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구원, 우리의 디스토피아에서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제발 조금만 천천히 (작가: 오메르타,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2년 2월, 조회 75

24시간은 과연 모두에게 공평할까.

엇비슷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이 한결같이 생존을 해결하던 과거에는 이 질문에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시간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말은 진리와 같은 문장이었으며 다들 비슷한 속도로 걷고, 뛰고 밥을 먹고, 작업했다. 이 사람보다 저 사람이 조금 더 빨리 달린다고 해서 한쪽이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시간 안에 다른 쪽이 서울에서 미국을 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가파른 발전, 고도로 경쟁화된 사회적 풍조는 나와 당신의 속도를 갈라 놓았다. 맨발로 달리는 사람이 한 시간에 십수 킬로미터를 간다면, 비행기를 탄 사람은 한 시간에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걷는 사람과 자동차를 탄 사람, 비행기와 우주선을 탄 사람이 갈 수 있는 거리는 완전히 달라졌다. 같은 이유로 누가 어떤 기술을 선점 혹은 독점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24시간은 월등히 다른 질을 가지기 마련이다.

이제는 단순히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것만으로 타인과의 격차를 좁힐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나와 당신의 속도 차이는 동시에 경제적 능력의 차이일 수 있으며 때로 학습의 차이일 수 있다. 양극화가 낯설지 않음을 넘어서 보편화되고 있는 지금, 어쩌면 가장 빠른 사람과 가장 느린 사람의 ‘인생 격차’는 빛의 속도일지 모른다. “제발 조금만 천천히”라고 부르짖는 누군가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빛에 탑승한 사람이 있다. 그가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도는 동안 어떤 사람은 눈을 깜빡일 뿐이다. A가 ‘무엇이 바뀐 거지, 무엇이 달라진 거지’, 알아차릴 틈도 없이 B는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돌았다. A가 눈을 두 번 깜빡이면 이미 B는 지구를 열다섯 바퀴 돈 상태다. B가 ‘너는 뭘 하길래 내가 지구를 열다섯 바퀴 도는 동안 눈을 두 번 깜빡일 뿐이냐’라고 한심스럽게 중얼거려도 A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거대하고 다층화된 속도 변화는 단지 “지독한 숙취에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찰나의 순간에 발생했다. 우리의 세계는 하나둘 빛에 올라타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파악하지도 못한 사람들은 자동으로 제쳐진다. 그들은 미래의 선택지에 들지 못한다. 그러니까,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눈꺼풀을 들어올리기만 했을 뿐인데 이미. 다들 지구를 일곱 바퀴 반씩 돌아버린 것이다. 빛에 탄 사람들은 너무 빨라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느린 사람들을 제치고 세계를 장악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은,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그러니까, 돌아버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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