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세계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고별 (작가: 이동건, 작품정보)
리뷰어: NahrDijla, 22년 3월, 조회 40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인의 존재로 완성되는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 존재가 무엇이든 간에 관계로 얻는 행복이 무엇에 비하기 어렵다는 의미기도 할 테고,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이야기기도 하겠죠. 하지만 현실에 매인 삶에 있어서는 어느 순간 풀어야 할 때도 있고 놓아야 할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어디에도 존재하고 어디에도 없는 세상의 귀퉁이 어딘가. 그 곳에서 시작되는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인 이동건 작가님의 소설 <고별>은 그런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죽었으나 사후 세계가 아닌 곳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소설에서 다뤄지는 공간은 화자는 죽고 난 후 공간이라고 표현하지만, 묘사를 보자면 정확하게는 죽기 직전의 경계선 같은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그 곳은 림보(limbus)인 것 같기도 하고 연옥(purgatory)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삼도천이나 요단강처럼, 강이 흐르는 경계선을 마주한 것이 아닌 눈이 내리는 숲이라는 이미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조금 색다른 사후 세계 같습니다.

생명을 품는 숲의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눈이 내리는 겨울의 숲은 고요하고 생명력이 잠든 텅 빈 공간입니다. 그리고 계절의 끝에 선 마지막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소나무 숲이라는 푸른 이미지를 가져옴으로써 생명과 죽음이 뒤섞인 기묘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 것은 살아도 살지 못한 자들, 죽어도 죽지 못한 자들의 세계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이 선 공간은 자신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테죠.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주며 소회를 푸는 이 곳은 죽기 직전 마지막 주마등 같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산자와 죽은자들의 세계는 교차되지만 상호 침식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죽은 자들의 이야기들을 ‘나는’ 무척이나 재미있게 듣지만, 정작 그 것을 세상에 책으로 펴낼 때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고 서술합니다. 모두 개인의 삶 하나 하나는 작품이라고 하죠. 그렇기에 타인의 진솔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그 각박한 삶 속에서 나의 그리움은 유독 빛을 발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리움속에서 환상과 현실 모든 공간에서 나는 N을 기다립니다. 부재는 동일하지만 세상의 관계는 교차됩니다. 내가 코마 상태에서 죽음의 경계에 기다릴때 N은 살아있었고, 내가 코마 상태에서 벗어나 세상의 풍파를 맞이할 때 N은 없었습니다. 경계선에서 선 것은 언제나 그리움을 품은 자신이었으니, 현실에서 N의 기억이 흐릿해지더라도 남아있는 까닭은 닿지못할 관계를 희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지점들은 환상적으로 그려지며 현실과 대조 됩니다.

오두막에 도달한 후 나는 N에 대해 소회 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지만, 정작 소회의 장면은 N과 싸우는 장면입니다. 아름답다고 말하는 자신의 감정은 아마도 환상(착각이라는 의미가 아닌 비현실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에 가까울 것이며, 싸우는 장면은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구도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주제를 구현합니다.

이런 대조의 구도는 서사적인 층위에서도 발견됩니다. N에 대한 기다림으로 오두막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장면과, N과의 재회 이후 다시금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장면이 바로 그 것입니다. 오두막에서의 삶은 소소하지만 낭만적인 삶으로 그려집니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날에는 장작을 패고, 쿠키와 차를 마시며, 음식으로 소일을 하고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접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들이 그 것입니다. 약간은 외롭다고 느껴졌지만 이내 눈처럼 녹아버린 그 외로움의 공간에서 나는 N을 묵묵히 기다리며 견뎌낼 뿐입니다.

그리고 N과의 짧은 조우 후 현실로 돌아온 나는 절뚝거리고 아픈 허리를 견디며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합니다. 환상 속 세상은 무척이나 추운 풍경이지만 정작 서늘한 차가움을 품고 안온한 오두막으로 인도했지만, 정작 현실은 신체적 고통 속에서 세상의 풍파를 견뎌야만 하는 부분은 환상의 풍경보다도 더욱 싸늘하고 추운 세상을 묘사합니다. 이 곳에서도 나는 N과의 해후를 기다리며 묵묵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두 장면 모두 N이 없다는 점에서 쓸쓸함을 보입니다.

결말부에서 아쉬워하는 모양새지만, 사실 체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N은 결국 죽었고,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현실에서 해방되었을 테니까요. 그 것은 죽음의 경계선에서 살아 돌아온 자신과 대조되며 쓸쓸함을 한층 강화합니다. 그 오두막에서 기다릴 수 있는 자격은 아마도 삶에 대한 미련으로 코마 상태에 빠져있어야만 가능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돌아올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그렇게 소설은 끝내 이별로만 완성될 수 있는 사랑을 통하여 이어지지 못한 아련한 이별을 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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