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흡혈귀는 죽어야 한다 (작가: 준식, 작품정보)
리뷰어: SewoL, 22년 2월, 조회 46

전 세계를 위협하는 전염병이 창궐한 지 2년이 넘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방구석에 처박혀 방바닥과 오래도록 혼연일체를 이루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 이제 그만 인간답게 살고 싶다!’

그런데 막상 정신을 차리자 다짐하고 장판에서 볼을 떼고 일어나 눈을 비비고 나면 이런 생각이 이어진다.

‘인간답게 사는 게 뭘까?’

나는 이미 인간인데다 사지 멀쩡하게 잘 살아 있는데, 뭘 어떻게 하면 여기서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거지?

사회적 거리두기가 빚은 무료함과 심심함이 촉발한 게 분명한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면 결국 막다른 골목에 처한 것처럼 콱 막히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바로 이 끝판왕 질문 때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대부분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거리낌 없이 스스로 인간임을 자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묻는데 인간이란 대체 뭘까? 인간답게 살고 싶어 하는 나는 지금 인간이 맞긴 한 걸까?

 

나는 많은 종류의 장르소설이 이런 질문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존 가드너의 <그렌델>에는 인간을 증오하고 혐오하지만 ‘인간바라기’를 멈출 수 없는 괴물 그렌델이 나오고, 카렐 차페크는 인간의 시스템을 극단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하여 세계 정복을 눈앞에 둔 도롱뇽들이 너무도 인간다운 이유로 자멸하는 모습을 그린 바 있다.

 

한때는 이런 작품들이 인간의 정체성에 돌아오지 않는 부메랑 같은 의문을 던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결국 ‘인간’으로 회귀하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아마도 ‘인간’ 하면 떠오르는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를 벗어난 무엇에 대해선 염두에 둔 적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세상은 나의 생각과 무관하게 무정하리만치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우리는 이미 휴대폰과 대화를 나누고, AI와 게임을 해 온 지는 오래됐으며, 인간과 쏙 닮은 가상 인간의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인간이 끊임없이 자기를 닮은 다른 존재를 꿈꾸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흥미롭지만, 그 꿈이 완전히 이루어졌을 때 인간이라는 종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상상하는 일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최근 읽은 작품 중에는 이준혁 의 <그 별엔 닿을 수 없을지도 몰라>라는 단편이 있는데, 3D 기술로 탄생한 가상 인간이 영화계에 진출하는 시대를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한 줄기 희망을 놓지 않게 하는 결말을 제시하고 있어 스크롤을 끝까지 내린 보람이 있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희망이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변화의 바람에 떠밀려 본래 서 있던 자리를 잃고 방황하게 되더라도 결국에는 다시 길을 찾으리라는 믿음에 대해 약소하게나마 일부 지지를 얻은 듯한 감상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인간’이란 결국 돌아오거나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여서, 미래의 생활상과 가치관이 아무리 격변하더라도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가치를 재확립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준식 의 <흡혈귀는 죽어야 한다>에서 나는 조금은 다른 시각을 엿본다. 대강 한 문장으로 작품을 소개하자면, 스스로 인간임을 혹은 인간이었음을 온몸으로 부르짖으면서도 새로운 종의 탄생을 예고하는 인물들의 매력이 돋보이는, 그래서 뒤가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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