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것 같기는 한데 피해자가 없다. 감상

대상작품: 하수구 (작가: 김성호, 작품정보)
리뷰어: 태윤, 7시간 전, 조회 14

먼저 리뷰의 제목을 미스터리 소설의 광고 문구처럼 넣어서 작가님께 죄송한 마음이 드는데, 작품을 읽고 난 후 제 느낌은 호러보다는 미스터리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호러냐 미스터리냐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지요. 이 작품은 긴 비와 더위가 반복되는 이 여름에 읽기 좋은 청량한 소설입니다. 청량하다는 건 호러와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제 주관적인 느낌이고 일단 재미있다는 겁니다.

이 작품은 우울함에서 출발하여 암울함까지 직진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런 작품들이 주는 무거움과 단조로움을 걷어내기 위해 작가님이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리신 것으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시도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어떤 이유로 정신과에 다니며 약을 먹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죽음 때문인지, 아니면 학창 시절부터 이어져 온 학대의 상처 때문인지, 혹은 여자 친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인공은 그들에게 강력한 살의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억이 온전치 못할 때 ‘혹시 내가 그 중 누구를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말은 평소에 그 정도로 강력한 살의를 꾹꾹 누르며 버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죽였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는 과정은 꽤 흥미롭습니다. 오랫동안 피했거나 그냥 묻으려 했던 과거의 기억들을 직접 대면하면서 그는 체념하기도 하고 묵혔던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아픔을 마주 대한 후에서야 그는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죽고 싶었다고, 아니 죽을 만큼 힘들다고 말입니다.

작품에서 중요한 단서처럼 등장하는 구취에 대해서는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작품이 아쉽다는 게 아니라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은 채 끝을 내기가 아쉽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네요. 주인공에게 불쾌한 기분을 주는 냄새라면 어딘가 단서가 있었을 법도 한데 저는 찾지 못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주인공 주변을 떠도는 그 구취의 정체가 무엇인지 찾아보시고 댓글에 알려주시면 제가 마음으로(만) 사례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아주 어둡고 울적한 내용을 깔끔한 문체와 적절한 미스터리 기법의 활용으로 재미를 높인 작품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독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작가님의 능력이라고 할까요? 부러운 능력이긴 하지만 저는 또 즐겁게 읽을 수 있으니 이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구취의 미스터리에 도전해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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