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한 분명하고 단호한 일깨움을 주는 작품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강남호구별성사명기(江南戶口別星司命旗) (작가: 삶이황천길, 작품정보)
리뷰어: 태윤, 22년 1월, 조회 122

일단 꽤나 길고 한번에 외우기도 어려운 이 작품의 제목은 옛날 천연두가 걸린 아이가 있는 집에 걸어 놓았던 깃발을 뜻합니다. 소수의 집단 사회에서 고립되는 일종의 낙인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겠지요.

이 작품은 처음부터 마지막 줄까지 사람이 저지르는 ‘죄’라는 한결같은 주제를 가지고 힘있게 전개해나갑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성인데 약간의 미스테리적 요소가 중간중간 이야기의 신선함을 되살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구성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을 교차로 끼워넣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다 읽고나니 이런 구성이 작가님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있게 전달할 수 있게 하지 않았나 싶네요. 작품 내내 작가님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일타 강사의 쪽집게 강의처럼 잘 전달된 느낌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사람이 원죄를 짓고 가장 먼저 갖게 된 것이 수치심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뉴스를 보면 우리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죄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는데, 그들의 행태를 보면 신이 내린 최초의 벌이 수치심이라는 성경의 해석에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죄가 덮여지는 것만을 바라지 않고 타인들이 자신의 죄를 잊거나 아니면 이해와 용서가 모두 이루어진 상태가 되길 원하지요. 그러나 그것을 위해 자기 자신이 희생하는 것은 원치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이야기 또한 그런 사람의 이기심이 빚어낸 슬픈 종말의 예고편 같습니다.

작품에서 일관되게 이야기되는 부분이 바로 속죄의 방식입니다. 과거 신을 대리하는 무녀를 해치는 큰 죄를 저지른 남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자신이 속죄하거나 피붙이를 통해 단죄를 피해가는 것이었죠. 과거의 그가 잘못된 선택을 내림으로써 한 사람의 죗값이 긴 세월을 지나 현재에까지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저 단편 설화라고 생각하고 웃어 넘기기엔 우린 역사적으로 단 한 사람의 선택으로 수십, 수백만의 운명의 바뀌는 현장을 수없이 보고 들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것이 과거 우리 조상이 저지른 한번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라 한다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 그냥 넘어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지르는 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엔 작가님께서 잠깐이라도 죄에 대한 두려움을 무겁게 느껴보라는 의미로 이 작품에서 죄의 대가를 지속적으로 강조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이렇게 세상은 멸망했습니다’ 라는 결말을 암시하는 마지막 문장을 보니 이 작품이야말로 종말 공모전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뜬금없이 날아오는 소행성이나 지구 내부의 대폭발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신의 계획 중 하나겠지만, 과거의 우리가 저지른 죄의 무게가 켜켜이 쌓여서 원리금 상환처럼 돌아오는 이런 종말이야말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진정한 종말의 시나리오가 아닐까요.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서 해석하는 이야기의 구조가 재미있고, 작가님이 주려는 메시지가 분명해서 다 읽고나면 뭔가 시원한 기분까지 주는 명작입니다. 브릿G의 독자 여러분들께 자신있게 추천드리는 단편소설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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