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도윤과 그의 친구 둘은 고급 아파트에 대한 나름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다가 근처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아파트 단지가 생긴 것을 보고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들어가 본 단지의 내부는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으면서도 기이했고, 도윤의 친구들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게 아파트 안으로 발을 들이게 됩니다.
도윤은 아파트에 들어갔다 나온 친구들이 모두 뭔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자신 또한 그렇게 될 것이고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작품은 첫 문장부터 기이한 느낌을 주는 독특한 매력의 단편 소설입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가끔 찾아보는 미드 ‘환상특급’과 비슷한 분위기인데 거기에 불편함과 찝찝함이라는 공포와 잘 어울리는 요소를 잘 섞어 놓은 작가님의 필력이 놀랍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세 명의 친구들은 모두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그들의 대화를 언뜻 보면 평범한 아이들의 대화 같으면서도 40대에 애 둘 정도 있는 가정의 남자들이 맥주 한 캔 들고 나누는 푸념 같은 분위기가 섞여 있습니다. 아이 엄마들이 애들을 학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나서 잠깐 나누는 이야기 같기도 하지요.
이런 부조화에서 오는 불편함 혹은 찝집함은 작품 내내 계속 됩니다만, 이상한 건 작품의 바탕에 흙탕물처럼 깔려 있는 이 찝찝함을 결국 받아들이면서 작품을 완독하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끝까지 궁금증과 긴장감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작품 자체의 재미가 가장 큰 이유겠지만, 작가님은 독자들에게 ‘우리가 언젠가부터 불편해도 받아들이게 된 것들’을 보여주려고 하신 게 하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우리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정보의 보편적이고 제한 없는 공급입니다. 정부에서 아무리 통제하려 애를 써도 전세계에서 쏟아지는 정보의 해일을 모두 감시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그 정보의 바다는 스마트 폰을 가진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설에 수도권 아파트 시세를 줄줄 외우는 초등학생이 나와도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초등학생이 진짜로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분위기가 저와 독자분들을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닐까요?
작품의 후반부에 가면 그 불편함이 더 강해집니다. 아파트에 들어갔다 나온 아이들은 분명 달라진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그 모습이 변하기 전과 비교해서 말투를 빼고는 크게 위화감이 없습니다. 문제는 글의 맥락상 아이들의 몸을 차지한 존재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악(惡)의 위치에 가까운 무언가였다는 점입니다. 부서지고 찢어진 물건들과 피, 그리고 막상 내부엔 아무것도 없었던 아파트는 사실 우리의 ‘성장’과 가깝습니다. 희생과 고통이 수반되고 막상 어른이 되고 보면 어릴 때와 별반 다를 것도 없지요. 성장의 시기를 자연스럽게 겪지 못하고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의 변화를 작가님은 아파트라는 어른의 고민과 욕망을 상징하는 물건에 빗대어 표현하신 게 아닐까 추측을 해 봅니다.
과거에는 지나치게 어른스럽고 실리에 밝은 아이를 애늙은이니 뭐니 하면서 비하의 의미를 담아 부르기도 했었는데, 현재의 우리는 그 애늙은이가 주로 어떤 이유로 생겨나는지 알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원인 제공자인 스마트 폰과 그로 인해 생겨난 정보의 과잉 공급에 모든 책임을 씌우려 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아직은 아이의 거울은 어른이지 스마트폰이 아니니까요.
분명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라고 생각되지만, 사실 이 작품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재미있습니다. 단편이 갖춰야 할 어떤 적절함을 아주 잘 갖추고 있다고 할까요? 잡아 끌거나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부풀린 문장이 없고 그렇다고 궁금증만 남겨 놓고 갑자기 훅 끝나지도 않습니다. 찝찝한 느낌은 있지만 그건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일 뿐, 작품은 아주 재미있는 미스테리 호러였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