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전을 찾아보면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특정 분야에만 한정되어 알음알음 쓰이던 옛날과는 달리 요새는 다양한 분야에서 너도나도 쓰는 용어가 되었지만, 나에게는 덕질이라고 하면 ‘아이돌 덕질’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이 있었다. 노래를 듣고, 앨범을 사고,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프린트되어 있는 문구류나 티셔츠와 같은 굿즈를 사 모으고, 방송을 꼬박꼬박 챙겨보고. 아쉽게도 콘서트는 가지 못했지만. 그때는 그것이 덕질인지도 몰랐다. 성인이 된 이후 덕질의 개념을 알게 되면서 그때의 내가 했던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그 아이돌 그룹을 덕질했던 거구나하고. 아이돌 그룹 덕질을 시작으로 내 덕질의 역사도 시작되었고, 분야만 바뀔 뿐 지금까지 꾸준히 덕질을 해오고 있다.
성애도 나와는 달리 아이돌 덕질만 하고 있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 끊임없이 덕질을 해오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의아해하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좋아한다는 감정은 똑같으나 단지 그 대상이 내 옆이 아니라 모니터 속에 있는 대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애의 친구들은 성애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성애는 처음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려고 노력했으나 곧 포기한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질에 관대해진 요즘에도 왜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쏟냐는 말을 듣기가 십상인데 성애와 내가 어렸을 땐 오죽했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똑같은데, 왜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랑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른 법인데. 덕질하면 현실에선 연애를 못한다, 연애하려면 덕질은 하지 말아야 한다, 덕질하느라 현실감각이 없어서 그렇다 등등. 덕후들은 꽤나 들어보았을 법한 말들 아닌가? 이런 생각이 팽배했던 이유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성적인 사랑만 사랑일 뿐이며 결혼으로 그 사랑은 완성되는 법이니 그것에 해당되지 않는 나머지 사랑들은 사랑이라 취급받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감히 짐작해본다.
보고 싶고, 건강했으면 좋겠고, 늘 행복했으면 좋겠고, 얼굴이나 목소리만 들어도 신나고, 쉴 때는 뭐 하고 쉬는지 궁금하고,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알고 싶고, 소소한 선물을 하면 기분이 좋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뭘 해도 귀여워보이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위로를 받고, 자려고 누워서도 생각난다면 사랑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누가 관심없는 대상에게 이렇게 시간과 돈을 쓰겠나.
덕질을 통해 누군가를 사랑하든 곁에 있는 소위 말하는 ‘현실 사람’과 사랑하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통해 내 삶이 위로받을 수 있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덕후의 덕질운은 연애운이랑 일맥상통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있다. 덕질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법.
나도, 성애도 우리 모두 오늘도 사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