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고 파괴적인 결핍과, 그럼에도 존재하는 갈망에 관한 이야기 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영원히 나를 사랑해주세요 (작가: 호드미미르, 작품정보)
리뷰어: rensi, 21년 12월, 조회 85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가 이 리뷰를 작성하던 시점에 벌써 30만자를 넘어섰고 지금은 완결된 이 소설이 아주, 무척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외견상으로는 어느, 아마도 부유한 아파트 단지의 몇몇 가정과 이 가정들을 드나드는 방문 교사인 진주가 빚어내는 ‘치정’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가운데, 작가는 어느 한쪽에 과몰입되지 않은 채 모두에게 공평한 시선을 할애합니다. 물론 주요 등장인물인 진주와 주환, 가원 등에 비해 다른 인물들이 차지하는 지면은 적지만, 그들이 맞닥뜨린 사건에 대해 각각이 느끼는 심리를 서술할 때만큼은 작가는 지극히 공평하게 그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고 있고, 모든 인물은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인물의 시점이 지나치게 급하게 전환된다는 느낌을 종종 받기는 했지만, 이것 때문에 읽기를 멈추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이들 사이의 엇갈리는 심리가 큰 이야기를 짜나가는 듯한 몰입감이 강해서,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 약간 연구가 더해져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덧붙입니다. 혹 작가께서 일부러 의도하신 것이라면 제가 그 의도를 미처 충분히 읽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영원히 나를 사랑해주세요>라는 제목처럼, 이 소설을 처음부터 관통하는 것은 사랑, 혹은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믿는 감정에 대한 것입니다.

 

로맨스로 분류되어 있지만, 브릿G의 많은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작품은 흔히 말하는 (협의의) 로맨스의 장르적 관습을 따르는 소설은 아닐 겁니다. 30만자까지 진행된 지금까지는, 이 소설은 진주라는 인물이 가진 태생적 결핍이 타인의 욕망과 맞물리며 가져오는 파국들을 덤덤하게 그려내는, 인간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애정과 성욕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고, 이것은 사람 간에 있어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관계의 형태로 수없이 변주됩니다. 가장 달콤하고 안온하며 애틋한 순간부터 가장 탐욕스럽고 가학적이며 파괴적인 순간까지를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 작가께서도 작품 소개에 이 글이 두 사람의 사랑이 완성되어 가는 이야기라고 쓰셨으니, 아마도 완결까지 진행되면서는 진주와 주환 사이의 관계가 글의 중심이 될 것이리라고 저는 짐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어떤 형태의 결말에 도달할 것인지 제가 몹시 궁금했던 것처럼 아마 다른 분들도 그러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사랑이, 주변 사람들을 서서히 집어삼킬 정도로 강력한 진주의 결핍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구원을 가져다줄 무언가인지, 혹은 함께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도달할지언정 그것으로 좋은 무언가인지. 또는 그 외의 어떤 것인지, 아마 이야기의 끝에서는 알게 되겠지요.

 

제가 이 글이 위에서 ‘로맨스의 장르적 관습을 따르지는 않았다’고 한 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로맨스만을 지칭할 때에 국한해서 한 말입니다. 장르소설과 웹소설을 지칭할 때 남성향, 여성향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이것은 해당 용어가 붙은 장르에도 어떤 성격을 부여하게 됩니다. 남성향 소설에서의 애정관계는 많은 경우 이야기의 큰 줄기 중 부수적인 위치만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고 주인공에게 애정을 품은 여성(들)은 어떤 면에서든 남성인 주인공의 환상을 만족시켜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여성향 로맨스 소설에서는 애정관계의 전개와 함께 이루어지는 주인공의 성취가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데, 그러면서 몇 가지 관습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독자들은 대체로 주인공의 도덕성에 민감하며, 불륜에 대해서는 극도로 반감을 품습니다. 이미 상대의 부정으로 인한 파탄상태이거나 비정상적 혼인관계가 아닌 한 대체로 그렇습니다. 주인공의 연인은 이상적인 연인의 면모를 가진 인물이어야 합니다. 남성향, 여성향을 막론하고 기본적으로는 독자가 등장인물을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하고, 주인공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확장된 자아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요소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좁은 의미에서의 로맨스 장르의 관습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겁니다. 남성 독자들에게 있어서 주환은 영웅처럼 보이지 않고, 진주는 겉으로는 소위 트로피가 될 수 있는 여자도 아니면서 남자의 운명을 파국으로 이끌고 가는 팜므 파탈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를 자극하는 존재입니다. 여성 독자들에게 있어서 진주는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불륜의 당사자로서의 거부감을 먼저 불러일으키고, 진주 주변의 남자들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여성 독자의 환상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협의의 ‘로맨스’와는 완연히 결이 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원히 나를 사랑해주세요>는 잘 읽히고, 재미있습니다. 사실 가볍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으로 결핍이 깔린, 약하고 무해해 보이는 인간이 타인의 욕망을 자극하며 포식자처럼 일상을 점령해 나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기이한 불편함과 긴장,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만을 향한 무조건적인 애정을 갈망하는 주인공, 제각기 원하는 것이 다른 주변 인물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형형색색의 속내, 이런 것들이 얽히며 인간의 내면 바닥을 드러내지만, 그럼에도 재미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취하는 방식이 무겁고 현학적인 상념이 아니라, ‘치정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속내를 궁금해하는 평범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족한 감상이지만 작가님의 지속적인 건필을 기원하며 읽은 흔적을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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