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여성들이 형광등을 바라보며 빛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가상의 한국 전통문화인 ‘형광등보기‘의 이야기와, 그로 인해 탄생한 형광등보기를 통해서 미래를 점치는 형광등보기 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소설이라면 형광등보기의 기원과 역사의 흐름을 간단하고 빠르게 넘기고, 그 후에는 형광등보기의 놀라운 진실이나 이를 이용해 거대한 이익을 취하려는 거대 기업의 음모, 혹은 이를 이용해 가족의 진실을 찾는 주인공 등 이와 관련된 강력한 ‘본작’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지 않고, 대신 형광등보기가 현대까지 전송되어 다른 전통문화처럼 우리의 역사에 남는 과정을 담담하고 수수한 말투로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전 그 수수함과 담담함이 어째서인지 마음에 들었습니다. 거대한 음모도, 놀라운 비밀도 없지만,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는 마치 잔잔한 물결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시냇물을 바라보는 것 같은 편안함과 따뜻함을 저에게 선물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VR 세계에서 어떠힌 오류가 일어나 내부의 모델들이 빛으로 화하고, 그 빛 안에서 진리를 본 어떤 화자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언뜻 보기에는 관련 없어보이는 형광등보기 점과 화자의 이야기는, 둘 모두가 ‘빛’ 안에서 각각 미래와 진리를 엿보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며, 따라서 이 세계의 ‘빛‘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지 모릅니다(작성자의 갤로그가 폐쇄되었다는 사실은 이 가설에 신빙성을 더해 줍니다.) 선술했듯이 보통이라면 여기서 ‘본편‘이 시작되겠지만, 이 소설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어쩌면 허무할 수도 있는 결말이지만, 역시 선술했듯 전 이 결말이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가상의 역사‘ 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은 많지만, 그 가상의 역사를 이런 식으로 풀어낸 소설은 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잔잔히 흐르는 강물 같은 이야기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