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트리지 말아야 할 고요함 속에서는 일상의 많은 것들이 과장됩니다.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는 폭죽이 터지는 것 같고, 점화된 가스레인지가 얼마나 존재감 있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지, 세상에는 바스락거리는 비닐 재질로 만들어진 물건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기척이란 아무리 웅크리려 해도 완전히 감추기 어렵습니다. 특히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공간에서 홀로 깨어 움직여야 할 때는 더더욱이요. 마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하려 해도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소리를 지우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어쩌면 ‘딸깍였을’지도 모를 소리를 참아내고, 물 따르는 소리에도 온갖 주의를 기울이다가 지하철 화장실에 와서야 비로소 숨을 내뱉고 일상의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무겁게 내리는 함박눈을 뚫고서 장미 덩굴로 둘러싸인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일반적으로 소리에 더 주의해야 할 장소는 집보다 도서관일 테지만, 어쩐지 환상적이고도 수상한 장밋빛 도서관에서의 ‘나’는 상대에게 쌉싸래한 커피를 건네면서 정직한 목소리를 냅니다. ‘나 자신도 못 구하는데 남을 어떻게 구하겠어요.’라고요.
시릴 만큼 차게 얼어붙어 있는 ‘나’는 마치 그가 가져온 보온병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면은 아무리 차가워도 그 내부는 최초의 온기를 오래 간직하는 보온병. ‘나’는 자신과 세상을 향한 판단 양쪽 모두에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듯해도, 잠자는 도서관의 그 사람에게는 숨죽이지 않고 기꺼이 따뜻한 내용물을 건넵니다. 입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먹다 보면 맛있을지도 모를 묘한 씁쓸함을 나누면서요.
따끈한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즈음 도서관은 아마 더 이상 장밋빛은 아닌 차가운 현실의 연장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제힘으로 춥고 시린 밖으로 나서고야 말겠다는 ‘나’의 온도를 쉽사리 빼앗진 못할 것 같아요. 이미 달궈진 보온병 속 온기란 ‘나’의 고백처럼 ‘오래가니까요’. 삶의 기척을 완전히 소거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 온기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잠자는 도서관의 취준생> 속 ‘나’에게, 취준생일 때든 아니든, 신발 위에 눈이 쌓이는 날은 어쩌면 또 있을 테고 그걸 털어내고 싶을 때나 손을 녹이고 싶을 때, 씁쓸함보다 달콤함이 조금 더 필요할 때, 가끔은 도서관 특유의 체온 속에서 낮잠 정도는 충전해도 괜찮지 않겠냐고 살짝 귀띔하고 싶은 오지랖을 마지막으로 짧은 감상을 줄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