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고 귀여운 친구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window를 설치하세요 (작가: 담장,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3년 2월, 조회 56

여기 두 달 뒤 퇴사를 목표로 사표를 품은 젊은 신입 사원이 있다. 그에게 주어진 건 “고물 같은 마우스, 고물 같은 윈도우 xp”, 2001년 출시되어 2014년 단종되었으니 현재 10대 중후반의 나이에서는 거의 접했을 리 없는 운영체제다. 연두색 들판과 푸른 하늘이 맞닿아 있는 배경 화면이 떠오르고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컴퓨터를 켜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때에는 배경 화면에 캐릭터를 방생해 키우거나 마우스를 따라다니는 아이콘을 설치하는 것이 유행이기도 했다. 조악하고 때로 불편했지만, 그때의 게임과 감성이 종종 떠오를 때가 있다. 지금의 매끈하고 속도감 있는 컴퓨터에서는 당시의 향수를 재현할 수 있어도 그것을 온전히 복원하지는 못한다.

윈도우 XP가 완전히 떠오르지 않는다기엔 드문드문 분절되는 추억이 있고, 완전히 안다기에는 너무 어렸던 나의 과거를 소환하는 하나의 짧은 소설, 담장 작가의 〈window를 설치하세요〉를 읽는 순간, 스크롤을 멈출 수 없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윈도우 XP의 부팅 화면이다. 시간이 오래 지나 희미하지만,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검은 배경에 네 구역으로 나뉜 깃발 모양. 가지런히 떨어지는 직선과 곡선으로 쓰인 타이포. 화룡점정인 흰 글자의 ‘Windows xp’. 당연히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는 도입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일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신입 사원이다. 그는 얼마 뒤 퇴사를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노잼’인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아. 당시에는 ‘노잼’이라는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무료한 일상에 하나의 작은 변화가 생긴다. 그것은 너무 별것 아니라 처음에는 섬뜩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바탕 화면의 폴더 아이콘 사이로 무언가 튀어나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호기심 많은 주인공은 그것을 잡아당겨 ‘졸라맨’의 정체를 확인한다.

이 소설에는 운영체제로서 윈도우 XP의 특징뿐 아니라 그 시절의 사람들만 아는 ‘졸라맨’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한 이 캐릭터는 단순한 외모와 특유의 목소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공개된 이후 유명세에 만화책과 플래시 게임 등으로 가공되기도 했다. 선으로만 이루어진 인간형 캐릭터를 총칭 ‘졸라맨’으로 불렀을 정도로 고유명사가 된 이 캐릭터는 윈도우 XP를 사용하던 시절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니 이 소설에 주인공 ‘나’의 반려 캐릭터로 졸라맨이 등장한 것은 당연하다.

담장 작가는 이 졸라맨이 당시에 지니던 캐릭터를 그대로 살려 “잠깐만! 기다려 봐! USER!”라는 독특한 대사로 독자의 눈을 끈다. 졸라맨의 목소리와 성격, 말투를 아는 독자들은 특유의 음성 변조와도 같은 가늘고 긴 음성을 떠올린다. 브릿G 소설 연재 편집기 기능 중 대사 인용을 십분 활용해 윈도우 창의 파란 바와 결합하여 메모장처럼 보이게 하는 센스는 괜히 작은 웃음이 새게 한다. 졸라맨은 따옴표 안의 대사로 가둘 수 없는 좌충우돌 캐릭터다.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다니며 가상의 자판을 클릭하는 졸라맨의 모습은 익살스럽고 생생하게 그려진다. 주인공은 잠과 스트레스 사이에서 팽팽히 긴장하던 정신이 드디어 헛것을 보는 데에 일조한다는 생각으로 체념하며 그 졸라맨을 바라본다. 그리고 메모장으로 그와 대화를 시도한다.

인생의 무료함과 업무의 지루함에 절여진 ‘나’에게 졸라맨은 흥미로운 놀잇거리였을 수도 있다. 바탕화면에 캐릭터를 방사해 키우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니 크게 놀라울 것도 없었을 것이다. 졸라맨은 자신의 정체를 ‘엔티티’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덤보’라는 별칭을 붙인다. 그는 ‘덤보’를 데이터 조각보다는 하나의 존재로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덤보’는 자신감이 넘친다. 이 자신감은 ‘나’에게 일상의 재미를 수혈한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나는 일탈이 졸라맨으로부터 발생한 후, ‘나’와 ‘덤보’는 수수께끼 같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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