 그 졸라맨을 바라본다. 그리고 메모장으로 그와 대화를 시도한다.
인생의 무료함과 업무의 지루함에 절여진 ‘나’에게 졸라맨은 흥미로운 놀잇거리였을 수도 있다. 바탕화면에 캐릭터를 방사해 키우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니 크게 놀라울 것도 없었을 것이다. 졸라맨은 자신의 정체를 ‘엔티티’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덤보’라는 별칭을 붙인다. 그는 ‘덤보’를 데이터 조각보다는 하나의 존재로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덤보’는 자신감이 넘친다. 이 자신감은 ‘나’에게 일상의 재미를 수혈한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나는 일탈이 졸라맨으로부터 발생한 후, ‘나’와 ‘덤보’는 수수께끼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USER들은 이상하구나. 이상해! 코끼리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어.”
‘덤보’는 엔티티다.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라는 뜻이다. 그러니 코끼리 또한 그에게는 이미지 데이터 내지는 수없이 나열되는 0과 1의 조합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이런 엉뚱함은 ‘나’가 앉아 있는 사무실의 현실감과 대비된다. ‘나’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은 사무실의 의자들에게도 이 행위를 들키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덤보’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하나의 캐릭터와 그것을 이용하는 유저의 관계를 넘어선다. 마치 ‘나’는 ‘덤보’의 반려인처럼 변모한다. 그 중간에는 다른 엔티티를 보유한 누리꾼의 조언이 있다. ‘덤보’를 반려 캐릭터로 생각하는 ‘나’는 그가 좋아할 만한 정보를 정성껏 수집해 하나씩 실행한다. 배경화면을 새롭게 교체하거나 아이콘을 좀 더 ‘덤보’스럽게 바꾼다. 작가는 이를 글로만 묘사하지 않고 직접 그림으로도 준비해 소설의 중간에 삽입한다. 이것은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로 보았을 때 독자들에게 더욱 직관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장면을 작가가 정확히 짚어냈음을 의미한다. 윈도우 XP라는 운영체제를 주제로 삼음으로써 독자의 향수를 끌어내기 시작한 작가는 푸른색 바와 초록색 시작 버튼이 특징처럼 깔려 있는 이미지로 시각적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배경 화면을 바꾸는 것, 아이콘을 바꾸는 것은 이미지로 보았을 때 더 선명하고 즉각적으로 인지된다. ‘덤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덤이다. 독자들은 어느새 ‘나’의 감정에 이입해 배경 화면에서 뛰노는 ‘덤보’를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덤보’와 함께 놀고 그의 환경을 바꾸는 주체는 ‘나’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뿌듯해하는 것은 독자다. 독자들의 일상 역시 ‘나’와 다르지 않기에, 그들은 ‘나’의 즐거움에 쉽게 몰입한다. ‘덤보’와 함께하며 ‘나’는 사내에서 작은 성과들을 이루며 승진도 한다. ‘덤보’는 ‘나’의 일상을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꾸어나가는 조력자이자 반려캐릭터로 서서히 자리 잡는다. 그러나 이런 잔인한 세상. ‘덤보’와 ‘나’의 작은 일탈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윈도우 XP 운영체제는 2014년 종료된다. 일방적으로 통보 받은 ‘덤보’와의 이별 기일은 3일. ‘덤보’는 자신을 압축 파일에 넣으라고 하고 ‘나’는 사려 깊은 마음으로 ‘덤보’가 지루하지 않을 만한 환경을 파일 속에 갖춰 준다. 작가는 그저 데이터로 이루어진 화면 속 아이콘일 뿐인 ‘폴더’와 역시나 같은 데이터일 뿐인 ‘배경 화면’에 공간성을 부여한다. ‘덤보’는 그 안에 들어가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광활한 배경 화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생각해 주는 ‘나’와 함께 지낼 시간을 상상하면서.
그러나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덤보는 윈도우 XP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나’는 다시 우울해지고 직장에 남은 이유를 상실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빗속을 걷는다. 만약 이렇게 소설이 끝났다면 굉장히 담담하지만 마무리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드는, 말 그대로 조금 찝찝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담장 작가는 자신이 구축한 세계를 쉽게 끝내지 않는다. 그리고 잔잔한 우정의 서사였던 앞부분에서 크게 반전을 주듯, 이야기의 말미에 으스스한 장면을 넣는다. “그 시각 아무도 없는 사무실 컴퓨터 전원이 스스로 들어오고 메모장이 켜”진다. 호러 소설에나 나올 법한 전개가 아닌가.
“음! 여기가 내 집인가? 이건 내 이름이구나! 11110101! 좋아! window 7의 설치와 함께 탄생한 멋지고 완벽한 엔티티! 그게 나야!”
윈도우 XP로 완벽히 독자의 향수를 자극하는 데에 성공한 이 이야기는 평면적인 디지털 세계에 확실한 공간성과 시간성,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캐릭터를 설정함으로써 기이하고 환상적이지만, 끈끈한 우정으로 인해 결국 한 사람이 힘을 얻는 짧은 소설로 탄생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인터넷 연재 소설에서 가능한 모든 실험을 통해 윈도우 XP의 메모장과 ‘덤보’의 생활 공간인 배경화면을 실감나게 구현했으며, 졸라맨이라는 캐릭터와 구글의 공룡 게임 등 당대의 시간을 통과한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요소를 소설 곳곳에 배치했다. 이후 단편의 마무리에서 형성되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며 새로운 엔티티의 탄생을 예고한다.
이 짧은 소설이 이토록 많은 메시지와 새로운 시도를 포함하는 동시에 완벽한 센스로 처음과 끝이 맞아 떨어지도록 직조될 수 있던 것은 온전한 작가의 능력 덕분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은 독자를 설레게 했다가 위로하고 안타깝게 하다가 그들의 등골에 소름을 돋운다. 지루함과 허전함투성이인 한 사람의 생에 나타난 ‘멋지고 완벽한’ 작은 친구. 그와 지낸 짧은 시간을 눈물로 마무리한 ‘나’의 앞날을 상상하게 된다. 하나의 시대가 저물고 다른 시대가 올 때 기대감보다는 아쉬움을 갖는 이에게는 어떤 미련이 있어서일까. 어쩌면 이 소설은 친구처럼 남은 기억을 보내주기 싫었던 우리의 옛날, 그때로부터 몰려오는 향수에 부치는 짧지만 유머러스하고도 슬픈 한 장의 편지인지도 모른다. 어느 때, 어느 공간에서 나와 당신이 함께 했던 모든 소중한 시간이 그리움으로 몰려온다. 다가올 새 시대를 몰랐던 그때, 우리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졸라맨 ‘덤보’는 열리지 않은 파일 속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을 수도 있다.
멋지고 완벽한 엔티티! 너의 둘도 없는 친구였던 나! 그 시절의 주인공은 우리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