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사인 반서정은 스물 여섯으로 썩 붙임성 있는 성격은 아니라 인기 없는 스탭이었다. 목덜미부터 어깨, 팔꿈치까지 이어지는 큰 화상 흉터가 있는데, 당시 그 화재로 부모님이 돌아가셔 보육원에서 자랐다. 서정은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읽다가 굴러 떨어져 소설 속 인물로 빙의하게 된다. 현실 속 주인공이 자신이 읽던 소설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보통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지만, 이상하게도 서정은 프롤로그에서 화재에 휩쓸려 죽게 되는 엑스트라에 빙의되고 만다.
열일곱의 일리오트 벤지아 릴케는 황제의 스물다섯 번째 정부가 낳은 열두 번째 황녀이다. 실제 신분은 파드바 후작 부인의 차녀로 황실에서 체면치레 삼아 붙여준 시녀 두 명과 함께 국경 근처의 작은 저택에서 소일거리 하나 없이 살아가는 처지였다. 재미있는 것은 엑스트라에 빙의된 ‘나’의 태도였다. ‘나’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놀라워하지도 않고, 왜 하필 주인공이 아니라 곧 죽어 소설 속에서 사라질 엑스트라가 냐고 억울해 하지도 않고, 그저 주어진 생활을 즐긴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시녀들의 시중을 받고, 누워만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현재 생활에 매우 만족하면서 말이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인생의 봄날 한번 누려보겠다는 거다. 온종일 아무것도 안 해도 매끼 따끈한 식사가 나오고, 잡다한 집안일은 남이 다 해주는 편안한 삶이니 말이다. 실제 소설 속 주인공은 가문의 몰락으로 황태자비가 될 뻔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별볼일 없는 황녀의 시중을 드는 시녀로 살고 있는 미녀 클라우디아 슈베린이다.
로맨스물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 독자임에도, 신선할 설정과 전개에 몇 회차를 읽지도 않았는데 작품을 구독했을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소설 속 인물로 빙의했더니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 그것도 곧 죽어 소설 속에서 사라질 캐릭터는 설정도 인상적이었고, 그 와중에 그런 현실을 느긋하게 즐기는 천하태평한 인물의 성격도 아주 재미있었고 말이다. 게다가 급작스러운 전개로 원래 다가올 죽음보다 더 이른 죽음을 맞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초반부의 이야기는 아주 군더더기 없이 몰입감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 갑자기 뜬금없는 남자주인공의 등장, 아 역시나 로맨스물의 뻔한 클리쉐가 시작되기 시작한다. 덕분에 일리오트 벤지아 릴케는 죽지 않고 살아 남게 되었고, 엑스트라의 캐릭서터성을 점점 잃게 된다. 원래 읽었던 소설의 전개와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엑스트라의 운명이 바뀐 것인데 자연스레 앞으로의 전개가 어디로 갈 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업데이트가 자주 되는 편은 아닌 작품으로 현재 올라온 회차까지는 모두 읽었다. 부디 초반부의 파격적인 설정이 힘을 잃지 않기를, 앞으로 더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회차에서는 더 놀라운 일들이 많이 벌어지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