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 부스럭부스럭 봉지 뜯는 소리. 탁-하고 껍데기 깨지는 소리. 곧이어 매콤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연기를 따라 허공으로 흩어진다. 취향에 따라 꼬들꼬들하게, 혹은 부드럽게 끓인 면을 한젓가락 집어 입으로 가져가면 MSG 특유의 맛과 얼큰함이 입 안에 한가득 차오른다. 잘 익은 김치를 한조각 집에 입에 넣으면 혀 위에 머무르고 있던 느끼함이 깔끔하게 사라진다. 한젓가락 한젓가락 부지런히 입으로 가져가다 보면 어느새 그릇은 바닥을 보인다.
라면.
싸고 맛있고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보관하기도 용이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라면. (건강에 관한 것은 논외로 하고) 이 라면 하나를 끓이는 데도 사람들의 성격이 천차만별로 드러난다. 새로운 요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각종 재료를 추가해 자신만의 레시피로 라면을 끓이는 사람, 간단한 토핑만 몇 가지 추가해 끓이는 사람, 오로지 라면과 스프만 넣고 끓이는 사람, 물부터 넣는 사람, 스프부터 넣는 사람, 물과 스프와 면을 동시에 넣고 끓이는 사람.
이렇게 라면을 끓이는 데도 방법이 각양각색으로 다르다. 나는 라면에 이것저것 토핑을 다양하게 얹어 먹는 쪽이고, 가족은 간단하게 라면과 스프만 넣고 끓여먹는 쪽이다. 취향이 명확히 다르다보니 어느 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화려하게 토핑을 얹어서 끓이고 어느 때는 라면과 스프만 넣고 끓인다. 그럼에도 어떤 날은 누군가는 라면을 끓인 방식이 맘에 들지 않기 마련이다.
‘나’는 라면을 끓이며 헤어진 ‘그 사람’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라면을 눈 앞에 두고 있어서일까. ‘나’는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그 사람’이 라면을 어떻게 끓였었는지를 떠올린다. 봉지를 뜯고 면을 넣는 것에서부터 ‘나’와 ‘그 사람’은 한 가지 공통점을 빼고는 같은 점이 없었다. 꼬들꼬들하게 덜 익은 면을 좋아한다는 것. 그것 외에는 같은 점이 없었다.
그 사람과는 라면을 끓이는 방법이 달랐다. 그래서 헤어진 건 아니다.
‘나’는 이렇게 독백하지만, 나는 여기서 과연 진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하게는 라면을 끓이는 것에서부터 차이가 나는데, 생활 전반적으로 ‘나’와 ‘그 사람’이 정말 잘 맞았을까?
친구와의 관계나 직장 동료와의 관계랑은 또 다른 것이 연인관계일것이다. 연인이 되었다가 결혼을 하면 가족이 되어 생활을 공유할 것이고. 이럴 때 제일 중요한 게 바로 서로의 취향, 성향이라고 본다. 그것이 비슷하다면 크게 다툴 일이 없을 것이고, 다르다면 생각지도 못한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겠지. 나는 소위 말하는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을 믿는다. 전혀 다른 것처럼 보여도 같이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디서든 공통점이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 둘이 만나 맞추면서 살아가는게 연애고 결혼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토끼와 호랑이가 만나 같이 사는 것보다 표범과 호랑이가 만나 같이 사는 것이 훨씬 더 편하지 않을까? 같이 있는 게 즐거워도 성향이나 취향에서 차이가 많이 나면 결국은 헤어지기 마련이거나 아니면 어느 한쪽이 인내심을 발휘해 참고 사는 수밖에.
아니. 우리는 그렇게 끓인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내가 끓일 때도 그 사람이 끓일때도 맛있었다. 우린 똑같이 덜 익은 면을 좋아했고 그거면 충분했다.
라고 하지만, 정말 진심이냐고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거면 충분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한때일 뿐이다. 잠시 같이 있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다고 하루이틀, 한달, 일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을 참고 지낼 수 있을까?
내가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 사람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달랐을까. 그래서 우리는 헤어진 걸까.
나는 여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딱 하루만 그 사람의 방식대로 라면을 먹어보기로 한 ‘나’의 독백은 뒤집어 말하면 오늘이 지나면 다음부터는 다시 자기의 방식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누가 잘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나’의 사랑과 ‘그 사람’의 사랑이 서로 맞지 않아 헤어졌을 뿐.
오늘 혼자 면발에 노른자를 묻혀 먹고 나면 다음에는 라면과 스프만 넣고 끓여 둘이서 먹을 날이 새로 오겠지?
라면을 끓여먹는 단순한 움직임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덕택에 흥미로운 단편을 만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들 한번씩 읽어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