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밤을 사랑하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언제나 밤인 세계 (작가: 하지은, 작품정보)
리뷰어: NahrDijla, 22년 3월, 조회 116

 

1. 망설임의 판타지.

<언제나 밤인 세계>가 보여주는 세상은 아름다우면서도 잔인하다. 에녹과 아길라, 하나였던 몸으로부터 둘이 분리되었을 때, 그 존재 자체가 잉태한 원죄는 참망함으로부터 비롯된다. 태어날 때부터 거부되었다는 분노와 결손난 신체의 부자유가 쌓아 올린 절망. 이 패배감은 어린 아길라에겐 잔인한 환경이었을 터다. 그런 표면적인 사유에서 확장해나간 이야기는 전설과 결부되어 묘한 모호함을 환기한다. 생명을 만드는 책을 읽고 시작한 의식. 그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사술이 환기하는 으스스함은 작품의 전체를 감싼다. 그 사술은 한 아이를 대가로 치러야 한다고 남작 부인에게 이야기한다. 그 아이는 악마의 아이라면서.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길라는 악마의 아이기 때문에 원초적으로 악한 것인가. 아니면 태생의 비밀을 깨닫고 자신도 가누지 못할 분노에 휩싸인 어린양일 뿐인가. 토도로프는 환상의 제1 성질을 독자의 망설임으로 정의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사실인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정말 현실인지, 아니면 단순히 망상에 지나지 않는지 망설이며 또 의심스러워하게 된다.’ 소설은 둘 사이를 오가며 아길라의 정체를 의심시킨다. 그러나 뚜렷하게 남겨진 결론은 없다. 독자가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것은, 다른 한쪽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유혹에 근거한다. 그렇기에 아길라의 악함은 유혹이다. 판타지와 호러 그사이를 헤매는 것을 해소하려는 우리의 욕망의 근원이다.

이 양가적인 망설임의 근거는 또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 바로 에녹과 아길라의 분리 수술 장면이다. 원래 죽었어야 할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생명력을 받아 살아남았다고. 그리고 다른 아이는 기꺼이 자신의 생명력을 내줬다고. 그것에 감동하여 모리세이는 둘을 축복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다시 재회했을 때 정작 모리세이가 환기하는 것은 우연의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아이는 자력으로 살아남은 걸까. 혹은 모리세이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진득하게 살아남은 걸까.

그 근간 속에서 아길라의 태생은 그 근원부터 죽음으로 세례받았다.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운명의 애도 속에서 눈물과 용서를 구하는 말이 아길라를 적셨다. 그리고 아름다운 관에 아길라를 뉠 준비를 끝마쳤다. 그것은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으로 산 자를 배웅하는 일이자 세례 하는 일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길라는 살아남았다. 그렇기에 아길라는 죽는 대신 죽음의 세계에 있는, 즉 밤의 세계의 방식을 배울 운명이 되었다고 말하는 건 어떨까. 아길라의 술법은 기이함으로 이 소설의 호러를 담당하는 주축이다. 동시에 그것은 모리세이에 이르러 강력한 밤의 마법으로 설명되며 판타지의 감각을 일으킨다. 판타지와 호러 그사이를 헤매는 양가성은 아길라로부터 시작되어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간다.

 

2. 바뀐 몸, 본질의 세례

‘말을 타고 도망치는 것은 숙녀요, 그 뒤에 탄 것은 악마이니.’ 말은 이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할 터다. 실제로, 소설 속 중요 인물 중 하나인 모리세이는 아길라가 된 에녹을 데리고 나간다. 그리고 에녹이 된 아길라는 그를 뒤쫓는다. 에녹과 아길라의 역접의 대치는 시작부터 암시가 되어 있었다고 해도 무방할 터다. 그러나 둘의 몸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길라에게 세계는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곳이다. 그 육신을 증거로 자신이 버려졌다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길라의 행동은 그 자체로 버려지고 사랑받지 못하게 만든다. 처음은 부모였고 두 번째는 모리세이다. 결국 인과가 혼재 되어감에 따라 아길라는 차라리 에녹과 원초의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 모습이 흉측하더라도 상관없다. 자신의 모든 죄는 에녹에게서 떨어져 나옴으로써 생겨났으니, 에녹과 하나가 되면 그 모든 죄 역시 범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에녹이 가진 원초적인 사랑받는 매력과 생명력을 나눠 얻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저 아길라 스스로만 ‘좋은 것만 모두 남고 나쁜 것만 가지고 나왔다’라고 생각했을지라도.

그에 반에 에녹의 세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찾는다. 아길라의 만행을 보고서도, 아길라가 에녹의 신체를 빼앗고 수직 미로에 가뒀음에도 불구하고, 아길라를 찾아 모리세이의 도움을 받아 밤의 세계로 간다. 비록 에녹이 아길라의 손을 놓아버렸을지라도 – 혹은 그 반대일지라도, 에녹은 그것을 후회할 줄 안다. 그리하여 자신을 희생할 각오를 새긴다.

손을 놓는 것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 에녹이 탑에서 아길라의 손을 놓아버렸음을 루퍼슨 집사는 원죄를 짓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원죄를 짓기 위한 그 모든 역할은 루퍼슨의 안배였음이 드러난다. 이를 거슬러 에녹이 아길라를 찾아 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속죄이며 일종의 대속(代贖)이다. 아길라의 모든 죄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그것은 원초에 하나였기에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세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특별한 존재 – 밤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포기한다.

이러한 차이로 말미암아 둘의 신체가 교차하더라도 본바탕의 세계는 남는다. 부모로부터도, 모리세이로부터도, 결국 소중한 것으로부터 선택받은 것은 에녹의 형태를 아길라가 취한다고 하더라도, 아길라가 아닌 에녹이었다. 그것은 사랑할 줄 아는 자이기에 받을 수 있는 사랑이다.

 

3. 그리하여 밤을 사랑하다.

‘환상 문학의 특징 중 하나는 현실과 와부 세계와의 경계가 해체되어 상호 교류의 세계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소설 <언제나 밤인 세계>에서 상호 교류는 모리세이의 존재로부터 촉발된다. 모리세이는 욕망이 매우 생소한 것처럼 행동한다. 아마도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살아왔기에, 그리고 안식만이 가득한 언제나 밤인 세계에서 찾아온 자이기에 생긴 습관 같은 것일 터다. 이 것은 일종의 상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변화한다. 여러 차례 이뤄진 우연과 우연 속 마주한 에녹 그리고 에녹이 된 아길라로부터 모리세이의 세계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 변화는 아길라 역시 마주한다. 아길라가 자신의 것들을 망가뜨리기 시작하는 것은, 상실로부터 도피하는 일이다. 자신의 부모에게 해를 끼치고 모리세이에게 집착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지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벌어지는 일로 보인다. 시작은 사랑에서 끝은 미움으로 영락했기에, 그렇기에 상실로 이뤄지는 아길라만의 사랑인 것이다. 이 맥락은 에녹에 대한 아길라의 사랑 역시 같은 맥락을 보인다. 에녹에게서 신체를 빼앗고, 수직 미로에 가두고, 다시 하나로 합쳐지기 위한 행동들은 상실을 바탕으로 한 사랑과 연관되어 있다. 그런 아길라는 밤의 세계로 도착하여 밤의 존재가 되어 완전해진다. 이 밤의 세계는 그럼 어떤 세계일까.

문학에서 죽음이나 낯선 이계는 주인공을 세계와 격리시키지만, 동시에 영원의 이면으로 안내한다.‘소설 <언제나 밤인 세계가 보여주는 세상>은 기이함과 으스스함이 교차되는 세계다. 기이함은 ‘너무나 이상해서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혹은 적어도 여기에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느끼게 한다, 으스스함은 부재의 오류, 존재의 오류로 구성된다. 으스스한 감각은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 장소에 무언가 존재할 때, 혹은 무언가 있어야만 할 때 발생한다.’ 이 두 속성이 온전히 발현된 세계는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이 세계에서 아길라가 ‘완전해’진 것은 특기할 만 하다. 그 것은 아길라의 속성이 상실로부터 시작되었기에, 완전한 상실의 세계에서 온전해졌음을 상징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길라는 상실의 세계에서 완전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희생’할 수 있었다.

모리세이 역시 아길라와 마찬가지로 상실의 세계에서 완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밤을 포기한다. 그리하여 변화한 자신이 ‘밤의 세계의 가장 하찮은 밤벌레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을 기꺼워한다. 그 것은 모리세이의 첫 등장 장면의 묘사와 비교해볼 때 굉장한 변화로 보인다. 특히 탑의 일이 정리되었을 때, 그들에게 마땅한 심판이 내려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예를 준 모습을 보면 이러한 경향은 명징해진다. 이런 극적인 변화들이 작 중 인물들을 관통하며 서늘함 속 일견 따듯함을 남긴다. 언제나 밤인 세계가 차갑고 무정하며 일견 잔인해보여도, 그 안에는 안식과도 같은 사랑이 있다. 그렇기에 <언제나 밤인 세계>는 차갑고 아름다우면서도 일견 따듯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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